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증언 추적해보니 종착역은 '박정희 비밀 금고'
[추적] 박정희가 남긴 두 개의 금고, 그 속엔…
박세열 기자 기사입력 2012-12-03 오후 12:16:00
새누리당 김무성 중앙선대위 총괄본부장은 지난달 21일 고 노무현 대통령이 "부정을 감추기 위해 자살했다"고 주장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박 후보는 지독한 사람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부정부패는 없는 사람"이라고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었다.
김 본부장은 전직 대통령들의 부패 의혹을 제기하며 흥미로운 증언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그가 92년 대선 승리 후 청와대에 들어갔을 때 일이었다.
"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시고 집권해 청와대에 가보니까 거짓말 안 보태고 이 방(당사 2층 강당)의 40% 정도 되는, 은행지점보다 더 큰 스테인리스 금고가 있었다…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이 현금을 쌓아놓으려고 그 금고를 만든 것이었다…김영삼 전 대통령은 그걸 보고 '나쁜 놈', '도둑놈'이라며 '당장 처리하라'고 해서 8t 트럭 5대 분량이 실려 나갔다."
그렇다. 과거에는 청와대 집무실과 비서실에 금고가 존재했다. 통상 대통령이 직접 관장하는 집무실 금고(금고 I), 그리고 대통령의 '오른팔'인 비서실의 금고(금고 II) 두 개가 존재했다. 김 본부장으로부터 "부정부패가 없는 사람"이라고 소개받은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정권 시절 비서실장이 관장하던 '금고 II'에 있던 돈 6억 원을 꺼내 갔다.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5공 청문회에서 증언한 바이며 박 후보 본인도 돈을 가져갔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직접 관장한 금고 I에도 돈이 있었을까? 그 돈을 박 후보가 꺼내갔을까? 관련해 박 후보는 배치되는 증언을 내 놓고 있다. 금고 I에 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 자금'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 중앙일보 91년 5월 31일자 보도
청와대엔 금고가 두개 있었다…박정희 금고와 비서실장 금고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관계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금고 I', '금고 II'는 박정희 정권 비자금의 저수지라 할 수 있다. 박근혜 후보가 가져간 돈 6억 원이 들어 있던 비서실 '금고 II'의 돈은 박정희 전 대통령 집무실 '금고 I'에서 옮겨간 돈일 가능성이 높다.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회고록 <아, 박정희> 242페이지에 보면 박정희 전 대통령이 비자금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상세한 증언이 나와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1969년 10월부터 1978년 12월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최측근이다.
"나는 정치 성금 대상 기업을 엄선하고 그 기업주를 청와대 신관에서 만나 기업이 마음대로 쓸 수 있는 판공비와 기밀비 중 일부를 민주주의의 필요악적 비용인 정치 자금으로 도와줄 것을 요청하면서 일체 반대 급부는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성금은 최고 1억 원, 최하 1000만 원 범위 내에서 각 기업의 사정에 따라 자율적으로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부탁한 스물 대여섯 기업주들은 모두 기꺼이 승락하고 협조를 확약해 주었다."
기업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정치자금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그는 1년에 추석과 연말에 성금을 걷었고, 1000만 원~1억 원, 25~26개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1년에 4200만 원~42억 원 가량의 돈을 받아 챙겼던 것으로 추정된다. 평균으로 따져도 약 25억 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 91년 5월 31일자 보도를 보면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관계자 Q 씨는 "정기적인 모금은 추석과 연말 두 차례였지요. 대재벌 등 A급 기업은 연간 5~6억 원 정도 낸 걸로 알아요...작은 곳은 2000~5000만 원 정도 내고요. 그래서 합쳐보면 연간 총액이 초기엔 20억 원, 나중엔 50~60억 원 정도였어요"라고 증언했다. 김 전 실장의 증언과 액수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일치한다.
1년에 조성된 비자금을 25억 원 정도로만 잡아도 정부 세출 대비로 계산해 보면 지금 가치로 600억~700억 원에 달한다. 김정렴 전 실장 시절인 9년 동안 걷은 비자금만 현재 가치 약 5000억 원 대 안팎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어지는 김 전 실장의 증언이다.
"(정치 자금을 낸) 기업주가 (청와대) 본관을 떠나자마자 그 때 그 때 박 대통령에게 (정치 자금을) 전달했다. 박 대통령은 성금을 전달 받자마자 즉석에서 봉투 위에 날짜, 기업체명, 금액을 기입했다."
이런 돈은 청와대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관됐을까. <월간조선> 90년 3월 호 보도를 보면 청와대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볼 때 "박 대통령은 비서실장으로부터 수표가 든 봉투를 건네 받으면 일단 집무실 금고(금고 I)에 넣어두었다가 매월 초 정기적으로 김계원 실장(김정렴 전 실장 후임. 박 전 대통령 총격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에게 일정한 액수를 주어 쓰도록 했다. 비서실장 금고(금고 II)에는 늘 1억~2억 원의 잔고가 유지되도록 했다…박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직접 돈을 꺼내 촌지를 주었다는 목격담도 많다. 돈을 직접 받은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한화 뿐 아니라 달러 현찰도 금고에 상당량 보관돼 있던 듯 하다"고 한다.
김계원 전 비서실장은 <월간조선> 인터뷰를 통해 "수십 억 원의 돈이 거기(금고 I)에 들어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이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 박정희 전 대통령의 통치자금 관리인 격이었던 김정렴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79년 2월 7일 주일대사 신임장을 받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비서실장 금고, '금고 II'의 돈 6억 원은 박근혜가 가져갔다
먼저 비서실 금고인 '금고 II'와 관련된 기록을 추적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고 난 후 청와대에 남겨졌던 '금고 II'와 관련해 검찰은 89년 1월 30일 5공 비리 수사 결과 발표를 통해 "10.26 당시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금고에서 발견된 현금 등 6억 1000만 원은 전두환 당시 합수부장이 박근혜에게 전달하고 2억 원은 정승화 당시 육군참모총장에게, 5000만 원은 노재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교부하여 각국에서 이를 사용했으며 나머지 1억 원은 당시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총장의 승인을 받아 합수부 수사비로 사용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관련해 전두환 전 대통령은 89년 12월 31일 '5공 청문회'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한다.
"(박근혜에게 준 6억을 제외한 3억 5000만에 대해)계엄사령관의 허가를 받아 1억 원은 합수부 수사비로 쓰고 2억 원은 육군참모총장에게, 5000만 원은 국방장관에게 전달했다"
청와대 비서실장 금고인 '금고 II'의 돈 중 6억 원이 박근혜 후보에게 돌아갔다. 당시 상황과 관련해 <청와대 비서실>을 쓴 김진 현 중앙일보 논설위원은 1991는 5월 31일 <중앙일보> 기사를 통해 "본부장께서 6억 원은 유족생계비로 근혜 양에게 드리고 나머지는 가지고 오라고 하셨다"는 합수부 관계자의 증언을 보도했다.
이 기사는 "권 보좌관(권숙정 청와대 비서실장 보좌관)은 유족 대표로 입회한 박재홍(당시 동양철관 사장, 현 민자당 의원) 씨와 중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샘소나이트 가방에 현금, 수표 6억 원을 차곡차곡 채워 근혜양에게 전달했다"고 전했다.
박근혜 후보도 이를 확인해 줬다. 1988년 11월호 <여성동아>와 인터뷰에서 박근혜 후보는 "감사한 마음으로 그 돈(금고 II에서 나온 6억 원)을 받았습니다"라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의 통치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돈 6억 원을 받아 갔다는 것이다. 박 후보는 그 돈이 무슨 돈인지 따질 경황이 없었다고 한다.
박 후보는 2007년 당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경선에 출마했을 당시 검증 청문회에서 6억 원과 관련해 "거기서(전두환 전 대통령 측에서) 저에게 봉투를 전해주면서 '박 대통령이 쓰시다 남은 돈이다. 아무 법적인 문제가 없으니까, 지금 생계도 막막하니까, 생계비로 쓰라'고 전해줘서 감사하게 받고 나왔다"고 했다.
6억 원을 정부 세출 대비로 계산해볼 때, 79년에는 10원이 현재 가치로 약 350.45원 정도 된다. 80년은 260.43원이다. 80년을 기준으로 2012년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억 원은 158억 5800만 원 가량 된다. 어마어마한 액수다.
▲ 중앙일보 91년 5월 31일자 보도
박정희 금고, '금고 I'의 돈…박근혜 후보는 알고 있다?
문제는 박 전 대통령 집무실에 있던 '금고 I'이다. '비자금 저수지' 역할을 한 이 금고 속에 돈은 있었을까? 있었다면 얼마였고, 어디로 갔을까? <중앙일보> 91년 5월 31일자 기사에 보면 "'금고 I'의 행방은 어찌됐을까. 10.26 밤 숨진 박 대통령의 양복주머니에서 나온 집무실 금고 열쇠는 근혜 양에게 전달됐으며 근혜 양은 '금고 I'의 내용물을 챙겼다한다. 근혜 씨는 그 부분에 대해 여지껏 확실한 언급을 않고 있어 돈의 액수가 얼마나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고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 집무실 공식조사팀(당시 고건 정무제2수석비서관, 김태호 의전비서관, 정기옥 의전비서관, 박학봉 부속실비서관, 이광형 부속실 부관, 유혁인 정무제1수석비서관)이 79년 11월 14일 조사한 데 따르면 이광형 부관은 <월간조선> 90년 3월호 인터뷰에서 "금고('금고 I')를 열었을 때 거기엔 돈이 한푼도 없었다"고 증언했다. 당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 비서실장을 지냈던 최광수 전 실장도 "('금고 I' 돈은) 박근혜 씨에게 알아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의 죽음 직전까지 그를 수행하던 김계원 전 실장은 "수 십억 원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고 추리하는 것이 억측이라고만 볼 수도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박근혜 후보는 관련해 어떤 말을 했을까. <월간조선> 90년 3월호에서 박 후보는 "(대통령 집무실 금고에는) 서류와 편지가 들어 있었고, 아버님이 개인적으로 쓰실 용돈도 있었다. 액수는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7년 박 후보가 한나라당 경선에 나섰을 당시 박 후보 측 해명은 조금 다르다. "문제의 그 금고(금고 I)는 열쇠로 여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쉽게 열 수 있는 것이었고 내용물도 서류들이었으며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용돈"이 있었다는 데서 "귀중품은 전혀 없었다"는 것으로 해명이 바뀐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집무실 '금고 I'의 돈을 수시로 비서실장실 '금고 II'로 옮겨 보관했다는 증언에 따르면 '금고 I'이 저수지일 가능성이 높지만, 그 내용물의 행방은 묘연한 상황이다. 이 금고 안에 있던 비자금 장부는 박근혜 후보의 동의 하에 청와대 본관 보일러실 화로로 들어갔다고 한다.
▲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가 선거운동 나흘째인 30일 오전 부산 사상구 괘법동 서부터미널 앞에서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오른쪽은 김무성 총괄본부장. ⓒ연합뉴스
2007년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캠프의 차명진 대변인 등은 7월 24일 성명을 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 당시 집무실에 있었던 금고의 내용물을 박근혜 후보가 챙겼다고 했는데 여기에 있던 돈은 어디에 사용됐나"라며 의혹을 제기했다. 진수희 당시 이명박 캠프 대변인도 "또다른 청와대 금고(금고 I)의 돈도 박근혜 후보가 챙겼나. 그 금고에는 얼마의 액수가 들어있었고 그 돈도 생계비 용도로 사용했나"라고 질문했다.
김무성 본부장은 전두환, 노태우 정권 시절 청와대에 있던 거대한 금고에 대해 비난을 퍼부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청와대 금고에 있던 내용물을 가져간 박근혜 후보에 대해서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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