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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하고 위엄있는 옛 산성 모습 고스란히 간직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 <42>
데스크승인 2010.12.06   남도일보 2012.10.24 15:50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성벽 둘레 2,500m
서벽 서남쪽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 태자하 흘러 
석대 안쪽에 계단 쌓아 성벽 지탱·전투력 극대화

당나라 이후 백암성 이름은 바뀌는데, 요나라 때는 암주(岩州), 금나라 때는 석성현(石城縣)으로 불렀다. 원나라와 명나라는 이 성을 보수(補修)하여 수비하는 곳으로 사용했다. 언제, 무슨 연유로 이 성을 연주성(燕州城)이라 고쳐 불렀는지는 잘 모르나 현지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다. 그들은 또 이 연주성이 고구려의 옛 성이라는 것은 알아도 백암성이라고 불렀다는 것은 거의 모르고 있었다.

연주성, 즉 백암성은 요동에서 옛 모습의 보존상태가 가장 좋은 고구려산성으로, 요령성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요양에서 동쪽으로 약간 북으로 치우쳐 30km 나아가면 등탑시 서대요향 성문구촌에 이른다. 이 성문구촌은 바로 백암성의 성문 밖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을이어서 그렇게 불린다. 이 마을 동남쪽 어귀의 태자하 강변에서부터 강물을 이끌어 서북쪽으로 등탑 지역 드넓은 벌판(태자하 북안의 평야)을 관개하고 있는 길이 수십km 되는 폭넓은 수로가 이 마을 남쪽큰길을 따라 동서로 나 있다. 이 수로와 평행되는 큰 길을 따라 성문구촌에 들어서니 마을 동쪽 끄트머리 뒤로 높고 푸른 산봉우리가 홀로 서 있는데 그 중턱에 회백색 나는 기다란 담벼락이 둥그렇게 죽 이어져 있다. 그 모습이 마치 산등성이에 허리띠를 맨 것 같았다. 그곳이 바로 백암성이다.

백암성의 성문은 서쪽 성벽 가장 낮은 곳에 나있다. 산성의 유일한 성문이다. 산성의 유일한 배수구 역시 이곳에 설치되어 있다. 성문터는 요즘 요령성 고고학발굴부문에서 출입을 금지한 채 한창 발굴 중이다.

정문에서 북으로 약 200m 돌아가면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산비탈이 나타난다. 거기서 산성으로 쉽게 오를 수 있다. 이 산비탈에 ‘연주성(燕州城)’이라고 새긴 문화재 비석이 세워져 있다. 조금 더 올라가면 산성서벽의 북쪽 부분이다. 서벽은 밑돌만 남아 있을 뿐 거의 사라지고 없다. 성벽을 쌓았던 돌은 거의가 산 아래 마을사람들이 가져다 집을 짓거나 담벼락을 쌓는 데 썼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성문구촌의 담장들은 거의가 가공한 네모난 돌들이다.

산성은 불규칙적인 네모형으로 성벽 둘레의 길이는 약 2천500m다. 사서에 의하면 당나라군이 백암성을 공략할 때, 장수 이적의 군사들이 서남쪽 성벽을 주로 공격하고 당태종이 거느리는 주력군은 서북쪽을 공격했다고 하는데 그 이유를 알만 했다. 산성의 서남쪽 성벽은 지세가 비교적 낮은 태자하 기슭에 있고, 서북쪽 성벽은 경사가 비교적 완만한 비탈에 있기 때문이다.

산성 서벽 북쪽 끄트머리에서 북벽 터를 따라 동쪽으로 올라가니 남아있는 성벽이 점차 높아지다가 평평해졌다. 북쪽 성벽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 윗부분의 너비만 해도 약 3는 되어 보이고 높이는 약 7~8m에 달했으며 길이는 400m가 넘는다. 보존이 잘된 셈이다. 이 성벽 바깥쪽으로 현지사람들이 마면(馬面)이라 부르는 치가 5개 남아있다. 그중에 제일 서쪽에 있는 치는 허물어져 돌무지로 되었고, 나머지 4개는 거의 옛 모습 그대로다. 북벽 동쪽부분, 즉 성벽 동북쪽 모서리에서 서쪽으로 250m쯤 되는 범위 안에 벽 바깥에 튀어나온 이 5개 마면은 길이가 모두 8.4m고, 높이는 7~8m로 33~38층의 다듬은 돌로 쌓아놓았다. 북벽 아래 비탈에서 위로 비스듬히 창공을 배경으로 거연히 서있는 회백색의 커다란 마면과 그것들을 이어놓은 높고 기다란 성벽을 바라보노라니 웅장하고 위엄 있어 보였다. 아마 1300여 년 전에 엄청난 병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당나라 대군과 결사적으로 항전하려던 당시의 백암성 고구려인 기백이 아직까지 스며들어 있어 그렇지 않은가 싶다.

이 5개 마면이 있는 북벽 동쪽 토막의 구조가 매우 흥미롭다. 현재 어떤 것은 허물어져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지만 이 벽 안쪽으로 마면과 마면 사이에 동서길이가 2~8m이고 남북 너비가 3~4m이며 높이가 성벽보다 1m 낮은 석대가 모두 5개 쌓여 있었던 것이다. 석대의 안쪽에는 모두 계단이 있었다는 사실을 돌무지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이는 마면과 성벽을 더 튼튼히 지탱하고, 또한 전투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왜냐면 성벽 안쪽 석대에서도 적지 않은 군사들이 지켜서며 쳐들어오는 적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성벽을 사이에 두고 안팎으로 마면과 석대가 서로 맞물리게 쌓은 것은 요동 고구려산성 중에서 특이한 것이다.

우리는 동북쪽 성벽 모서리에서 동벽 터를 따라 남쪽으로 나아갔다. 동벽은 바깥쪽에서 보면 높게 보이지만 안쪽에서 보면 평평한 바위 판이 바로 발밑까지 올라와 있어 마치 평지위에 성벽을 쌓아놓은 듯했다. 성벽 동북쪽 모서리에서 안쪽으로 얼마 안 가니 옛날의 저수지 터가 보였는데, 그곳에는 물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습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이 자라고 있었다. 동벽과 남벽은 둔각으로 사귄다. 그 모서리의 성벽은 백암성 성벽 중에서 가장 높다. 여기서부터 서벽은 서남쪽으로 산세를 따라 비스듬히 약 150m 뻗어서 벼랑 끝까지 내려갔다. 그 까마득한 벼랑 아래로는 태자하가 흐르고 있다. 이곳에서 구불구불 서쪽으로 한참 나아가다가 서북방향으로 꺾이어 성문구촌 마을가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자하 강기슭의 깎아지른 듯한 현애절벽으로서 산성의 천연성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서 이쪽으로부터 산성으로 쳐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성 안의 감제 고지 동남쪽 구석에 돌로 둘러쌓은 석벽과 그 안에 세워진 석대가 우뚝 서 있다. 산 아래 멀리서부터 유표하게 보이는 이 석대는 산성의 전망대였고 그 주위로 네모나게 둘러쌓은 석벽은 현지 사람들이 말하는 내성이다. 내성의 길이는 45m, 너비는 35m다. 가공석으로 쌓은 전망대는 약 8m의 정사각형으로 높이가 약 5m 된다. 이 전망대에 올라서면 성안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올 뿐만 아니라 산성 바깥의 기막힌 정경도 눈앞에 펼쳐진다. 동쪽에는 산 아래 개활지 건너편으로 겹을 이룬 청산이 아득하게 이어져 있고, 남쪽과 서쪽에는 산성 동남쪽에서 흘러와 산성 동쪽에서 굽이돌아 성 남쪽 낭떠러지 아래를 거쳐 서쪽으로 흐르는 있는 태자하와 그 옆에 서북쪽으로 쭉 뻗어나간 기나긴 수로를 따라 흐르고 있는 관개수가 태양 아래서 은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서북쪽에는 끝없이 넓은 구릉과 평원에 촘촘히 널려 있는 시멘트나 석회석 가마에서 뿌연 연기와 먼지를 하늘을 덮을 듯 뿜고 있어 초연이 자욱한 전장을 방불케 한다. 이러한 장면은 환경보호가 중요시되는 요즘, 나름대로 볼거리이지 않을까 싶다.

백암성 성벽을 쌓은 돌은 회백색 나는 석회암으로, 백암성 안 어디에나 널려 있는 자연석이다. 아마 백암성이란 이름도 그래서 생겨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백암성 축성공법에서 힌트를 받아서 그런지, 쐐기돌로 서로 엇물리게 쌓는 방법도 현지 주민들이 애용하는 건축기술이다. 백암성에서는 일찍 쇠도끼, 무쇠 솥과 활촉 등 철기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줄무늬기와조각 등 건물 유적들도 많이 발견되었으며, 성 밖 고구려무덤에서는 청동기 유물도 나왔다고 한다. 현재 성 안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물로는 금나라 때의 석성봉안보국사(石城鳳安保國寺) 비석 머리 부분이 있다.

성문구촌 서쪽에 관둔(官屯)이란 마을이 있고 그 너머로 고려채(高麗寨)라고 하는 마을이 바라보였다. 관둔 북쪽에 원래 고려묘지들이 많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옥수수 밭으로 뒤덮여 있다. 그곳에서 고구려시기의 적지 않은 유물들이 출토되었고 그중 일부 유물은 지역 주민들 손에 들어갔다고 산성 위에서 만난 서씨라는 현지의 사내가 알려주었다.

또한 백암성 남쪽으로 태자하 남안 강관둔(江官屯) 마을에는 요나라와 금나라시기에 도자기를 굽는 이름난 민요(民窯) 유적지가 있는데 이곳 역시 요령성 중점문화재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은 중국 북방지역의 중요한 민요로 북방 도자기예술의 역사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지금도 가끔 태자하가 범람할 때면 이곳에서 옛날의 여러 가지 도자기 조각들이 드러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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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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