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6942


이재용의 질문 없는 ‘사과’ 기자회견 

끝내 위법행위 인정 없었다…삼성 피해자들 “사옥 속에 숨은 사과, 무의미” 

김예리 기자 ykim@mediatoday.co.kr 승인 2020.05.06 19:4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2)이 삼성그룹 준법감시위원회의 ‘경영권 승계와 노동 관련 위법행위 사과’ 권고에 따라 6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앞으로 위법행위가 없을 것”이라는 약속과 삼성그룹 사업 관련 비전 소개가 주를 이룬 가운데 권고의 주축인 ‘과거 위법행위 반성’을 명시하는 대목은 없었다. 기자회견에 기자들을 불렀지만 질문은 받지 않았다. 삼성 피해자들은 사옥 바깥에서 제대로 된 사과와 처벌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이 부회장은 이날 오후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5층 다목적홀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 측에 따르면 이날 발표 자리에 펜기자는 선착순 80명, 영상기자 10명과 사진기자 10명만 출입을 허용했다. 입석 취재 등 이외 취재진의 출입은 금지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두기 차원에서 기자 책상을 띄엄띄엄 배치했다. 들어오지 못한 기자들에겐 3층 취재기자실을 마련했다”고 안내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경영권 승계 관련 사과에서 ‘논란’이란 단어를 두 차례 썼다. 그는 “그동안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 특히 삼성에버랜드와 삼성SDS 건에 대해 비난을 받았다. 최근에는 승계와 관련한 뇌물 혐의로 재판이 진행 중이기도 하다”며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비롯된 게 사실”이라고 했다. 이 부회장은 “분명하게 약속드리겠다.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6일 오후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경영권 승계와 노조 문제 등과 관련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준법감시위원회가 반성과 사과를 주문했던 ‘과거 위법행위’ 관련해선 행위 유무나 인정 여부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 부회장은 “법을 어기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노사 문제에 대해 “노조 문제로 인해 상처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사과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삼성의 노사 문화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근에는 삼성에버랜드와 삼성전자서비스 건으로 많은 임직원들이 재판을 받고 있다.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 더 이상 삼성에서는 ‘무노조 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 노사관계 법령을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 노사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겠다. 그래서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준법감시위는 ‘삼성 계열사에서 수차례 노동법규를 위반한 데에 대한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지만 이 부회장은 이 대목에서도 삼성 측 행위에 대한 반성이나 사과는 언급하지 않았다.


반면 이 부회장은 사과 발언 도중 자신을 삼성그룹 경영책임자로 재확인하는 대목에 큰 비중을 뒀다. 사과 발표문 전체를 보면, 삼성그룹 사업이나 이 부회장 이후 경영권 관련 ‘비전’을 소개하는 발언이 27문장이나 차지해 가장 많았다. 발표 주제였던 경영권 승계 위법행위와 관련된 발언은 9문장, 노사관계를 다룬 대목은 8문장이었다.


▲6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가 끝난 직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 사진=김예리 기자

▲6일 이재용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가 끝난 직후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 사진=김예리 기자


이 부회장은 노사관계 관련 입장을 발표하기에 앞서 “2014년에 회장님이 쓰러지시고 난 후 부족하지만 회사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큰 성과를 거두었다고 자부하기는 어렵다”며 “다만 그 과정에서 깨닫고 배운 것도 적지 않았다. 미래 비전과 도전 의지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저는 지금 한 차원 더 높게 비약하는 새로운 삼성을 꿈꾸고 있다”며 감성에 호소했다. 그는 “제 아이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생각”이라고도 강조했다. 그러나 이 부회장이 법에 따라 상속세를 모두 내고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이라 역시 감성에 호소한 대목이란 지적이다. 


한편 이 부회장은 발언을 마치고 머리를 숙인 뒤 곧바로 자리를 떴다. 이 부회장이나 삼성 관계자는 현장에서 질문을 전혀 받지 않았다. 삼성전자 커뮤니케이션팀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홀을 퇴장하는 동안 “참석해주신 기자 여러분께 다시한번 감사하다. 궁금하신 점이 있으시면 저희 커뮤니케이션팀에 연락 바란다. 이상으로 발표를 마친다”고 끝을 알렸다. 현장에 있던 주진우 기자가 이 부회장을 향해 “사과는 해야죠. 사과는 왜 안해요”라고 물었지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민주노총은 이날 “사과가 진정성을 가지려면 경영 승계 과정에서 발생한 불법, 탈법적인 행위에 대한 사죄와 함께 상황을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약속이 있어야 하며 책임자에 대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노총은 “문제는 실천이다. 현재 삼성전자, 삼성디스플레이를 비롯해 삼성그룹 내 노조들은 임단협을 진행 중이거나 사측에 교섭을 요구하지만 삼성은 여전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며 “즉각 성실 교섭에 나서라”고 밝혔다.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이 발표되는 동안 삼성 노동탄압 등 피해자와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사옥 인근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이 발표되는 동안 삼성해고노동자 고공농성공대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들은 사옥 인근에서 규탄 시위를 벌였다. 사진=김예리 기자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회원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회원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부회장의 발표가 진행되는 동안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는 비정규노동자의집 ‘꿀잠’,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을 구성하는 삼성물산 과천 재개발 철거민과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보암모), 삼성해고노동자 김용희 고공농성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 삼성전자서비스 해고자 복직 투쟁위원회(삼성해복투) 등 단체들의 항의 농성이 이어졌다. 이들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사과와 문제 해결, 처벌이 선행하지 않는 사과는 “이재용을 풀어주기를 위한 것”에 불과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임미리 공대위 대표 등 삼성피해자공동투쟁 관계자 4명은 이날 삼성 사옥 앞 횡단보도에 누워 농성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마찰을 빚었다. 현장 출동한 경찰은 ‘이재용을 감옥으로’라고 쓰인 옷을 입고 바닥에 몸을 붙인 시위대에 “법 좀 지키면서 투쟁하라. 여러분은 지금 불법행위를 하고 있다. 집회신고 장소(인도)로 이동하라”고 요구했다. 


누워있는 농성자들 옆에 앉아 있던 삼성해복투 소속 정우형씨(52)는 “저 안에 숨어서 자기들끼리 하는 사과가 어떻게 사과인가. 적어도 이곳에 와서 피해자를 향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였다가 노조파괴 공작으로 해고된 피해자로, 현재는 대행업체에서 냉동 기계 등을 수리하고 있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피해 해고 노동자 정우형씨가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의 농성에 연대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피해 해고 노동자 정우형씨가 6일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 삼성피해자공동투쟁의 농성에 연대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삼성피해자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경찰과 대치 속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삼성피해자공동투쟁 관계자들이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서 경찰과 대치 속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문 발표를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이 부회장이 이날 과거 위법행위를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그의 눈과 코가 붉어졌다. 정씨는 “삼성전자서비스 노조파괴 재판에 나온 증거자료가 수천 건인데, 인정을 안 한다구요?”라고 반문하며 “우리처럼 시골 동네에 사는 사람도 노조파괴와 무노조경영을 어떻게 했는지 아는데, 초일류라는 삼성 최고경영인이 인정하지 않으면 나쁜 것이고, 잘못을 모르면 무능한 것”이라고 했다. 


유방암 투병 중인 보암모 소속 박보경씨(52)는 “삼성생명 암보험 피해자들도 매일같이 같은 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227일째 농성 중인 피해자들은 방치한 채 일부 문제에 대해 사과했다는 이유로 준법감시위원회나 재판부가 눈감아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삼성생명 암보험 미지급 피해를 호소하며 농성 중인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 소속 박보경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삼성생명 암보험 미지급 피해를 호소하며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농성 중인 보험사에대응하는암환우모임 소속 박보경씨가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사옥 앞에선 ‘꿀잠’ 회원과 삼성일반노조 조합원 등은 삼성 측 경비원과 사옥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며 1인시위를 이어갔다. 건너편에선 보암모 회원들이 확성기를 이용해 이 부회장의 제대로 된 사과와 처벌을 요구하는 발언을 했다. 삼성 해고 노동자이자 노조탄압 피해자 김용희씨는 이날 강남역 네거리 CCTV 관제탑에서 330일이 넘는 농성을 이어갔다. 임미리 대표는 삼성사옥 앞에서 삼성 측의 제대로 된 직접 사과와 처벌을 요구하며 노숙 농성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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