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mahan.wonkwang.ac.kr/source/k9.htm
*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에서 발췌했습니다. 글이 길어 그리고 논문형태로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어 내용에 따라 좀 분리해 보았습니다.
Ⅳ. 길림성에 있는 고구려 성의 현황
요동지배의 비밀 - 고구려 山城
고구려(高句麗)=고려(高麗) : 국호 - 서길수 http://tadream.tistory.com/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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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집안(集安) 주위의 고구려 산성(55∼61번)
국내성이라고 얘기되고 있는 집안현성과 환도산성이라는 산성자산성은 본문에서 자세히 설명한다. 다만 집안의 동대자 터가 고구려의 황성이라는 설이 있는데, 이 동대자 터도 모두 집이 들어서 자세한 답사가 불가능하다. 기록에 보면 집안에서 서북으로 진출하는 데는 북로와 남로가 있다. 북로를 따라 가다 보면 관마산성이 있는데 삼면에 차단성을 쌓아 큰 산성을 이루는 곳이다. 지금도 남,북 두 곳의 석벽 일부는 남아 있으나 동쪽의 성벽은 찾지 못했다. 통화에 도착하면 통화역에서 혼하 건너편에 자안산성(自安山城)이 있는데 좁은 절벽 위에 있는 분지를 잘 이용하였다. 축성법을 알 수 있는 석벽도 일부 남아 있다.
남로는 소판분령(小板분嶺)과 망파령(望波嶺)을 지나 재원(財源)의 패왕조산성과 이어진다. 망파령 차단성은 발전소 저수지에 묻히고 최근 도로공사 때문에 거의 파헤쳐 졌다. 패왕조는 산성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잘 쌓은 석성이었다 (패왕조 참조).
2. 휘발하(輝發河)유역의 산성(62∼65번)
통화에서 용강산맥(龍崗山脈)을 넘으면 길림합달령(吉林合達嶺)과의 사이에 송화강의 지류인 휘발하가 흐른다. 이 휘발하는 유하(柳河), 일통하(一統河), 이통하, 삼통하가 동북쪽으로 흘러 합쳐져 이루어진 것이다.
유하 상류인 산성진 북쪽에 산성이 있는데 토성이지만 성벽 높이가 2-4미터로 높고 마도(馬道)가 분명하게 나 있다. 삼통하 가의 대통구(大通溝)에 있는 나통산성(羅通山城)은 길림성에서 가장 크다고 한다. 2미터 이상 높이의 석벽이 남아 있고 주위에 고려무덤이 있으며 평지성이 있다는 설도 있어 한때 수도가 아니었겠는가 하는 추측도 있다.
유하와 1,2,3통하가 합쳐지는 북쪽, 반석에 닿기 전에 두 개의 성이 있는데 모두 자연 지형을 이용해 문 있는 곳만 차단성 형태로 쌓은 성이었다.
3. 요원(遼源)부근의 고구려 산성 (66∼68번)
휘발하 유역에서 길림합달령을 넘으면 바로 요원이다. 요원은 요하, 그 가운데서도 동요하(東遼河)의 발원지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길림합달령에서 북서쪽으로 흘러내린 물이 바로 요하의 수원이 되는데 요하원(遼河源)이란 마을도 있다.
요원에는 3개의 산성이 있는데 시내에 있는 용수산은 공원이 되어 산성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 성자산산성이나 공농산산성은 모두 토성인데 전자는 평지에 가깝고 후자는 산성으로 말길(馬道)이 잘 나 있다.
4. 송강하(松江河) 유역의 고구려 산성(69∼70번)
송강하는 백두산 서쪽에서 발원하여 송화강으로 흘러들어 가는데 무송현(撫松縣)에 속한다. 무송 북쪽에 있는 만양진(萬良鎭)의 대방정자(大方頂子) 산성은 꼭대기에 있는 낮게 쌓인 돌무더기를 빼놓고는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무송 서쪽의 유수천(楡樹川)에 있는 산성은 강가의 적벽을 잘 이용해 쌓았는데 동남쪽에 있는 옹성문 옆의 동남 성벽만 남아 있다.
5. 송화강(松花江)유역의 고구려 산성(71∼74번)
송화강의 지류인 표하(漂河)에 있는 산성은 토성으로 정문인 북문은 옹성형태를 보이며 잘 남아 있으나 성벽은 다 무너지고 밭을 일구어 흔적을 찾기 힘들다. 현지 백성들은 고려성이라고 부른다.
길림의 용담산성은 고구려성의 특징을 보여 주는 여러 가지 유적이 남아 있고 보존도 비교적 잘되어 있다. 조그만 언덕처럼 작은 동단산은 선,후기의 산성들과 섞여 있어 고구려 시기의 산성을 분명하게 밝히기가 쉽지 않다.
송화강은 부여를 지나 눈강(嫩江)과 합쳐지면서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송화강이 부여에 닿기 전에 이통하(伊通河)의 물을 받는데 그 이통하의 상류에 농안(農安)이 있다. 농안은 고구려 때 부여성이라는 설이 유력하고 여기서부터 고구려 천리장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현재 농안 시내는 완전히 개발되어 성의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다.
6. 목단강(牧丹江) 유역의 고구려 성(75번)
목단강시에서 돈화까지의 목단강 유역에는 발해의 유적이 특히 많은 곳이다. 목단강의 상류인 돈화시에서 서남쪽으로 22.5 km 지점에 있는 성산자산성은 발해 산성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중국역사지리에서는 고구려산성으로 분류하고 있다. 토석혼축인 이 산성은 들판에 홀로 우뚝 서 있는 산의 한 면을 성으로 썼고 북쪽인 전면은 목단강의 지류인 대석두하(大石頭河)를 해자로 이용하였다.
7. 포이합통하(布爾蛤通河) 유역의 산성 (76∼83번)
포이합통하의 상류인 안도 북쪽에 있는 오봉산성은 성의 유적이 분명히 남아 있으나, 무학(舞鶴)에 있는 성문산은 필자가 성문을 확인하여 줄 때서야 사냥꾼 안내인도 성문인 줄을 알 정도로 불분명하다. 오호산성(五虎山城)은 돌로 쌓았는데 계곡에 세 겹의 차단성으로 문을 만들고 산등성이를 따라 돌로 성벽을 쌓았는데 1∼1.3미터 정도 높다. 넓이로 비슷하다. 상당히 험하고 깊은 계곡에다 쌓은 성이다.
태양촌의 성자구산성은 태양촌에서 강을 건너 바로 보이는 계곡인데 북쪽 문은 옹성이고 토석 혼축한 성이다.
포이합통화가 조양천에서 북쪽에서 흘러들어 오는 물을 받는데 바로 조양하(朝陽河)이다. 이 조양하를 따라 올라가 팔도향 서산촌에 가면 평지성이 있는데 이 평지성 마을을 토성둔(土城屯)이라고 한다. 이 평지성은 대단히 특이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동쪽에 여러 갈래로 나누어 돌담을 쌓아 놓았다. 담은 큰 돌로 기초를 튼튼히 쌓고 그 위에다 냇가 돌을 가져다 흙과 섞어서 쌓았다.
포이합통하는 도문에서 두만강과 합류하는데, 그 직전인 연길 근방이 이 강의 유역에서 가장 중요한 요새였던 것으로 보인다. 연길시 북쪽에 흥안성터가 있는데 지금은 큰 길가 채소밭이라 알아보기 힘들지만 고구려 때의 기왓조각들은 쉽게 주울 수 있다. 이러한 평지성과가 대칭을 이루는 산성이 장안진의 성자산 산성이다. 동,서,북쪽 문은 옹성이며 성벽은 돌로 쌓았는데 현재 1∼1.5미터 정도의 높이로 드문드문 남아 있다. 연길을 중심으로 둘러 쌓인 고구려 장성은 중간 중간 서 있는 봉화대를 점으로 잇는 산성이 눈으로도 확인할 만큼 남아 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들어 연변대 박진석 교수는 성자산산성을 고구려 때의 책성(柵城)이라고 주장한다.
8. 해란강(海蘭江) 유역의 고구려 산성(84∼86)
청산리 서쪽과 북쪽에서 발원하는 해란강이 동북으로 흐르는데 화룡에 닿기 전 송월(松月) 근방의 왼쪽 산에 송월산성이 있다. 도로에서 서쪽으로 바로 올려다 보이는 길가에 있는데 둘레가 2080미터로 제법 크다.
화룡을 지나 팔가자진(八家子鎭)에 다다르면 강 건너 언덕에 산성이 있는데 바로 팔가자진을 내려다보고 있다. 토성인데 지금도 뚜렷하게 남아 있다.
석정(石井)에서 해란강으로 흘러들어 가는 지류가 팔도하(八道河)인데 팔도하의 발원지인 금곡(金谷)에 있는 산성은 비가 많이 와 못 가 보고 덕신(德新) 옆 하북(河北)에 있는 평지성은 가 보았는데 경작지로 변해 흔적도 없다. 그러나 이 곳에서 고구려 유물이 다량 출토되었다
9. 사하하(?哈河)유역의 고구려 산성(87∼89번)
해란강과 합쳐진 조이합통하는 도문에 닿기 전에 북쪽에서 내려온 사하하와 합쳐진다. 이 사하하는 쌍하(雙河)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전하(前河)라는 지류와 합쳐진다. 이 전하의 상류에 합마당(蛤蟆塘)이란 조선족 향이 있고 바로 서쪽에 두 개의 성이 있다. 해발 956 미터의 동사방대산(東四方臺山) 위의 산성은 절벽 위의 널따란 평지에 토성으로 쌓았다. 광흥산성은 동사방대산을 올려다보는 낮은 동네 뒷산에 설치한 보성(堡城)이다.
백초구진(百草口鎭)과 석현진(石峴鎭)사이의 영창(永昌)에 있는 만대성(滿臺城) 산성은 흙을 파서 성벽을 만들고 그 판 자리에 해자를 만들었는데 높은 곳은 10미터가 넘는다.
10. 두만강 유역의 고구려 산성(90∼95번)
북한의 무산에서 두만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지평리 건너편이 중국의 덕화진(德化鎭)이다. 덕화진에서 용화(勇化)로 가는 중간에 862미터 높이의 삼층령(三層嶺)이 있는데 이 산 위에 두만강 가에서는 가장 튼튼하고 높은 석성이 남아 있다.
부유(富裕)를 지나면 조동(朝東)이 나오는데 바로 서북쪽이 한왕산(汗王山)이다. 옹성이 분명하고 절벽 위에 교묘하게 돌도 쌓은 산성이 있다. 건너편이 바로 북한의 유선(游仙)인데 두만강 건너 바로 아래 내려다보인다.
삼합진(三合鎭)을 조금 못 가서 청수(淸水) 뒷산에 있는 산성은 토성이 마치 산등성이처럼 높이 남아 있어 동네 사람들이 산성이 있는 줄을 모를 정도였다. 두만강 건너에는 산등성이를 하나 넘어 회령(會寧)인데 산성에서는 잘 내려다보인다.
개산둔진(開山屯鎭)을 지나 선구(船口)에 있는 토성은 전문가가 자세하게 가르쳐 주지 않는 한 산성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건너편이 바로 북한의 종성(鍾城)이다.
두만강이 도문을 지나 양수진(凉水鎭)에 다다르면 제법 넓은 평야가 나오는데 그 북쪽 산에 있는 바위가 정자 같다고 해서 정암(亭岩)이라고 하는 산이 있다. 이 산 위에 쌓은 산성은 동문 쪽에는 2.9미터나 높은 석벽이 남아 있으나 다른 쪽에는 대부분 허물어진 상태이다.
두만강의 마지막 성은 경신(敬信) 벌판 남쪽 수류봉(水流峰) 위에 있는데 성벽 자체가 러시아와 중국의 국경이라 멀리서만 관찰하였다.
11. 혼춘하(琿春河) 유역의 고구려 성 (96∼103번)
혼춘하가 두만강과 합류하는 지점 북쪽에 온특혁부성(溫特赫部城)과 비우성(裴優城)이 있는데 모두 평지성이다. 두 성은 성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이어져 있는데 두 곳에서 모두 고구려 유물이 발굴된 것으로 보아 고구려 때 세워졌던 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온특혁부성은 마을로 변해 흔적이 없고 비우성은 옹성,치,각루,해자가 분명하게 남아 있고 성벽의 높이도 10미터 되는데 후대에 쌓은 것이다.
한편 혼춘에서 혼춘강을 따라 동쪽으로 조금 가면 양포향(楊泡鄕)에 살기산성이 있는데 이 산성과 온특혁부성의 평지성을 묶어서 혼춘을 옛날 책성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혼춘에서 러시아로 가는 동남쪽에 석두하자라는 평지성이 있는데 이 곳에서도 고구려 시대의 유물이 나왔다. 이 성은 혼춘에서 장령자를 넘어 소련의 뽀시예트만에 이르는 교통로이다. 살기산성에서 혼춘강 바로 건너편에 건구자산성이 있다. 토성인 건구자산성은 문이 이중으로 되어 있고 성벽도 상당히 높다.
지금까지 고구려 산성이라고 논의 되고 있는 것 가운데 가장 동쪽에 위치한 것이 춘화(春化)에 있는 성들이다. 영성자고성은 평지성이고 성장납자산성은 산으로 둘러 쌓였지만 그 산 자체가 성벽이 되고 평지성에 가까운 야산이다. 이에 반하여 통긍산성(通肯山城)은 높은 산 절벽 위에 돌로 튼튼하게 쌓은 성이다. 동북역사지리에서는 성장납자 산성을 책성(柵城)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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