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9&idx=7936


오고성산성(普蘭店吳姑城山城)


중국 요녕성 보란점시(普蘭店市) 성대향(星臺鄕) 곽둔촌(郭屯村) 포도구(葡萄溝) 북쪽에 있는 외패산(巍覇山)에 자리하고 있는 고구려 산성이다. 현지 안내판에는 ‘외패산성(巍覇山城)’으로 되어 있는데 16세기 초반 명나라에서 펴낸『요동지(遼東誌)』에는 위패산성(魏覇山城)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러나 최근까지 나와 있는 책이나 논문에는 오고성산성과 외패산성이라는 두 가지 명칭이 주로 사용되고 있다.


산성은 둘레가 약 5,000m에 이르는 고구려 산성 가운데 대형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는 정확한 조사를 거쳐서 나온 수치가 아니며 아직까지 산성의 정확한 둘레를 측정한 값은 나와 있지 않다. 그만큼 고고학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산성이라고 할 수 있다. 현지 조사를 해 보면 산성은 알려진 것만큼 크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실제로는 둘레 2,900m가 조금 넘는 크기로 장하의 성산산성에 비해 약간 작은 규모이다.


성벽은 산등성이를 따라 쑥돌[花崗巖]로 된 성돌을 쌓아 만들었다. 돌로 쌓은 고구려 산성에서 흔히 발견되는 쐐기꼴 성돌을 겉쌓기 돌로 사용하고, 베틀 북 모양의 긴 마름모꼴 성돌을 속쌓기 돌로 사용하여 양자를 서로 결합시켜 견고하게 벽체를 쌓아 올렸다. 성벽을 쌓을 때는 보통 성벽의 기초부분이나 굽도리 부분은 큰돌을 쓰고 위쪽으로 작은 성돌을 쌓아 올리는 것이 일반적인데, 오고성산성의 경우는 앞면이 약 30×20㎝ 안팎의 일정한 크기의 성돌을 성벽 아래에서부터 성벽 꼭대기까지 사용하였다. 그리고 성벽들 가운데 경사가 심한 곳은 들여쌓기를 많이 하였으며, 기초가 바위인 곳에서는 바위 생김새에 따라 성돌을 깎아 맞추는 ‘그렝이공법’도 확인된다. 또한 산 생김새에 따라 산비탈과 같이 경사가 심한 곳은 산 외피를 깎아서 성벽을 쌓는 외면 쌓기 방법을 사용하였고, 성문과 성문 주변과 같이 상대적으로 평탄하거나 경사가 완만한 곳은 양면 쌓기 방법을 사용하였다. 현재 성벽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은 동벽인데 높이 9.4m까지 측정되었으나 현재는 최고 7m에 이른다. 남벽과 북벽도 잘 남아 있는 편인데 남벽은 성벽 너비 3.4∼3.6m, 높이 3∼4m 정도 남아 있지만 면석이 떨어져 나가고 속쌓기 돌만 남아 있는 구간이 많다. 북벽은 동벽 다음으로 잘 남아 있는데 높이는 최고 5.74m, 성벽 너비 최대 4.5m에 이른다. 성벽 위에서는 성가퀴 흔적과 돌 구덩이[石洞]가 몇 개 확인되었다. 성가퀴는 110㎝ 폭이며, 돌 구덩이는 30×30㎝ 크기의 바른 네모꼴로 구덩이와 구덩이 사이는 190∼220㎝이다. 반면 서벽은 많이 허물어져 성벽이 남아 있지 않은 곳이 많다.


성문은 각 방향마다 하나씩 나 있다. 동문은 ‘八’자처럼 안쪽으로 오므라드는 형태로 산성의 정문 역할을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북문은 특이한 형태의 옹성이다. 동북문이 위치한 곳은 남서쪽과 남동쪽에서 올라오는 두 성벽이 만나는 모서리 지점인데, 이 지점을 연결해서 쌓지 않고 남서쪽의 성벽을 반원형(半圓形)으로 밖으로 내어 쌓으면서 두 성벽 사이에 빈 공간을 만들어 성문을 만들었다. 동북문 안쪽에는 네모꼴의 내성이 있는데 현지에서는 ‘자금성(紫金城)’이라고 한다. 서문은 상대적으로 낮은 곳에 위치하며 수구문이 문 아래로 나 있다. 서문 안쪽에는 샘과 저수지가 있다. 북문은 형태가 불분명한데 암문으로 추측된다. 그밖에 동문 동쪽에 있는 각대와 남벽의 서쪽 모서리 부근에 있는 장대가 잘 남아 있다.


한편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로는 붉은색 꼰무늬[繩紋] 암키와와 연꽃무늬 수막새, 모래가 섞인 바탕흙으로 빚은 질그릇과 같은 것이 있으며, 꽃무늬[花紋] 벽돌과 둥근고리로 된 칼[環首鐵刀], 개원통보(開元通寶)와 같은 유물도 확인되었다. 오고성산성은 산성의 입지나 규모, 축성법, 성안의 각종 시설과 유물 등에서 장하에 있는 성산산성과 비슷한 점이 많이 발견된다. 산성의 축성연대와 역사적 위치 문제는 좀 더 자세한 검토가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산성을 초축한 시기는 성산산성과 거의 같을 것으로 판단된다.(정원철)



참고문헌

大連地區高句麗四座山城略考(許明綱, 博物館硏究, 1996-1), 

벽류하(碧流河) 유역의 고구려 산성과 관방체계(서길수, 고구려연구11, 고구려연구회, 2001), 

高句麗古城硏究(王綿厚, 文物出版社,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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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패산성 목록  https://tadream.tistory.com/26818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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