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촛불' 직후, 시민단체 '불법사찰'했나
[단독] 총리실 컴퓨터에서 '진보연대' 문건 확인...박석운 공동대표 "짐작은 했는데..."
12.04.04 21:30 ㅣ최종 업데이트 12.04.04 21:30  이미나 (neptune0222)

국무총리실이 '용산 참사' 직후에 시민단체인 한국진보연대를 불법사찰한 것으로 의심되는 문건이 발견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민간인 사찰 관련 수사·재판기록에는 검찰 측이 국무총리실 공직지원윤리관실 점검 1팀에서 사용됐던 컴퓨터를 조사한 결과가 남아 있었다. 이를 살펴 본 결과, 점검 1팀이 '진보연대'라는 이름의 문건을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진보연대 관련 총리실 문서, 작성 시기는 '용산참사' 직후
 
▲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010년 당시 민간인 사찰 및 증거인멸 관련 수사·재판 기록 ⓒ 오마이뉴스

특히, 해당 문건이 담긴 폴더 이름은 '좌파관련'이다. 또한 이 폴더 안에는 '체계도'라는 문건과 '보고서(보관용)'이라는 문건도 있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특정시민단체를 '좌파'로 분류하고 내부 동향을 파악해 이를 윗선에 보고했다는 추측이 가능해지는 대목이다.
 
시민단체에 대한 정부의 감시가 도마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09년 1월에도 경찰이 촛불집회의 배후를 찾겠다며 한국진보연대 집행부의 통화내역을 확인하고, 10분에 한 번씩 실시간으로 위치추적을 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파문이 일었다.
 
이 문서들이 만들어진 날짜도 눈길을 끈다. 기록에는 이 문서들이 만들어진 날짜가 2009년 2월 6일이라고 되어 있다. 그 해 1월에는 서울시 용산구에서 철거에 맞서던 세입자 5명과 경찰진압대원 2명이 사망하는 '용산참사'가 일어났다.
 
당시 한국진보연대는 사태의 진상 규명을 규탄하며 진보적 시민단체들의 연합 모임인 민생민주국민회의를 구성하고 제1야당인 민주당 등과 함께 대대적인 집회를 벌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 정부는 과잉진압 논란에 시달려야 했고, 야당과 시민사회는 이를 계기로 '반MB전선'을 본격화할 수 있었다.
 
2010년 공개된 원충연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의 수첩에도 진보연대, 다함께 등 진보적 시민단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러면서 이 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사찰을 당했을 수도 있다는 의혹은 한 차례 제기된 바 있다. 이번에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진보연대 문건도 작성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이 합법적으로 보장된 공직자 감찰 등의 업무 외에도 전방위적 민간인 사찰을 벌였다는 점이 다시 한 번 확인된 셈이다.
 
"민간인 불법 사찰, 워터게이트보다 열 배는 더 심각한 문제"
 
▲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자료사진) ⓒ 유성호

이와 관련,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공동대표는 "이는 (정부의) 직권 남용이고, 그 자체로 헌법 위반"이라고 우려했다. 
 
박석운 대표는 3일 오후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원충연 수첩'이 공개되면서 한국진보연대가 사찰의 대상이었다는 점은 인지하고 있었다"면서도 "이렇게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처음 듣는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집회 때 (정부가) '촛불에 데었다'고 하는데, 그 이후부터 여기 참여한 시민단체에 잔인하고도 체계적인 (정부의) 보복이 있었지 않았나"라고 반문하며 "이러한 사찰은 기본적으로 국민을 적대시하는 시각에서 출발한 것이라 본다"고 지적했다.
 
"일반론적으로 '그런 (정부) 기관들이 한국진보연대를 감시할 수도 있겠다'고는 추측했지만 정말 그럴 줄은 몰랐다"고 다시 한 번 놀라움을 표한 박 대표는 "결국 대통령이 '머리통'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사찰 관련 자료가 계속해서 공개되고, 이런 것들이 더 있다는 정황이 드러난 이상 모든 의혹을 공개하고 이에 따른 처벌 등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박 대표는 "대통령까지 (사찰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이는 '공모공동정범'에 해당한다"며 "그 법리에 따라 형사처벌을 해야 하고, 당연히 퇴진이나 탄핵이 잇따라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언급한 '공모공동정범'은 '2인 이상이 범죄를 공모했을 때 실제로 범행을 저지르지 않은 이에게도 법적인 책임을 묻는다'는 의미의 법률 용어다.
 
마지막으로 박 대표는 "이번 민간인 불법 사찰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것이며, 헌법을 유린하는 것"이라며 "권력을 악용해 사찰을 행한 만큼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보다 열 배는 더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시민사회계의 원로들은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사과와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앞으로 '민간인 불법사찰 은폐의혹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 비상행동'을 구성하고 오는 7일 관련 촛불집회를 여는 등 구체적인 행동에도 나서기로 결의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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