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k9.htm
*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이 길어 그리고 논문형태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내용에 따라 좀 분리해 보았습니다. 

Ⅲ.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

고구려(高句麗)=고려(高麗) : 국호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0
기록에서의 고구려 성(城)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3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5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4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성에 관한 논문 가운데서 가장 포괄적으로 다룬 것은 1986년 중국 고고학회 제5차년회논문집에 요령성 박물관의 진대위(陳大爲)씨가 발표한 [요령 고구려 산성 초탐(初探)]이다. 진대위 씨에 따르면 현재 요령성 안에 87개의 고구려 산성이 있다고 한다. 진 씨는 87개의 규모에 따라 대,중,소형으로 구분하고 있다.

1) 대형 산성(둘레 2 Km 정도): 27 곳. 주로 요하(遼河) 동쪽 가의 산간 지역과 평원이 맞닿는 곳에 많다. 비교적 전형적인 것은 와방점시의 "용담산성"과 "남고산성", 개현(蓋縣)의 "고려성", 해성(海城)의 "영성자성", 심양 진상둔(陳相屯)의 "탑산산성", 무순시의 "고이산성", 철령의 "최진보산성", 개원의 "위원보(威遠堡)산성" 등이다.

2) 중형 산성(1∼2 Km): 17 곳. 주로 요하 동쪽의 비교적 큰 지류 사이에 있다.
벽류하(碧流河) 유역 - 적산산성, 성산산성
영나하(英那河) 유역 - 선성산(旋城山)산성
대양하(大洋河) 유역 - 삼성산, 낭낭성
애하(靉河)유역 - 초하구(草河口)산성, 통원보(通遠堡)산성
포석하(蒲石河) 유역 - 관수(灌水)산성
태자하(太子河) 유역 - 암주성, 삼송(杉松)산성
자하(紫河) 유역 - 청룡산산성

3) 소형 산성(200∼1000 m): 37 곳. 대,중형 산성의 주위에 분포되어 있다.

한편 [동북역사지리]에는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산성 54개를 정리하여 놓았다. 진 씨의 논문처럼 자세하지는 않지만 소재지가 분명하게 밝혀져 현지 답사하는데 도움이 컸다.

필자는 위에서 본 자료들을 참고 삼아 필자가 직접 답사한 산성의 현황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환인(桓仁) 주위의 고구려 산성 (정리번호 1∼6번)

환인현 문물지에는 환인에 7개의 산성이 있다고 했는데 그 가운데 4개의 성을 답사하였다. 오녀산성은 본문에서 자세하게 다루기 때문에 생략한다. 오녀산성이 전쟁 때 쓰는 산성인데 반해 평지성이라고 보는 하고성자성은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집들이 꽉 들어찬 마을이 되어 버렸다. 고검지(高儉地)산성은 주위의 마을에서 돌을 허물어 간 곳이 많지만 아직도 3∼4미터 정도의 높은 성벽이 남아 있다. 사첨자향에 있는 산성의 성벽은 거의 허물어지고 한두군데 2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한편 신빈의 흑구산성과 전수호 산성은 부이강 가에서 환인 오녀산성을 통해 집안으로 이어지는 길목을 막는 중요한 성들인데 산꼭대기의 분지에 있는 흑구산성의 보존 상태가 비교적 좋고 전수호산성은 훼손 상태가 심하다.

2. 소자하(蘇子河) → 혼하(渾河)유역의 고구려 산성 (정리번호 7∼15번)

학자들이 고구려 목저성(木底城)이라고 비정하는 목기성(木奇城)은 목기 옆을 흐르는 소자하를 건너 평지에 있는데 성벽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으나 고구려 때의 기왓조각들을 쉽게 주을 수 있다.

목기에서 남잡목(南雜木)으로 가는 국도 상에 일도관,이도관,삼도관(三道關)이라는 3개의 차단성이 있는데 이도관,삼도관의 유적이 뚜렷이 나타난다. 현지에서 "설인귀의 동정(東征)" 때 고구려에서 쌓은 것이라는 증언이 많았다.

일도관과 이도관 사이에 있는 오룡산성(五龍山城)은 토석혼축성으로 성벽과 성벽 위의 길(현지에서는 말 타고 다닌 마도라고 한다)이 잘 남아 있다.

[동북역사지리]에서는 혼하 주변에 있는 여섯 성을 고구려 때의 성으로 비정하였다. 즉 산성자산성=북치성, 남산성산성=청암성, 철배산성=남협성, 노동공원=현토성, 고이산산성=신성, 탑산산성=개모성이다.

영액문향의 산성자산성은 토성으로 지금도 산성자리가 뚜렷하나 그다지 큰 산성이 아니고, 남산성산성은 오녀산성 처럼 4면이 모두 절벽인데 성을 쌓은 흔적은 찾기 힘들었다. 철배산성은 대화방(大伙房)저수지 동쪽 끝의 혼하와 소자하가 갈라지는 삼각주에 있다. 배를 타야만 건널 수 있다. 고이산산성은 무순시 북쪽에 있는데 철령가는 국도가 바로 이 성 안을 통과한다. 무순 시내에 있는 노동공원은 원래 현토성이라고 하는데 지금도 고구려의 기왓장들이 길에서 발견될 정도이다. 개모성이라는 탑산산성은 토성인데다 채석장이 되어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훼손되어 있다.

3. 태자하 유역의 고구려 산성(정리 번호 16∼23번)

환인을 떠나 고검지(高儉地)산성을 지나 평정산(平頂山)을 넘으면 태자하가 시작된다. 태자하를 따라 하협하(下夾河)에 다다르면 강 남쪽에 태자성산성이 있는데, 북쪽의 삼송산성(杉松山城)과 함께 마치 평지성과 산성처럼 태자성은 강가의 낮은 언덕에 있고 삼송산성은 깊은 산골에 있다. 두 성 모두 성벽이 남아 있는데 특히 삼송산성에는 고구려 때의 석축법을 알 수 있을 만큼 2미터 이상의 석축이 잘 남아 있다.

북풍성(北豊城)으로 비정되고 있는 본계 소시(小市)의 하보(下堡)산성은 성벽도 빈약하고 규모도 크지 않았고 마미주(磨米州)로 비정되는 변우산성은 토성으로 성벽의 흔적은 뚜렸하다.

태자하 유역에서 가장 튼튼하고 역사서에도 자주 나오는 백암성이라고 비정되는 연주성과 요양시의 요동성은 크게 대조를 보이고 있다. 요동성은 흔적조차도 없이 도시가 되어 버려 박물관에 가서야 백탑의 동쪽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반면에 백암성은 압록강 이북에 남아 있는 고구려 산성 가운데 가장 견고하고 웅장한 모습을 아직도 보여 주고 있다 (연주성 참조).

요동성에서 조금 내려가면 안산(鞍山)이 있고 그 동남쪽에 천산이 있다. 천산에는 당나라 때의 옛성이 있는데 설인귀가 그 성을 점령한 얘기가 전해 온다. 현재 옛 성벽으로 성을 재현하여 관광지를 만들었는데, 점령하기 전에는 마땅히 고구려 산성이었을 것이다. 태자하와 혼하가 합해지는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해성이 있고, 그곳에서 다시 동남쪽으로 조금 가면 안시성으로 비정하고 있는 영성자성이 나온다. 토성이지만 성의 윤곽이 뚜렷하다. 정문인 서문은 그 높이가 상당히 높은데 현지인 들의 말에 따르면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한다.

4. 애하(河)유역의 고구려 산성(정리 번호 24∼28번)

애하의 상류인 관수향(灌水鄕)에 고력성(高力城)이 있는데 고력(高力)은 고려(高麗)와 중국어 발음이 같기 때문에 지도에서 바꾼 것으로 고려성, 즉 고구려 성이다. 현지에서는 마을 이름을 따 고대보(高臺堡)산성이라고 한다. 산성 서남쪽에 문이 있는데 무너졌지만 흔적이 뚜렷하고 산정에 석성이 약간 남아 있지만 주민들이 돌을 굴려다 집을 지어 버려 거의 없어졌다.

애하와 초하(草河)가 만나는 곳에 봉황성이 있는데(봉황성 참조), 초하에 두 개의 산성이 있다. 초하구진의 이가보(李家堡)산성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고 나무가 많이 자라 찾기 힘들지만 성벽은 비교적 잘 남아 있다. 통원보진의 산성구산성은 규모도 작고 보존 상태도 좋지 않은 편이다. 한편 단동 동쪽 구련성향에 있는 애하첨(靉河尖)성터는 표지판 이외에는 성벽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5. 대양하(大洋河)유역의 고구려 산성(29∼33번)

대양하 유역에는 특히 수암(岫岩)을 중심으로 고구려 산성이 많다. 대양하의 상류인 황화전(黃花甸) 근방에 보고된 4개의 산성 가운데 진가보(陳家堡)에 있는 성은 찾지 못하고 노와촌(老窩村), 영천촌, 곽가령촌에 있는 세 성만 답사하였다.

노와촌의 산성은 현지에서 고려산성이라고 부르는데 동네 사람들이 돌을 가져다가 집을 짓느라 모두 허물어 버려 성벽을 찾기 힘들다. 영천촌의 산성도 현지인 들이 고려성이라고 부르는데 원형이 상당히 많이 남은 토성이다. 곽가령촌의 고려성은 초자하(哨子河)라는 지류가 대양하로 흘러들어 가는 삼각주에 있다. 이곳도 마을이 가까워 돌멩이를 주어다 집을 지어 흔적만 남아 있다.

대양하 유역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은 것은 낭낭산성이다. [동북역사지리]에서는 이곳을 적리성이라고 비정하고 있는데 관리인까지 있어 대단히 잘 보존되어 있다.

6. 장하(莊河)유역의 고구려 산성(34 번)

평산향(平山鄕)에 선성산(旋城山) 산성이 있는데 관광지를 개발하느라 모두 새로 쌓았다. 고증을 거치지 않고 성벽을 들여서 진짜 옛 성터가 해자처럼 남아 있다.

7. 벽류하(碧流河)유역의 고구려 산성(35∼39)

벽류하 상류에 있는 두 개의 산성이 있다. 나둔향(羅屯鄕)에 있는 적산산성은 험한 계곡을 막은 정문에 무너진 돌담이 남아 있을 뿐이지만 지형 지세가 험하고 규모가 커, 큰 성이었을 것으로 보였다. 십자가향(什子街鄕)의 고려산성은 둘레가 약 400여 미터로 작은 성이지만 높이 3미터가 넘는 석성의 성벽들이 잘 남아 있다.

벽류하가 바다로 흘러들어 가기 전 성산 부근에 대련과 난동 사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산(성산 참조)이 있으며, 그 서쪽에 있는 묵반향(墨盤鄕)의 고려산성은 꼭대기의 묘 빼놓고는 인공으로 쌓은 성이 없고 모두 자연석을 이용하였다는 것이 특이했다.

성자탄(城子坦) 서쪽에 있는 성대향(星臺鄕)도 벽류하 유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 성산과 쌍벽을 이룰 만큼 규모도 크고 튼튼한 오고산성이 있다(오고산성 참조).

7. 복주하(復州河)유역의 고구려 산성(40∼44번)

원대향(元臺鄕)에 있는 노백산성은 규모가 작아 보(堡)에 행당하고, 복주하 상류에서 큰 성은 득리사 산성과 남고점(嵐崓店)산성이다. 득리사는 말안장형의 산성이고 남고점을 산 정상을 둘러싼 산보형(山堡型)이다. 남고점산성은 군사(공군과 해군의 레이다 기지)기지 지을 때 지하 벙커 만들며 돌들을 다 써 버려 성벽은 남아있지 않다는 것이 현지 주민들의 증언이다. 득리사의 마권자산성은 득리사산성을 올려다보는 낮은 산에 쌓았는데 돌로 쌓은 흔적만 남아 있다.

태양승(太陽升)의 고려산성은 성벽을 쌓은 곳은 극히 일부이고 마치 높은 산성을 쌓은 것처럼 불쑥 올라온 자연 지세를 잘 이용하였다.

8. 수군의 첫 공격지 대흑산산성(45번)

대련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금현(金縣)에 있는 대흑산산성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비사성(卑沙城)이라고 비정한다. 비사성은 중국이 수로를 통해 요동반도를 쳐들어 올 때 맨 먼저 맞딱드린 성이기 때문에 성도 견고했지만 공격 또한 집요했다. 대흑산산성은 몇 년 전까지 군사 보호구역이라 출입이 통제되었으나 지금은 관광지로 개발되어 정상의 성과 점장대를 쌓고 골짜기의 관문(關門臺라고 한다)도 모두 새로 쌓았다. 옛날의 성벽은 관문 입구 가기 전에 오른쪽 산 위에 남아 있는데 대부분 허물어 졌으나 축성법을 알 수 있는 1∼2미터 높이의 벽은 아직도 존재한다.

9. 개현(蓋縣) 주위의 고구려 산성(46∼50번)

개현 청석령향의 고려성산은 대부분의 학자들이 고구려 때의 건안성(建安城)으로 보고 있다. 개현을 벗어나 영구쪽으로 얼마 안 가 옛날 건안성에 부속되었던 청석관(靑石關)이 나오고 왼쪽에 봉화대가 있다. 고려성촌에 들어가면 산밑에 바로 건안성 남문이 나온다. 이 남문에서 오른쪽 능선에는 돌로 쌓은 석성이 이어지고 그 나머지 부분은 대부분 토축인 토석축 산성이다. 현지에서는 연개소문과 동생 연개소진이 함께 머물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이 건안성을 중심으로 북쪽 대석교(大石橋) 백채자향(百寨子鄕)에 보성(堡城)이 있고 아래로는 서둔향(徐屯鄕)의 연통산과 쌍대자향(雙臺子鄕)의 성자구산성, 양운향의 분영(奮英)에 각각 보성(堡城)이 있다. 분영산성은 거의 흔적이 없으나 마을에서는 아직도 고려산성이라 부르고, 백채자향과 쌍대자향의 보성은 분명하게 그 자리가 남아 있다. 가장 특이한 것은 서둔향의 연통산인데 분명한 문이 있고 축성술도 아주 뛰어나 보인다.(연통산 참조)

10. 요령성 북쪽의 고구려 산성(51∼54번)

혼하 북쪽에서 요하로 흘러 들어가는 범하(汎河)와 청하(淸河) 유역에 고구려 성들이 있다. 범하 유역에는 최진보(催陣堡)산성과 청룡산성이 범하를 사이에 두고 바라보고 있는데 청룡산성은 토성으로 평지성 같고 최진보산성은 굉장히 규모가 큰 산성이다. 청룡산성은 산성의 흙벽이 뚜렷하게 나타나 있지만 최진보산성은 훼손이 심하다. 서쪽 성벽 북쪽에 축성법을 알 수 있는 벽이 일부 남아 있다.

청하 유역에서는 상류인 서풍(西豊)에 있은 성자산산성이 가장 큰 규모인데 돌로 쌓은 성벽이 제법 잘 남아 있다. 학자들은 이곳을 부여성 또는 설부루성(屑夫婁城)으로 비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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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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