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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인 집안 고구려유적탐방  http://cafe.naver.com/travelimage/499
* 위 두 글에서 발췌함...


오녀산성 전설

옛날 맹가촌이란 마을에 맹, 공, 이, 강, 양의 성을 가진 10여호가 아주 평화로이 살고 있었다. 맹가의 집에는 아들 대강과 딸 춘화가 있고 이가 집에는 춘련이란 딸이 있었다. 두 집은 한 가족처럼 살았다. 맹가는 부부 모두 무예가 아주 뛰어났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동리에서 20여리 떨어진 곳에 동금창(佟金昌)이란 발해의 관리가 와서 군대를 주둔시키고 성을 쌓았다. 그에게는 외아들 동우가 있었다. 그는 무예를 좀 하는데다 아버지의 힘을 믿고 못된 짓을 자행하였다. 아버지 동금창이 맹가의 무예 솜씨 이야기를 듣고 데려오고자 하나 방법이 없었다. 이를 들은 아들이 어느 날 군사 20여명을 데리고 맹가의 집에 물 좀 달라고 들어가서는 맹가를 붙잡아 가버렸다. 그때 아들 대강의 나이는 12세, 딸 춘화는 11세였다. 원수를 갚고자 한 어머니는 자녀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이를 본 다른 집의 딸, 즉 춘련과 강가 집의 딸 춘풍, 공가의 딸 춘홍, 양가의 딸 춘영 등이 다 무예를 익혔다.
 
  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붙들려간 아버지에게서는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비장(秘藏)의 보검(寶劍)인 원앙검(鴛鴦劍)을 아들에게 전해주며 복수를 당부하고 죽었다. 어느 날 대강과 춘련이 나무를 하러 갔다. 미모의 춘련을 본 동우는 흑심이 생겼다. 춘련은 달아났다. 이때부터 이들과 동가의 관군 사이에 싸움이 붙는다. 수가 모자라는 이들은 부득이 남녀 두 대로 나누어 남자대는 대강이 거느리고 연통산으로 들어가고 여자대는 춘련 등 다섯이 거느리고 올자산으로 들어간다. 유사시에는 서로 연기로 신호를 하기로 하였다. 한편 대강은 춘련에게 그 원앙검을 주었다. 올자산은 수비에 아주 좋았다. 올라올 통로가 거의 막히어 있었다. 산에서 1년이 지났다. 100여명의 여자들이 맹훈련을 하였다.
 
어느 날 동우가 쳐들어 왔다. 여자들은 용감히 물리쳤다. 동우는 발해 나라에 기별하여 1,000명 군인을 데리고 다시 쳐들어 왔다. 그러나 500여명을 잃고 퇴각하였다. 춘련의 원앙검은 무우를 베듯 목을 잘랐다. 관군은 다시 소에다 불을 붙여 공격을 하였으나 워낙 성이 견고하여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자군에서도 8일간  밤낮으로 계속 싸우느라 먹지도 못하고 자지도 못하여 기진맥진한데다 사상자도 많이 생겼다. 잠시 눈을 붙였다. 그 사이 관군은 성안의 큰 나무를 발견하고 거기 줄을 매어 성안으로 들어왔다. 대혈투 끝에 여자군은 다 죽었고 마지막으로 다섯 여자도 다 죽었다. 한편 연통산에서 올자산의 신호를 본 대강은 달려가고자 하나 관군의 포위망이 두터워 지체되었다. 겨우 뚫고 올자산으로 달려와 관군을 물리치고 성안으로 들어왔으나 이미 다섯 여자는 죽어 있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다. 대를 이어 복수를 하는 한족 특유의 사상이 배인 섬뜩한 이야기이다. 로맨스도 없고 인정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절치부심 복수뿐이다. 더구나 고구려 도읍으로부터는 천년이 가까운 세월 뒤, 발해의 이야기라 한다. 게다가 발해를 아주 악당으로 취급한 이야기 구도가 우리 민족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그런데도 이 전설로 인하여 이름마저 오녀산성으로 바꾸었다니 다분히 의도적인 것 같다. 아무래도 고구려를 의식적으로 없애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마땅히 이곳은 그냥 부르기 좋게 고구려성이라든지 아니면 옛 이름 그대로 졸본성(卒本城) 또는 홀승골성(紇升骨城)이라고 불러야 이치에 맞는 것이다.

주차장에 타고 온 버스를 세우고는 다시 그곳 전용의 버스로 바꾸어 타라고 하였다. 장사 속이 보이어 웃음이 나왔다. 한참을 타고 산으로 오르던 버스는 어느 곳에 멈춘다. 산성의 서문 입구라 하였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걸어 올라야 하는 것이다. 쳐다보니 까마득하였다. 해발 820m라 하였다. 그러나 그 높이가 문제가 아니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어서 문제였다. 돌층계를 따라 똑바로 오르는 길이었다. 조금 오르는데 벌써 힘이 들었다. 모두 999 계단이라 하였다. 한 계단 한 계단 밟아 오르며 흥얼거려 보았다.

               이름마저 잃었던가? 오녀산성 웬 말인가?
               그래도 그리운 정 졸본성 그 땅이거니
               돌 층계 구백구십구 쉬어쉬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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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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