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쫓사(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를 아십니까?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입력 : 2012-04-07 10:18:27ㅣ수정 : 2012-04-07 12:34:46

한 달 전 열린 ‘명쫓사’라는 모임이 뒤늦게 알려졌다. 최근 민간인 사찰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부 사찰 피해자는 이 모임에 참석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3월 12일, 봉은사 전 주지인 명진 스님(62)의 초청으로 ‘명쫓사’ 첫 모임이 열렸다. 

참가자들은 ‘명진 스님을 쫓아다니는 사람들’ 모임인 줄 알았지만, 명쫓사의 ‘명’은 ‘명진’이 아니었다. 명쫓사는 ‘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 혹은 ‘이명박을 쫓아낼 사람들’의 준말이다. 명진 스님은 전자보다 후자가 좀 더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 초청으로 김미화씨 등 참석

3월 12일 서울 인사동의 한 식당에서 명쫓사 회원들이 첫 모임을 가졌다, / 단지불회 제공

“이명박 욕하러 온 사람들”(명진 스님의 표현)은 이날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식당에 모였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들도, 이날 모임에서 처음 얼굴을 본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이명박 정부 하에서 겪었던 일들을 털어놨다. 명진 스님이 “호탕하고 호방한 양반”이라고 소개한 정연주 전 KBS 사장(66)은 “명쫓사라는 이름이 멋있다”며 입을 열었다. 명쫓사 모임이 열리기 며칠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당한 김미화씨와 급작스레 판사직에서 쫓겨난 서기호 전 서울북부지법 판사에게 정 전 사장은 “MB정부에서 박해받는 것은 훈장과 같은 일”이라고 격려했다. 3시간가량 술과 격려와 웃음이 오간 자리는 “어렵고 힘든 시대를 희망의 시대로 만들어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자”라며 막을 내렸다.

명쫓사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이명박 정권에 의해 직·간접적으로 자신의 자리에서 쫓겨나야 한다. 방송인 김미화씨는 오랫동안 진행을 맡아왔던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서 갑작스레 하차했다. 참여정부 시절 임명된 정연주 전 KBS 사장,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정헌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은 대통령이 바뀐 이후 줄줄이 자리에서 물러났다. 2008년 초 유인촌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정부의 정치색을 가진 기관장들은 스스로 물러나야”라는 발언을 한 이후였다. 세 사람은 대법원으로부터 해임조치가 부당했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실제로 복직한 사람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장악 피해자들도 명쫓사에 합류했다. 현재 ‘뉴스타파’ 앵커와 취재를 맡고 있는 노종면 전 YTN 기자와 이근행 전 MBC PD는 ‘낙하산 사장’에 반대하는 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해고됐다. 신경민 전 MBC 앵커(현 민주통합당 대변인)는 2008년 촛불시위 국면에서 정부에 비판적인 클로징 멘트를 여러 차례 한 이후 석연찮은 이유로 앵커에서 물러났다.

페이스북에 ‘가카 빅엿’ 발언을 올린 이후 급작스레 판사 재임용에서 탈락한 서기호 전 판사(42·현 통합진보당 사법개혁특위 위원장)도 명쫓사의 회원이다. 서 전 판사는 “명쫓사는 멀쩡히 직장에 다니거나 방송을 진행하다가 MB정부 들어서 쫓겨난 사람들이다. 나도 모임에서 명진 스님을 처음 봤지만 이제 서로 공통분모와 공감대가 있는 사이가 됐다”고 말했다.

김제동·김종익씨도 초청 계획

세간에 알려진 사람들만 명쫓사 회원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쌍용자동차 파업투쟁 이후 감옥을 오갔던 노동자들도 명쫓사에 함께 했다. 최기민 쌍용차노조 정책실장(41)은 “계속되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죽음의 근본 원인은 이명박 정권에 있다. 정부는 쌍용차 문제를 노사문제로 치부했지만, 정부가 배후에서 개입하고 있다는 증거가 언론을 통해 밝혀지고 있다”며 명쫓사 참가 이유를 밝혔다. 

한편 이 자리에는 용산참사 유가족들도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용산참사 다큐멘터리인 <두 개의 문> 시사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용산참사 유가족 정영신씨(38)는 “용산참사 유가족들은 MB정부로부터 가장 피해를 본 당사자 중 하나인데, 정부는 용산참사가 성공적 진압사례라고 하고 있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을 쫓아내겠다는 것보다는 MB정부가 했던 행동을 하지 않을 사람이 다음 대통령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정씨와의 만남을 가진 이후 직접 용산참사 수감자들을 면회하고, 영치금도 넣었다.

명진 스님은 김미화씨와의 식사 모임에서 “이명박에게 쫓겨난 사람들끼리 모여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어 명쫓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명쫓사는 일회성 모임이 아니라, 앞으로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현 시국에 대해 할 말이 있으면 하는 식으로 가고 싶다. 총선이 눈앞에 있다고 급하게 행동할 건 아니고 대선까지 길게 보고 활동해볼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BBK 사건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구속 수감 중인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과 국정원의 사찰 대상이 됐던 방송인 김제동씨, 민간인 불법사찰의 피해 당사자인 김종익씨 등도 명쫓사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정 전 의원과는 지속적으로 편지를 주고받는 사이다. 정 전 의원이 석방되면 같이 명쫓사를 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개인적 일정 문제로 참여하지 못한 김제동, 김종익씨도 2차 모임부터는 함께 할 생각이다.

본인이 불교 신자이기도 한 김종익씨(57)는 본인의 민간인 사찰 문제가 터진 이후부터 명진 스님과 교류를 이어왔다. 김씨는 “명쫓사는 공권력에 의해 피해를 입은 분들이 모여서 서로 위로도 하고 자연스레 의견이 나오는 자리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김씨는 명쫓사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단체로 비쳐지는 것은 경계했다. 그는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는 평범한 시민이 공권력으로부터 폭력적인 사찰을 받고 사유재산을 강탈당한 문제다. 정부와 여당에서 이것을 어떻게든 물타기하고 정파적 이해관계 싸움으로 몰고 가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렇게 민간인 사찰 문제의 시각이 좁혀질까 하는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명쫓사 회원들은 모임을 통해 서로의 문제인식을 공유할 생각이다. 최기민 쌍용차노조 정책실장은 명쫓사를 통해 그동안 소외되었던 노동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최 실장은 “이후 명쫓사 모임에서 쌍용차뿐만 아니라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등 여러 가지 반노동정책에 관한 문제점들을 말하고 싶다. 이명박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명쫓사 회원들과 1500일을 넘기고 있는 재능교육 해고자 문제도 나눌 생각”이라고 말했다.

“여리고 착한 사람까지 쫓아냈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로 등록한 서기호 전 판사는 “이명박 정부 들어 민간인 사찰 등이 불거지면서 사람들 사이에 말조심하는 분위기가 있다. 나의 당선 여부와 무관하게 이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 문제와 사법개혁 문제를 계속해서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은 “이명박 대통령은 김종익씨처럼 여리고 착한 사람까지 쫓아냈다. 얼마 전에는 문재인 이사장과 전화를 하면서 ‘노무현 정부 때 불법사찰이 있었다면 내가 정계은퇴를 하겠다’는 식으로 강하게 나가라고 했지만 야당은 그런 감(感)이 없는 것 같다”며 자신이 직접 나선 이유를 설명했다. 

“정치적으로 보일까봐 다음 모임 총선 이후에” 명쫓사 만든 명진 스님

비가오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언노련 주최로 열린 언론노동자 총궐기대회에서 명진스님이 연사로 나서 현정부의 언론탄압 중단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 명쫓사는 어떤 단체인가. 
“‘이명박 치하’에서 쫓겨나고 피해본 사람들이 모인 것이다.”

- 총선이 코앞인데 이후 모임 소식이 없다. 
“총선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은 마음도 속으론 있었다. 하지만 정치적 움직임으로 보일까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서두르다가 일을 망치면 안 되겠다 싶어서 다음 모임은 총선 이후에 하기로 했다. 템포를 조절하는 것이다.”

- 본인의 근황도 알려달라. 
“나뿐만 아니라 명쫓사 사람들이 다들 총선 일로 바쁘다. 총선 후보로 나선 사람도 포함돼 있다. 나도 이미 이곳저곳에 강연회가 잡혀 있고, 조만간 정동영 민주당 후보의 선거사무소에도 들를 계획이다.”(실제로 명진 스님은 6일 정 후보의 선거사무소를 찾았다.)

- 총선 이후 모임에는 어떤 사람들이 더 참가하나. 
“김제동씨나 김종익씨가 일정이 맞지 않아서 참석을 못 했다. 정봉주 전 의원 같은 경우도 감옥에서 나오게 되면 꼭 같이 할 생각이다. 정 전 의원이 한가해서 그런지 매일같이 편지를 9~10장씩 써서 내게 보낸다.”

-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생각이 듣고 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김종익씨처럼 여리고 착한 사람까지 쫓아냈으면서 노무현 정부 탓을 한다. 노 대통령 초기에 국정원 실무자 한 사람이 노 대통령을 비판한 사람에 대한 파일을 만든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안 노 대통령이 펄펄 뛰면서 그 실무자를 크게 질책하고, 다시는 그런 것 못만들게 했다.”

-본인은 사찰당한 적 없었나. 
“저한테는 사찰기관이 감히 전화를 못한다. 국정원 불교담당 같은 사람이 전화를 걸면 내가 이놈저놈 쌍욕을 퍼부어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었으면 싶나. 
“여기저기서 여야가 박빙이라는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나라 꼴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2004년 총선 때와 비슷한 구도가 형성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야당의 태도로 볼 때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나는 야당이 싸움을 정말 못한다고 본다. 며칠 전에 문재인 이사장과 전화를 해서 ‘노무현 정부 때 불법사찰이 있었다면 정계은퇴 및 법적 책임을 지겠다’며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어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야당은 눈앞의 총선에만 매달려 있어서 그런지 감(感)이 없는 것 같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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