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저격수’ 김진애, 국회의원 3번째 떨어졌지만…
등록 : 2012.04.02 15:44수정 : 2012.04.02 16:31
김진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지난 3월27일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TV 스튜디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사진 허재현 기자
“경선 패배 후 시민들의 뜨거운 응원 받아
4대강 청문회 꼭 하고 싶었는데 아쉬워”
민주통합 선대위 홍보본부장 맡아 4·11총선 지원
김진애(59) 의원은 또 떨어졌다.
벌써 세 번째 국회의원 도전 실패다. 2004년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울 용산구에 출마했다 낙선했고 2008년 대통합민주신당 비례대표 17번으로 출마했다가 떨어진 뒤(김 의원은 의원직을 상실한 정국교 전 의원 대신 2009년 11월 뒤늦게 비례대표 승계를 받았다) 2012년 3월 민주통합당 마포갑 지역구 경선에서 노웅래 후보에게 패해 원내 진출에 또 실패했다.
3월11일 김 의원의 경선 패배 소식이 알려지자 트위터는 들썩였다. 지난 2년간 ‘4대강 저격수’로 맹활약 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누리꾼들은 경선 탈락을 예상하지 못했다. 마포갑 지역구에서 탄탄한 조직력을 갖고 있는 노웅래 후보(17대 국회의원)를 몰라본 탓 이었다.
누리꾼들은 ‘아고라’ 등에서 ‘김진애 구하기’에 나섰다. ‘민주당이 김 의원을 비례대표·전략 공천하라’고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김진애가 없으면 19대 국회에서 4대강 청문회도 어렵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구제 받지 못했다. 김 의원은 아쉬움을 뒤로 하고 현재 민주통합당 선대위 홍보본부장을 맡아 4·11 총선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겨레신문사로 찾아 온 김진애 의원을 3월27일 만났다. 이제 민간인으로 돌아가는 만큼 정치인이 아닌 ‘인간 김진애’ 로서 편하게 인터뷰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인터뷰에 응했다. 경선에서 패했지만 표정은 무척 밝아보였다.
김진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1년 6월 홍수로 무너져 버린 경북 칠곡군 왜관철교 앞에 서 있다. 왜관 철교가 무너진 것은 낙동강에서 진행된 준설공사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사진 김진애 의원실 제공
#김진애, 국회의원 3번째 떨어졌지만…
-표정이 생각보다 밝다.
“저 벌써 세 번째 떨어지는 겁니다. 이젠 낙선에 적응도 됐고요. 또 시민들이 제가 떨어지자 뜨겁게 반응을 해주더라고요. 아쉬워 해줄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국회의원 떨어지고 나서 이렇게 크게 응원받은 적은 처음입니다.”
-그래도 아쉽기는 할텐데.
“당연히 아쉽지요. 솔직히 저는 18대 비례대표 출마할 때는 당선 안돼도 괜찮다고 생각했었어요. 제가 국회의원 자리를 막 욕심내는 스타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솔직히 아쉬웠습니다. 엠비 심판도 더 해야 하고 4대강 청문회도 꼭 하고 싶었거든요. 19대 국회는 꼭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김 의원은 지난 1월 당 지도부 선거 때와 달리 국회의원 지역구 경선에서 모바일 경선 흥행 열풍이 불지 않은 게 못내 아쉬운 듯 보였다.
“김진애에 대한 여론 평가는 좋았지만 결정적으로 모바일 국민경선 바람이 이번에 불지 않았던 게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트위터로 제가 (선거인단에 등록해달라고) 앓는 소리도 많이 했는데 반응은 ‘너희 모바일 경선 참여해줘도 당이 이 모양이잖아’ 이런 식이었어요. 그래서 결국 민심보다는 조직력 싸움이 됐고 조직력이 약한 제가 패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렇다고 모바일 경선 무용론을 얘기하는 건 아닙니다. 모바일 경선제도는 민주당이 앞으로도 잘 살려나가야 합니다.”
김진애 의원을 국회에서 계속 보고 싶었던 건 누리꾼들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김 의원이 경선에서 탈락하자 모 정당에서 김 의원 영입 의사를 타진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김 의원은 모든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자세한 얘기를 꺼내지는 않았지만 그는 민주당에 뼈를 묻고 싶어하는 듯 보였다.
“<더 타임즈>가 1994년 저를 차세대 리더 100인에 뽑은 뒤 정치권에서 2년마다 한번 씩 찾아와 정계 입문을 부탁했어요. 하지만 저는 정치는 제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계속 거절하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보고 열린우리당에 입당했어요. 구태정치와 잘 안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든 당이면 저도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노 전 대통령 때문에 인생을 ‘배린’ 사람입니다. 민주당을 떠날 수 없어요.”
#“한나라당보다 ‘민주당 내 토건세력’과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
그렇다고 민주당이 김진애 의원에게 마냥 편한 곳은 아니었다. 건축 전문가이면서도 ‘반토건파’인 그에게 토건 세력이 섞여 있는 민주당은 여로모로 가시밭길이었다. 특정 계파에 속하지도 않아 김 의원을 챙겨주는 지도부도 딱히 없었다고 했다. 김 의원은 이날 마음 속에 담아두었던 고충을 털어놓았다.
(김진애 의원은 1975년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한 뒤 1988년 미국 메사추세츠 대학(MIT)에서 도시계획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시계획 전문가인 김 의원은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대통령 자문 건설기술·건축문화 선진화위원회 위원장직을 맡기도 했다.)
“굳이 분류하자면 저는 반토건파죠. 그런데 솔직히 민주당 안에 개발주의자들이 있거든요. 또 지역 여론 때문에 개발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어려운 당의 사정도 있고. 그래서 당내에서 ‘반 토건 전선’을 만드는 게 많이 힘들었습니다. 한나라당과 싸우는 게 어쩌면 더 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김진애 민주통합당 의원이 2011년 2월 김포시 경인운하 터미널 공사현장에서 폐공처리 되지 않은 관정을 발견하자 수자원공사는 포크레인으로 덮으려 했다. 김 의원이 현장을 보존하려고 몸으로 포크레인 진입을 막고 있는 모습. 사진 김진애 의원실 제공
#몸을 던져 국토 난개발 실상을 파헤치던 김진애
김진애 의원의 활약은 널리 알려진 그대로다. 국회 국토해양위에 소속되어 엠비정부의 잘못된 토건 정책을 고발하는 자리에는 그가 늘 앞장섰다. 현장을 뛰어다니며 블로그로, 트위터로 신속하게 관련 소식을 퍼날랐다. 지난 2년간 김 의원은 사실상 ‘민주당 4대강 특파원 기자’였다. ‘4대강 저격수’라는 별명이 자연스레 따라붙었다.
김 의원 덕분에 언론들은 여러 차례 정부의 국토 난개발을 고발하기도 했다. <한겨레>도 마찬 가지였다. 김 의원의 몸을 사리지 않는 모습을 기자가 직접 지켜보았던 일화 한 토막을 소개한다.
2011년 2월 경인운하 공사를 맡은 수자원공사(이하 수공)는 경기도 김포시 고촌읍 전호리에 김포 터미널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수공은 지하수 관정(지상에서 지하의 지하수까지 연결된 좁은 관, 농업용수 공급에 활용)을 규정대로 처리하지 않고 흙 속에 마구 파묻어 지하수를 오염시켰다. <한겨레>는 주민의 제보를 받고 현장을 방문했지만 공사 관계자들의 저지로 공사현장에 들어갈 수 없었다.
이 때 김진애 의원의 도움이 컸다. 김 의원은 국회의원 신분을 활용해 포크레인을 대동해 공사현장의 흙더미들을 파내기 시작했다. 하룻 동안 흙더미를 파헤치자 규정대로 처리되지 않고 흙속에 묻혀있던 관정이 모습을 드러냈다. 언론사 카메라들이 몰려오려 하자 수공은 발견된 관정을 포크레인으로 훼손하려 했다. 그러자 김 의원이 직접 관정이 박혀 있던 구덩이 속에 몸을 던져 수 시간 동안 포크레인을 막아섰다. 덕분에 기자들은 수공이 저지른 환경오염 현장을 보도할 수 있었다. 경인운하 공사장 파보니 ‘오염의 고속도로’가…(한겨레 2월20일 보도)
“국회의원들이 가공된 자료들만 갖고 ‘립서비스’만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하지만 저는 현장을 직접 발굴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당에서도 4대강 문제만큼은 적극 파헤치라고 입장을 정해주었고요. 몸은 고달파도 일은 재미있었습니다.”
김진애 의원은 그래도 아쉬운 게 많다고 했다. 18대 국회 시작하자마자 국토위 활동을 했다면 ‘대운하 사업이 4대강 공사로 변질되는 꼼수 자체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게 김 의원의 생각이다. 의석 수가 부족해 2011년 4대강 관련 예산 통과 자체를 막지 못한 것도 김 의원의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18대 국회에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의 의석수를 다 합해도 87석에 그친다.)
#“자연에 죄를 덜 짓는 건축”
김진애 의원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에너지’다. 여성 의원이지만 말투도 남성스럽고 늘 힘이 넘친다. 젊은층이 주로 사용하는 트위터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도 그는 민주당 의원들 중 가장 열심히 한다.(@jk_space) 그렇기에 그의 실제 나이를 듣고 사람들은 깜짝 놀란다. 그는 곧 환갑을 앞두고 있다.
“제가 이해찬 의원과 대학 동기입니다. 나이는 제가 한 살 어리고요. 정동영과 문재인 의원은 저와 동갑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꼰대 기질이 없어서 다들 저를 젊게 봤나봐요.”
사실 김진애 의원은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 더 유명했다. 1994년 <타임>이 선정한 ‘차세대 주목할 만한 인물 100인’에 들었을 정도로 세계적인 도시계획 전문가이다. 1994년은 김 의원이 산본 신도시를 설계하던 때였다. ‘아파트 위주의 신도시’가 아닌 ‘걷고 싶은 거리’를 곳곳에 조성해 당시 큰 주목을 받았다. 군포시 수리산의 경관을 헤치지 않고도 훌륭한 신도시를 만들어내었다.
“건축은 어쩔 수 없이 자연에 신세를 질 수 밖에 없는 일인데 제 건축철학은 가급적 자연에 죄를 덜 짓는 겁니다. 4대강 사업을 제가 반대하는 것도 이런 이유입니다.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게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사업이라 반대하는 겁니다.”
#18대 국회 가장 보람있었던 ‘도정법 개정안’ 통과 순간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 해 12월30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과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을 산고 끝에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뉴타운·재개발·재건축 관련 결정을 할 때 주민에게 사업 관련 정보 제공을 의무화하고 토지소유자 30% 이상이 재개발 철회를 요청하면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한 것이다. ‘재개발의 추진과 철회’ 모두 시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해 기존의 재개발 정책을 뿌리째 뒤집는 법안이었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이 개정안에 근거해 지난 1월 ‘서울 뉴타운 정비사업 신정책 구상’을 발표했다.
“2011년 12월30일은 제가 국회에 있었다는 게 참 행복하다고 느껴지던 순간이었어요. 뉴타운으로 고통받는 시민들에게 출구전략을 찾을 수 있는 법을 국회에서 만들어 냈거든요. 개발 계획만 세우면 무조건 앞으로만 갔는데 이걸 원점으로 되돌릴 수 있는 법을 만든 겁니다. 토건 마피아들에게 쐐기를 박았습니다.”
사실상 18대 국회의 활동은 끝났다. 그러나 김진애 의원은 아직도 국회의 개혁을 위해 뛰고 있다. 김 의원은 국토 해양위를 어떻게 개혁할지에 관한 글을 쓰고 있다. 곧 인터넷에 공개할 예정이다.
“5월 말까지 국회의원 세비가 나와요. 보좌관들을 자꾸 고생시키는 게 좀 미안하긴 하지만그 때까지는 일 해야죠.”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다.
“정치는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겁니다. 투표를 하지 않았을 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뒤로 후퇴하는지 이 대통령이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정치는 우리 인생이고 투표는 우리 인생의 선택이라는 걸 잊지 말고 꼭 투표합시다.”
김진애 의원은 당분간 민주통합당의 선거 승리를 위해 뛰다가 의원 임기가 끝나면 고문을 맡고있는 ‘인간도시 컨센서스’(사람이 중심이 되는 도시 건설을 고민하는 모임) 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다. 트위터도 그만 둘 생각이 없다고 하니 누리꾼들은 김 의원의 활동을 예전처럼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도시전문가 김 의원의 진짜 활약을 지켜볼 순서다.
허재현 기자 cataluni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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