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정치권 '공공의 적' 전락 막전막후
이젠 미워도 말려줄 시누이조차 없는 처량한 신세 "우얄꼬?"
김명일 기자  2013.04.26 17:49:58

[일요시사=정치팀]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유일하게 당적을 유지한 채 퇴임한 대통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으로 정권연장에도 성공했다. 이 전 대통령만큼은 역대 최초로 뒤끝 없는 퇴임을 맞이할 것이라는 기대가 컸던 이유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에선 무슨 연유에선지 'MB죽이기'가 한창이다. 도대체 어찌된 사연일까? <일요시사>가 추적해봤다.


대한민국에서 대통령은 명실상부한 권력의 정점이다. 하지만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들의 퇴임 이후 삶을 살펴보면 권력무상이란 말이 절로 떠오른다. 말 그대로 '권불십년(權不十年)'이었다. 불행하게도 단 한명도 끝이 좋은 대통령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명박 죽이기, 박근혜 살리기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쫓겨나 하와이로 망명해 그 곳에서 숨을 거뒀고, 역대 최장기간 집권하며 절대권력을 휘둘렀던 박정희 전 대통령은 측근에게 피살당해 사망했다.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은 나란히 감옥에 갇혀 전과자 신세가 됐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비리와 관련된 수사를 받다 결국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그나마 김영삼(YS)·김대중(DJ) 두 전직 대통령은 특별한 수난사가 없었지만, YS는 IMF(국제통화기금)사태를 초래한 주범(?)으로, DJ는 대북송금사건으로 퇴임 이후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는 고초를 겪었다. 특히 이들 전직 대통령들은 임기 말 소속정당인 집권당으로부터 '퇴출'되는 수모 아닌 수모를 격어야만 했다.

반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유일하게 당적을 유지한 채 퇴임한 대통령이다. 게다가 같은 당적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 정권을 이어받으면서 이 전 대통령이 역대 최초로 뒤끝 없는 퇴임을 맞이할 것이란 기대는 커졌다. 그런데 최근 정치권에선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른바 '이명박(MB)죽이기'가 시작됐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 상임위ㆍ특위 간사단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4대강사업 감사과정에 야당 추천 인사를 참여시키겠다고 약속했다.

이명박 정조준한 정치권 "서서히 조여간다" 
4대강에 빠지고, 국정원에 갇히고 '사면초가'

여의도 정치권과의 소통 강화 차원에서 이뤄진 이날 회동에서 박 대통령은 민주당 간사단이 4대강사업 국정조사와 관련해 "야당 추천 인사도 포함해 투명하고 객관적으로 진행했으면 한다"고 제안하자 "국민적 의혹이 있는 만큼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윤관석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이에 대해 "야당 추천 인사를 어디에 포함시킬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지만 어떤 식으로든 참여시킬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새누리당은 이미 야당 측에 4대강사업과 관련한 국정조사를 약속한 바 있다. 4대강사업은 이 전 대통령의 최대 역점사업이자 아킬레스건이다. 이 전 대통령이 아직 임기 중에 있던 지난 1월 감사원은 4대강사업이 '총체적 부실'이라는 감사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17일에는 이미경 민주통합당 의원이 이 전 대통령의 고려대 동기이자 현대건설에서 함께 근무했던 김태원씨가 운영하는 태아건설이 이명박정부에서 4대강사업을 비롯해 경인아라뱃길 등 관급공사를 5000억원 이상이나 수주했다며 특혜의혹을 제기해 4대강사업을 둘러싼 잡음은 점점 커지고 있다.

이처럼 최근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이 4대강사업을 공격해 오고 있지만 청와대와 새누리당은 이를 방어하기는커녕 오히려 길을 열어주며 이 전 대통령과 선 긋기에만 전념하고 있는 모양새다. 현재 정치권의 분위기대로라면 향후 이 전 대통령은 4대강사업과 관련해 직간접으로 심각한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4대강 봇물 터지고 국정원 독박 쓰고

지난 18일에는 경찰이 대선 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국정원 직원들에 대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송치를 결정해 이 전 대통령을 긴장하게 했다.

국정원 직원 김모(29·여)씨와 이모(39)씨, 일반인 이모(42)씨 등은 지난해 8월부터 대선 직전까지 인터넷에서 특정 대선후보를 겨냥해 악성댓글을 올리는 등 대선 정국에 개입해 국가정보원법을 위반(정치 관여)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었다. 다만 경찰은 애초 주요혐의로 거론됐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철저히 이 전 대통령만을 겨냥한 수사결과였다.

국정원법 위반의 경우는 이명박정부 하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전적으로 이 전 대통령에게 책임이 전가되지만, 공직선거법 위반의 경우는 당시 새누리당 대선후보였던 박 대통령에게도 불똥이 튈 가능성이 있었다.

경찰은 "이들이 올린 게시글에서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적극적인 의사 표시를 발견하지 못해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유독 대선기간 집중적으로 글을 남긴 이들에게 단순 정치관여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것은 무척이나 어색했다. 지난 대선과 관련한 공직선거법 공소시효는 오는 6월19일 만료된다.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까지 된서리를 맞았다. 지난달에는 원 전 원장의 출국설과 관련,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정치권을 놀라게 했다.

원 전 원장은 이명박정부에서 국정원장으로 4년 동안이나 재임했다. 그는 매주 이 전 대통령을 독대할 정도로 이 전 대통령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았던 인물이다. 만약 원 전 원장의 정치개입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다면 이 전 대통령도 그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게다가 여야는 지난 2월26일 이 전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자마자 '한식세계화사업에 대한 감사요구안'을 의결하기도 했다. 한식세계화사업은 이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윤옥 여사가 직접 '한식세계화추진단'의 명예회장을 맡을 정도로 애착을 갖고 추진한 사업이다.

권력의 맛 짧고 쓰다

여야는 감사요구안을 통해 "한식세계화 지원사업의 집행 부진, 연도 말 사업내역 변경 집행 등 사업의 적정성 및 타당성과 관련해 농림수산식품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한식재단 및 농림수산식품기술기획평가원을 대상으로 한 감사를 요구한다"며 "한식세계화사업 전반에 대한 감사를 통해 과정상의 적법성과 타당성을 살펴 유사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감사요구안은 재적의원 202명 가운데 찬성 189표, 반대 7표로 통과됐다. 새누리당 의원들도 감사요구안의 통과를 적극 찬성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권력무상'이라는 말을 뼈저리게 느꼈을 법 하다.

한식세계화사업의 주요감사 사항은 ▲한식세계화 지원 사업예산 연례적 집행 부진 사유 ▲예산 운용 및 사업 효과성에 대한 감사 ▲2011년 한식재단의 ‘뉴욕 플래그십 한식당’ 개설비 50억원 예산 내역 미이행 사유 등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왜 MB죽이기에 나선 것일까? 전문가들은 여야 모두 다양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우선 민주당의 경우는 지난 2009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은 이 전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민주당의 최대 계파는 다름 아닌 친노(친노무현)다.

민주당이 이 전 대통령을 공격하는 것엔 일종의 복수심도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뿐만 아니라 이명박정권 내내 사실상 억압을 받았다고 인식하고 있는 일부 야권 인사들은 이 전 대통령을 반드시 단죄해야 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이 직선제 이후 최초로 당적을 유지한 채 퇴임한 대통령이라는 점이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을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공격이 결국 청와대와 새누리당에도 타격을 입혀 야권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데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다.

박근혜가 야당 먹잇감으로 이명박 던져줬다? 힘 잃은 MB, 뼈저리게 느끼는 '권력무상'

청와대와 새누리당에게는 더욱 복잡한 이유가 있다. 정치권 안팎에선 최근 인선 실패와 공약 후퇴 논란 등을 겪으며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는 박근혜정부가 이 전 대통령을 '야당의 먹잇감'으로 내던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이를 통해 여론의 시선을 분산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으로서는 이미 대선기간 이 전 대통령과 충분히 선 긋기를 한 상태이기 때문에 이 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내세운다고 해도 별다른 타격이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오히려 이 전 대통령을 감싸주려다 '동반책임론'에 휘말릴 경우 정권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퇴임 후 왕성한 대외활동을 펼치고 있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퇴임 직후 강남에 개인사무실을 준비하고 4대강 자전거 종주를 계획하는 등 왕성한 활동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여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박 대통령보다 앞서 방미 일정을 잡은 것을 놓고는 박 대통령이 무척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는 전언이다. 

갈 곳 없는 MB, 벼랑 끝에 선 친이

일각에선 새누리당 내 친이계(친이명박계)의 힘을 빼기 위한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 새누리당에서는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 10여명 정도 있다. 이들은 사사건건 박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며 박 대통령에겐 눈엣가시로 여겨지고 있다.

새누리당이 아슬아슬한 과반을 유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친이계가 세력화할 경우 소수의 인원으로도 캐스팅 보트를 쥐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 전 대통령을 직접 공격함으로써 친이계의 힘을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전 대통령이 여러 가지 사안으로 정치적 타격을 입게 되면 당분간은 친이계가 정치 전면에 나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 때 무소불위의 권력을 자랑했던 이 전 대통령은 이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속절없이 휘둘리는 신세가 됐다. 격랑 가운데 일엽편주(一葉片舟) 신세가 돼버린 MB의 운명은 과연 어찌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명일 기자 <mi737@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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