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피해 김종익씨, 군 제대 한 달 앞둔 아들 갑자기…
등록 : 2012.04.05 21:48수정 : 2012.04.05 23:10

김종익 전 케이비한마음 대표가 5일 오전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민간인 사찰이 자신과 가족에게 남긴 상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책상 위에 신혼 시절 아내와 함께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 액자가 놓여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불법사찰 피해 김종익씨의 악몽
“가족의 사소한 즐거움, 평범한 행복 모두 사라져 새 사업하려해도 상대방 나를 알고 기겁”

2008년 9월21일 새벽.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딸이 필사적으로 팔을 움켜잡았다. 입술을 깨물며 딸의 손을 뿌리치고 나왔다.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지원관실)의 협박에 못 견뎌 회사 대표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긴 다음날, 몸을 피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길이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소식을 듣고 강원도 강릉에서 한달음에 달려온 노구의 은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은사는 오는 동안 휘갈겨 쓴 편지를 건넸다. “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면서 생명의 기를 머금고 바다로 흘러들더라. 건강만은 꼭 챙기게. 다음에 만나세. 내 살아 있을 것이니.” 은사는 사랑하는 제자가 아무런 죄 없이 국가로부터 모든 것을 송두리째 빼앗겼다는 사실에 분을 삭이지 못했다. 결국 석달 만에 지병이 급속도로 악화돼 김씨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3년반째 늘 쫓기는 꿈, 수면제·안정제 먹는다. 자녀들 “한국 떠나 살자”

5일 서울 동작구 자택에서 만난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자 김종익(58)씨는 지난 3년 반의 악몽 같은 시간을 돌아보며 억울함과 분노가 섞인 감정을 억누르지 못했다. 2005년 3월 국민은행에서 명예퇴직한 김씨는 본사의 요청으로 자회사인 ‘케이비(KB)한마음’의 대표를 맡았다. 김씨는 “일본군 성노예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원하는 정도로 사회발전에 참여하던 소심하기 짝이 없는 국민이었다”고 했다. 회사 직원들이 돈 버는 데만 빠져 있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 사내 인문대학을 만들기도 했다. 2008년 6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촛불집회가 이어졌을 때, 김씨는 자신의 블로그에 이명박 대통령의 공공부문 민영화 정책 등을 비판한 ‘쥐코’ 동영상을 나중에 꼼꼼히 챙겨 보려고 링크해뒀다.

그로부터 석 달 뒤인 9월17일 밤, 국민은행 본사에서 일하던 후배한테 연락이 왔다. 후배는 그날 지원관실 점검1팀 원충연 조사관이 찾아와 “김종익씨는 이광재 민주당 의원을 후원하고 있다. 김종익씨가 경영에서 물러나지 않으면 국민은행이 다칠 수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김씨는 자신으로 인해 여러 사람이 곤경에 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려웠다. 대표직을 임원에게 넘기고 21일 일본으로 떠났다. 그러나 지원관실은 만족하지 않았다. 9월 말 지원관실 직원들이 회사로 쳐들어와 회계자료를 가져갔다. 새 대표는 김씨에게 지속적으로 전자우편을 보내 “제발 지분을 넘겨라” 하고 호소·종용했다. 결국 그해 12월 김씨가 회사 지분을 모두 포기했다.

사찰뒤 회사 지분 포기, 수입 끊기고 빚 늘어가. 국가, 폭력 행하고도 뻔뻔

지원관실은 그사이 김씨가 ‘쥐코’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린 걸 빌미로 11월 서울 동작경찰서에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수사의뢰를 했다. 김씨도 ‘어쩌면 사실을 밝힐 기회가 되겠다’고 생각해 한국에 돌아와 수사에 응했다. 동작서는 처음엔 무혐의 결정을 내렸다가, 담당 형사를 교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검찰은 2009년 10월 김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유예했다. 김씨는 불복해 헌법소원을 냈다. 헌법재판소도 감감무소식이자, 실망한 김씨는 결국 2010년 6월 지원관실이 자신의 재산을 불법적으로 강탈한 사실을 방송을 통해 세상에 고발했다.

“이 고발로 사과와 원상회복 조처가 이뤄질 거라 기대했어요.” 그러나 시련은 이어졌다. 김씨의 변호사 사무실에 국세청이 세무조사를 나왔고, 조전혁 한나라당 의원은 김씨가 참여정부의 비자금 창구였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김씨가 회사 이름으로 낸 부조금 대상자 50여명을 다 뒤지고도 참여정부와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자 검찰은 회사 공금 8750만원을 횡령했다는 혐의를 씌워 김씨를 기소했다. 결국 재판에서 김씨는 은사의 병원 치료비 등에 사용한 2000만원에 대해서만 유죄가 인정돼 벌금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검찰 수사 당시 김씨는 새 대표에게 자료를 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는 김씨가 회사로 접근하는 걸 철저하게 막았다. 김씨와 접촉하면 정부가 회사를 더 탄압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새 대표는 내가 3년간 차를 태워주며 같이 출퇴근을 한 사이고, 지금도 같은 아파트 옆 동에 살아요. 그런데도 사찰 이후 한 번도 나한테 연락을 해 온 적이 없어요. 국가의 사찰이 사람의 공포를 전염시키고 인간성을 왜곡시키는 걸 절감했습니다.”

정부 불법 드러났는데 사과 한마디 못받았다. 이런 사회서 살 수 있나

김씨는 사찰 이후 3년 반 동안 수입이 끊겼다. 처음 1~2년은 보험·적금을 해약하며 버텼다. 그동안 새 사업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상대방이 김씨에 대해 알고는 기겁을 하며 거부했다. 두세 번 그런 경험을 겪었다. 형제들의 도움을 받지만 빚이 늘어나고 있다.

김씨는 슈퍼에 물건을 사러 갈 때도 ‘혹시 슈퍼 주인이 추궁당하지 않을까’ 두렵다고 했다. 항상 쫓기는 꿈을 꾼다. 수년째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먹고 있다. 검찰 기소 당시, 기흉 수술을 두번이나 받고 제대를 한 달 앞둔 아들은 강원도 원주에서 춘천의 전방부대로 발령났다. 아들과 딸은 김씨에게 시시때때로 “한국을 떠나서 살자”고 하고, 아흔셋인 장인은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보면서 울기만 한다고 했다.

“가족의 사소한 즐거움, 평범한 행복이 모두 사라졌어요. 앞으로도 영원히 불가능할 것 같아요.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가장 추악한 모습을 겪었으니까요. 국가가 개인의 생계수단을 빼앗는 폭력을 자행하고도 뻔뻔스럽게 버티고 있어요. 이런 사회에서 인간이 살 수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이경미 기자 km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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