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portal.nrich.go.kr/kor/archeologyUsrView.do?menuIdx=799&idx=8644
태자성(新賓 太子城)
중국 요녕성 신빈현(新賓縣) 하협하향(下夾河鄕) 태자성촌(太子城村) 북쪽에 있는 고구려 산성이다. 산성 북쪽에는 태자하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고, 산성 동쪽에는 소협하(小夾河)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흘러 태자하로 유입된다. 산성은 노모저강(老母猪崗)의 지맥이 북동방향으로 연장된 산등성이의 북동쪽 끝 부분에 자리하는데, 산성 북쪽과 동쪽은 높이 30∼40m, 40∼80m의 가파른 절벽이며 서쪽은 도로가 내려다보이는 높이 20m의 산비탈이다.
산성의 평면 형태는 타원형에 가까운데 장축 방향은 북동∼남서 방향이며 대체로 동쪽과 서쪽 양쪽이 높고 가운데가 낮은 말안장과 같은 꼴이다. 1980년대 무순시 박물관(撫順市博物館)에서 세 차례 조사를 하여 산성에 대한 기본적인 상황이 알려져 있다.
산성은 북벽 280m, 동벽 395m, 남벽 260m, 서벽 490m로 전체 둘레는 1,425m에 이른다. 성벽을 쌓은 방법은 구간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북벽은 산등성이를 골격으로 산등성이 안팎에 양면으로 돌을 쌓아 성벽을 만들었고,
동벽은 절벽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장 자리를 따라 낮게 성벽을 쌓았다. 남벽은 동쪽 구간과 서쪽 구간이 차이가 나는데 동쪽 구간은 동벽과 같지만 서쪽 구간은 가파른 비탈이나 낮은 절벽의 바깥쪽을 너비 2m, 높이 5m 크기로 깎아 성벽의 기초 홈으로 삼고 거기에 바짝 붙여 층층이 쌓으면서 그 안쪽에는 잔돌을 채워 넣어 성벽을 만들었다. 그리고 쌓은 성벽이 깎아낸 비탈면의 위쪽과 같은 높이가 되면 그 위쪽에 다시 낮은 성벽을 쌓아 마무리하였다.
한편 서벽도 구간별로 쌓은 방법이 차이가나는데 서벽 남단과 서단은 기본적으로 남벽 서쪽 구간과 비슷하나 흙과 돌을 섞어 성벽을 쌓았고 성벽 바깥쪽 아래쪽에 보호벽을 쌓은 차이가 있다. 서벽 북단은 완만한 경사로 되어 있기 때문에 높이 3∼4m, 아래와 위 너비 각 3m의 큰 성벽을 양면 쌓기 방법을 사용하여 쌓고, 바깥쪽 아래에는 높이 30∼40m, 경사도 60˚의 보호벽을 쌓았다. 내성의 성벽은 산성 동쪽에서 남북으로 일직선으로 길게 축조하여 산성의 동쪽 부분을 내성으로 사용하였는데 내성벽의 전체 길이는 280m, 아래 너비 2.5m, 위 너비 2m, 남은 높이는 3m이다. 한편 외성벽과 내성벽에 사용된 성돌은 형태에서 일정한 차이를 보이는데 내성벽에 사용된 성돌이 쐐기꼴 성돌이라면 외성벽에 사용된 성돌 대부분은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에 가까운 성돌이 대부분이다.
성문은 북문과 남문에 하나씩 있고 내성 성벽 가운데에도 성문이 1개소 있다. 북문은 말안장과 같이 ‘∪’자꼴로 가운데가 안쪽으로 좁아드는 모양의 옹성(甕城)으로 산성의 출입과 배수의 주요 통로이다. 문 안쪽에는 길이 25m, 아래 너비 5m, 위 너비 3m, 높이 3m의 성벽이 가로 놓여 있으나 성벽이 많이 무너져 내려 그 구조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한편 북문 동쪽에는 치가 하나 있는데 밖으로 돌출된 혀와 같은 꼴의 절벽을 평평하게 다듬은 것으로 남북 길이 18m, 동서 너비 10m, 높이 20m이다. 반대쪽인 북문 서쪽 성벽 밖에는 작은 대지가 있는데 작은 방어용 벽체를 만들어 치와 마주하게 만들었다. 형태에는 차이가 있으나 둘 다 북문의 방어력을 높이기 위한 적대 역할을 하였다. 남문은 너비 2m의 터진 곳으로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하며 내성 성문은 입구가 성문 안쪽으로 나 있는 장방형의 내옹성이다.
한편 산성 동서 양쪽 산꼭대기에는 2곳의 봉수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서쪽 봉수는 해발 348.2m에 산성 안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아래 지름 25m, 꼭대기 지름 4m, 높이 6m이며 봉수 주변으로는 너비 2m 깊이 0.5∼1m의 도랑이 조성되었다. 동쪽 봉수는 내성 안쪽에서 가장 높은 지점에 자리하며 아래 지름 15m, 꼭대기 지름 2.5m, 높이 4m로 서쪽의 것보다 약간 작다. 평대는 판돌을 사용하여 만들었으며 주변에는 명대 푸른 벽돌이 확인된다. 산성 안에는 장대나 망대가 따로 설치되지 않았는데 이 양쪽의 봉화대가 장대와 망대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을 추정된다.
산성 안에서 발견된 유물은 대부분 붉은색 기와인데, 암키와와 수키와가 모두 확인된다. 암키와는 주로 꼰무늬[繩紋]가 시문된 것인데 부분적으로 회색 꼰무늬 기와도 일부 확인된다. 반면 수키와는 민무늬로 된 것이다. 질그릇은 그렇게 많지 않은데 고운 바탕흙으로 빚은 회색질그릇, 붉은색 질그릇, 유약 바른 어두운 황록색 질그릇 등이 발견되었다.
태자성이 위치한 태자하 상류 일대에는 고구려 초기 양맥(梁貊)이 거주하였는데 고구려는 3세기 후반까지 이들을 간접적으로 지배하다가 4세기부터 지방관을 파견하여 직접 통치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태자성은 그 무렵 군사적인 목적과 함께 이 일대의 지방 통치를 위한 거점성의 기능을 했던 것으로 판단된다.(정원철)
참고문헌
遼寧新濱高句麗太子城(撫順市博物館, 考古, 1992-4),
고구려성Ⅰ-압록강 중상류편-(국방군사연구소, 1998),
高句麗古城硏究(王綿厚,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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