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legacy/legacy_general/L521521.html
땅이름/ 묘향산
등록 : 2004-03-25 00:00
고구려 추모왕이 비류국을 아우르고 ‘다물’(옛땅 되찾기)을 선언한 뒤 땅을 넓히기 시작한다. 서기전 32년, 오이·부분노(烏伊·扶芬奴) 두 장군에게 명하여 태백산(太白山) 동남쪽 행인국(荇人國)을 쳐 그 땅을 성읍으로 만들었다.
여기서 그 태백산이 어디인지 설이 분분한데, 태백산이란 산이름이 우리나라에 여럿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추모왕이 다물을 외친 평안도 성천에서 보면 태백산은 묘향산일 가능성이 있다. 〈삼국유사〉에서도 환웅이 옛조선을 세우는 과정을 말할 때 나오는 태백산(太伯山)이 묘향산(妙香山)이라고 설명을 달았다. 현진건의 기행문에서, “(소월의 진달래꽃으로 알려진) 영변 읍지에는 아득한 옛날 행인(荇人)이 태백산 아래 나라를 세웠다”는 기록이 전해진다고 한다. 이는 영변 가까이 태백산이 있었다는 말이며, 그곳은 바로 묘향산이다. 묘향산은 향산으로도 불리는데, 향나무와 감탕나무(冬靑)가 많이 있어 향기롭고 신선의 자취가 서려 있다고도 한다. 행인국에 쓰이는 한자 행(荇)의 뜻은 조름나물과에 속하는 ‘노랑어리연꽃’이다.
옛조선의 서울이었던 아사달(阿斯達)은 옛 표기로 ‘아시달’과 ‘고시달’로 읽을 수 있다. 고시달은 ‘(냄새가) 고소하다’ 또는 사투리에서 ‘꼬시다’라는 말과 이어 보면 고시달이 바로 향산(향기로운 산)이었음을 내비친다. 이러한 정황으로 볼 때 태백산은 바로 묘향산이고, 옛 표기를 빗대어 볼 때 우리가 자주 말하던 아사달이 바로 묘향산이며, 실제 소릿값은 ‘고시달’이었던 것이다. 묘향산은 희천 비로봉이 있는 곳을 구향산, 보현사가 있는 쪽을 신향산이라 부르는데, 각각을 외향산·내향산으로도 부르며, 풍치가 뛰어난 곳이 신향산이다.
최범영/한국지질자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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