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k9.htm
*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이 길어 그리고 논문형태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내용에 따라 좀 분리해 보았습니다.
기록에서의 고구려 성(城)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
고구려(高句麗)=고려(高麗) : 국호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0
기록에서의 고구려 성(城)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3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5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4
I. 머리말 고구려연구회 회장
압록강 이북에 있는 고구려 성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선 압록강 이북에 고구려 성이 몇 개나 있으며 어떻게 분포되어 있는가를 조사하고, 이어서 관계되는 문헌 연구와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서 좀 더 깊이 있는 연구가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지를 가 볼 수 없었던 한국의 학자들은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불가능했었고 현지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입수하기도 어려웠다. 몇 년 전부터 중국에 대한 여행이 가능해 지자 우선 필자는 우선 압록강 이북에 있는 고구려 성의 분포 상황부터 조사하기로 마음먹었다.
우선 일본 시대 때 일본인 학자들이 조사한 기록, 북한 학자들의 기록, 중국 학자들의 기록을 모두 모아 보니 압록강 이북에 약 150∼160개의 고구려 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그 가운데는 중복된 것도 있겠지만 그것을 자세히 밝힐 자료가 부족했다. 일본인들의 연구나 북한의 연구 결과는 그것을 가지고 전체의 분포를 보기는 부족한 상태였으므로 지난 몇 십년간 중국 학자들이 해낸 연구 결과가 중심이 되었다.
고구려 성에 대해서는 중국의 학자들 사이에도 두 가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다.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들은 문헌의 기록을 가지고 비교적 많은 성들을 고구려 성이라고 인정하는 반면 고고학을 전공하는 학자들은 아무리 사료에 의해 심증이 가더라도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고구려 유물이 나오지 않으면 고구려 성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다.
필자는 우선 고구려 성이라고 주장되는 성은 일단 모두 현지를 답사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1990년 이후 150∼160개의 성 가운데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100 여 개의 산성을 뽑아 답사한 결과 지금까지 103개의 성을 답사할 수 있었다.
본 글에서는 먼저 고구려에서 성이 갖는 의미와 축성 기록을 개관하고 이어서 요령성과 길림성을 나누어 답사한 성들을 주로 강의 줄기에 따라 분류해 보고, 각 성의 현황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보고자 한다.
Ⅱ. 고구려와 성
1. 고구려(高句麗)=고려(高麗)=성(城) http://tadream.tistory.com/560
2. 성(城)은 고구려의 행정구역
고구려에서 성은 적군을 막는 군사시설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행정구역을 나타냈다. [구당서]에 보면
"그 나라(고구려)는 평양성에 서울을 두고 …… 60 여 개의 성(城)에 주(州)와 현(縣)을 두었다. 큰 성에는 욕살(?薩) 1명을 임명하는데 (당나라의) 도독(都督)과 같고, 그 이외의 성에는 도사(道使)를 두었는데 (당나라의) 자사(刺史)와 같다" 고 해서 성이 바로 행정구역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성의 수에 대해서는 같은 구당서에 "옛날 고구려는 5부(五部)로 나뉘어져 있었고 176개의 성이 있었으며, 69만 7천 호(戶)였다"고 해서 성이 앞의 기록보다 훨씬 많은데, 삼국사기에서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보장왕 26년).
이상의 기록에서 보면 고구려의 주된 성이 176개였다고 볼 수 있는데 성의 규모에 따라 주?군?현의 구별이 있었을 것이다. 가장 큰 (욕살이 주재했던) 성의 기록은 오골성(烏骨城)인데 당 태종의 침입 때 고연수의 말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자세한 기록이 없어 문헌 연구로 성의 크기를 구별할 수는 없다.
고구려 당시의 기록은 없지만 고구려 시대가 끝난 뒤 당나라에서 당나라 식으로 행정구역을 개편한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다. 구당서에 보면 "그 땅을 나누어 도독부(都督部) 9, 주(州) 42, 현(縣) 100개를 두었다"고 해서 모두 151개의 행정구역으로 나누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176개의 성(城)이나 164개 행정구역보다는 적지만 거의 비슷한 숫자이다.
구당서에 따르면 평양에 둔 안동도호부와 함께 4개의 도독부 이름이 나와 있는데 신성주(新城州)도독부, 요성주(遼城州)도독부, 가물주(可勿州)도독부, 건안주(建安州)도독부이다. 여기서 고구려 때의 신성, 요동성, 가물성, 건안성이 주라는 행정구역으로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런 성에는 당나라의 도독에 해당되는 고구려의 욕살이 다스렸으리라고 본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압록강 이북에 있는 31개의 성 이름이 나오는데 주로 고구려가 패망할 때 항복 여부를 가지고 나누었다.
1) 압록강 이북에서 항복하지 않는 11개 성
1.북부여성 2.절성(節城) 3.풍부성(豊夫城) 4.신성(新城) 5.도성(桃城) 6.대두산성(大頭山城)
7.요동성(遼東城) 8.옥성(屋城) 9.백석성(白石城) 10.다벌악주(多伐嶽州) 11.안시성(安市城).2)
2) 항복한 성 11개
1.양암성(??城) 2.목저성(木底城) 3.수구성(藪口城) 4.남소성(南蘇城) 5.감물주성(甘勿主城)
6.능전곡성(?田谷城) 7.심악성(心岳城) 8.국내주(國內州) 9.설부루성(屑夫婁城) 10.후악성(朽岳城)
11.자목성(?木城)
3) 패전한 성 7개
1.연성(鉛城) 2.면악성(面岳城) 3.아악성(牙岳城) 4.취악성(鷲岳城) 5.적리성(積利城)
6.목은성(木銀城) 7.이산성(?山城)
4) 쳐서 빼앗은 성
1.혈성(穴城) 2.은성(銀城) 3. 사성(似城)
이상 31개 성 뒤에 주(州)가 붙어 행정 단위임을 보여 주며, 그 주가 옛날의 행정 단위인 홀(忽)이었을 때는 어떤 홀인가를 가능한 한 밝히고 있다.
3. 고구려 산성의 축성 기록
고구려 산성을 연구할 때 그 성이 언제 쌓은 것인지를 알기가 대단히 어렵다. 축성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성벽이나 성의 구조를 가지고 축성 연대를 추정할 수 있으나 대부분의 성들이 축성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지 못하고 계속 덧쌓기를 했거나, 성터의 흔적이 거의 없어져 연대 측정이 어려운 것들이 많다. 뿐만 아니라 성은 넓어서 발굴한다는 것도 쉽지가 않아 한계가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역시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인데 삼국사기에 나온 기록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시조 동명성왕 4년(BC 34) 가을 7월, 성곽과 궁실을 지었다.
2) 유리왕 22년(AD 3) 겨울 10월, 국내(國內)로 서울을 옮기고 위나암성(尉那巖城)을 쌓았다.
3) 태조대왕 3년(55) 봄 2월, 요서(遼西)에 10성을 쌓아 한나라의 침입에 대비하였다.
4) 산상왕 2년(198) 봄 2월, 환도성을 쌓았다.
5) 동천왕 21년(247) 봄 2월, 왕은 환도성이 전란을 겪고 난 후 좀처럼 복구할 수 없으므로 평양성을 쌓고 백성들과 종묘사직을 옮겼다.
6) 고국원왕 4년(334) 가을 8월, 평양성을 중축하였다.
7) 고국원왕 5년(335) 봄 1월, 나라 북쪽에 신성을 쌓았다.
8) 고국원왕 12년(342) 봄 2월, 환도성을 수리하고 또 국내성을 쌓았다.
9) 광개토태왕 3년(394) 가을 8월, 나라 남쪽에 7성을 쌓고 백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
10) 광개토태왕 18년(409) 가을 7월, 나라 동쪽에 독산성(禿山城)등 6성을 쌓고 평양의 민가를 옮겼다.
11) 양원왕 3년(547) 가을 7월, 백암성을 개축하고 신성을 보수하였다.
12) 양원왕 8년(552) 장안성을 쌓았다.
모두 12회 34건인데, 그 가운데서 도성(都城)이 7건(축성 5건, 증축 1건, 수리 1건), 산성이 27건(축성 25건, 개축 14건, 수리 1건)이다. 축성 목적은 도성 7건, 도성 방위 1건, 북서쪽 중국 침략 방어 13건, 동쪽 방어 6건, 남쪽 백제 침략 방어 7건으로 중국의 침략에 대한 방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Ⅲ. 요령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http://tadream.tistory.com/565
Ⅳ.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성의 현황
http://tadream.tistory.com/564
Ⅴ. 맺는말
이상에서 간단히 압록강 이북의 고구려 성을 보았는데 몇 가지 제약점이 있었다.
1. 지면 관계상 전체를 개괄적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빈약한 내용이었다. 이 점은 앞으로 각론을 쓸 때 자세하게 논의하기로 한다.
2. 성에 대한 자료는 많지 않지만 이미 수집한 자료조차 언급을 못했다. 이 점도 각론을 쓸 때 보충하기로 한다.
3. 산성의 특징, 즉 규모나 구조, 축성법에 의한 구별이 아니라 이번에는 주로 산천의 구조, 특히 강의 흐름에 따라 산성을 추적해 보고 그 연관성만 따져 보았다.
이 짧은 글은 앞으로 쓸 산성에 관한 논문의 스케치로 생각하고 앞으로 자료를 수집?정리하여 보다 깊이 있는 연구를 하고자 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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