"한국 약값 내리지 마! '미국의 협박' 시작됐다"
[인터뷰]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과 교수... 한미FTA의 암울한 미래
12.03.14 17:43 ㅣ최종 업데이트 12.03.15 15:20  김종철 (jcstar21)

 
▲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선대식

"우리 현대사에 두 개의 부끄러운 3월 15일이 생기게 되는 거죠. 하나는 이승만 정부 때 부정선거하고, 이번 한미FTA 발효하고…."
 
담담한 목소리였다. 그와 또 마주 앉았다.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다. 오는 15일 오전 0시에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이 공식 발효된다. 그에게 '협정 발효가 임박했다'고 말했더니, 쓴웃음의 답이 돌아왔다. 이 교수는 여전히 바빴다. 기자를 만난 12일 오후에도 경북 상주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주제는 물론 한미FTA다. 방학 중에는 일주일에 2~3차례씩 전국을 누볐다. 경기도 분당의 한 카페에서 그와 1시간 넘게 이야기를 나눴다.
 
- 요즘도 강연을 많이 다니신다.
"인터뷰 마치고, 경북 상주로 간다. 그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안동, 경주 등 지역 주민들의 한미FTA에 대한 반감이 대단하다."
 
- 전통적인 여당 지지층 아닌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 경북 쪽이 그랬는데, 이번 총선에선 어떨지…. FTA건만 보면 여당이라고 안심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번 총선 전망을 조심스레 물었다. 그동안 전국 강연을 하면서 민심을 보고 들었을 테니 말이다. 이 교수는 "작년 말, 올해 초만 해도 야권에서 과반수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고 덧붙였다. 여야 모두 공천을 둘러싼 잡음 때문이다. 그는 "어느 당도 단독 과반수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 "아직도 민심이 어떻게 요동칠지 아무도 모른다"고도 했다.
 
"현대사에 두 개의 부끄러운 '3·15'가 생기는 셈"
 
▲ 오는 15일 한미FTA 발효를 앞두고 6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한미FTA저지범국본 비상시국선언'에서 참석자들이 "한미FTA 폐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권우성

총선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에게 물었다. '혹시 정치권에서 러브콜은 없었느냐'고. 이미 야당 쪽은 '한미FTA 시행 전면반대'를 정책연대 합의문에 넣었다. 새로 짜여질 국회에 한미FTA 전문가가 절실하다. 이 교수는 그냥 웃는다. '노 코멘트'였다. 대신 "민주당을 비롯해 통합진보당 등 야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했다. 앞으로 있을 한미 간 투자자-국가소송제(ISD) 관련 재협상을 위해서도 그렇다.
 
- 이번 야권의 정책연대 합의문에 뉘앙스의 차이가 있는 것 같다.
"당초 한명숙 민주통합당 대표도 한미FTA 폐기를 이야기해 왔는데…. 합의문 보면, (통합진보당과) 한미FTA에 대해 어정쩡하게 봉합을 해놓은 것 같다. 어차피 총선 이후, 올해 말 대선까지 한미FTA는 계속 쟁점이 된다."
 
- 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민주당의 과거 한미FTA에 대한 말 바꾸기에 대해 털고 가야 한다는 지적도 여전하다.
"(끄덕이며) 작년부터 이야기해왔다.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제대로 입장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고 서지도, 앉지도 못할 어중간한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
 
그는 그동안 꾸준히 한미FTA 폐기를 주장해왔다. 작년 10월 한미 양국 국회 비준이 임박했을 때도, 기자를 만났다. 그때 그는 "협정 폐기는 대통령이 팩스 한 장만 보내면 된다"고 말했다(관련기사 : <"MB 디트로이트 연설? 수치스런 삼류쇼... 오바마 지지자에게 FTA 전쟁 패배 확인"> ). 한미FTA의 불평등하고, 주권침해적인 조약에 반대해 온 그 입장에선 당연했다.
 
- 협정 발효를 앞두고 있는데, 폐기 주장에는 변함이 없나.
"이대로 가면 미래가 암울한 것이 뻔히 보이는데…. 국가 간 조약에서 종료, 탈퇴, 폐기 등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다. 용어만 다르지, 효력은 같다. 서로가 폐기할 수 있다고 합의한 것 아닌가."
 
"반미라고? 미국 두려워하는 '공미(恐美)'가 더 문제"
 
▲ 2011년 12월 10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한미FTA 날치기 무효 야4당 및 범국본 촛불문화제·합동연설회'에 참가한 시민이 이명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의 가면을 쓰고 한반도 지도로 장식한 'FTA','ISD' 와인잔을 들고 축배를 즐기는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다. ⓒ 유성호

- 당장 협정이 발효되면, 이익을 보는 사람도 생기게 마련이다. 그만큼 협정 폐기도 어려울수 있지 않나.
"그럴수 있다. 그래서 (폐기를 위해선) 국민적 지지가 필요하다. 이번 총선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또 앞으로 미국과 재협상하기로 돼 있지 않나. '협정 폐기'라는 배수진을 치고 (협상을) 해야 한다."
 
- 오늘 이명박 대통령이 '한미FTA 반대는 반미(反美)'라고 했는데.
"(허탈하다는 듯이) 미국도 하나의 나라에 불과하다. 수평적인 관계다. 우리 정당들은 제대로 된 반미조차 해본적이 없다. 그럴 만한 역량도 되지 못한다."
 
그의 억양이 어느새 올라가 있다. 그의 말을 옮겨본다.
 
"한미상호방위조약도 폐기가 가능해요. 국가 간 조약이니까…. 하지만 우리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죠. 우리 내부에서 정말 문제는 친미도, 반미도 아니에요. 공미(恐美)주의예요. 한미FTA 폐기라도 하면 미국으로부터 무역보복을 당하지 않을까, 북한 문제에서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미국의 보복이 두려운 것이죠."
 
- 반미가 아니라 공미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참여정부 때 한미 관계를 수평적인 파트너로 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결국 안 됐다. 이제 한미관계에서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번 한미FTA가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
 
그는 "국민들에게 새로운 한미관계에 대해 적극적으로 알려나가야 한다"면서 "대중들이 이를 지지한다면, 한미FTA 종료도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국민들을 설득하는 과정 역시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짧을 수도, 길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선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날치기 통과 국내법 하나만 되돌려도 한미FTA 흔들려"
 
▲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 ⓒ 선대식

이 교수는 "이미 협정이 발효되기도 전이지만, 미국 쪽 공세가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말 정부에서 통과시킨 약값 인하 정책이 대상이다. 한미FTA 협정문에는 정부의 약값결정에 해당업체가 이의를 제기할 경우 외부전문가로 구성된 협의체에서 재검토하도록 돼 있다. 올 4월부터 약값 인하가 예고돼 있지만, 미국 쪽 제약업체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다.
 
"이미 미 무역대표부(USTR)에서 이번 약값 인하 결정에 대해 우리 쪽에 추가적인 조치를 해달라고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분쟁절차를 진행하겠다고…. 국내의 미 제약업체들이 협정문을 들고서 문제제기하고,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로 갈 수도 있어요. 약값정책 자체가 물거품 될수 있지요."
 
그는 "협정이 발효되기 전부터 미국에서 협박장이 날아들어오는 꼴"이라며 "주권국가라면서 자기 나라 약값도 제대로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앞으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회 차원에서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 어떤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가.
"한미FTA로 인한 리스크를 관리해야 한다. 정부에 맡겨놓을 수 없다. 국회가 나서야 한다. 당장 작년 말에 날치기로 통과됐던 국내법을 원상으로 되돌려야 한다."
 
- 한미FTA 이행을 위한 국내법을 손댄다?
"이것은 명분도 있다. 우리 내부 문제다. 미국이 간섭할 수도 없다. 의약법 개정안 하나라도 원상으로 되돌려보라. 한미FTA 시스템 자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를 위해선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
 
인터뷰 내내 전화벨이 울렸다. 강연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새로운 국회가 만들어지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그의 말이다.
 
"새로운 통상정책이 필요해요. 지금처럼 정부에만 맡겨놓아선 안 됩니다. 국회가 직접 나서, 이해당사자, 시민사회 등과 함께 우리식 통상모델을 만들어야죠. 이를 위해 통상절차법부터 다시 바꿔야 하고, 현재의 통상교섭본부도 마찬가지예요.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통상주권을 돌려줘야지요."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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