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값 상승' 4대강 사업…우리가 배워야 할 점
한국 사회 대통령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나
한윤형 기자  |  a_hriman@hotmail.com 입력 2013.06.20  15:19:25
▲ 금일(20일)자 경향신문 1면 기사

4대강 사업은 87년 체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대통령 개인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어디까지 관철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었다 평가할 만하다. 대통령 일개인의 의지였던 대운하 사업은 국민여론의 반대와 대통령의 결정을 방해하거나 지연하는 여러 가지 입법·행정적 절차에도 불구하고 ‘단지’ 4대강 사업으로 변화되었을 뿐이다. 대통령은 공사를 잘게 쪼개어 환경영향평가마저 우회했고 임기 내에 공사를 중단할 수 없는 수준으로 마무리하겠다는 의사마저 관철시켰다. 그리고 아무런 사업타당성이 없었던 ‘건설업체 퍼주기’ 사업의 결과 이제 국민들이 물값 상승을 통해 한국수자원공사의 부채를 메꿔야 할 상황이 왔다.
 
그런 문맥에서 4대강 사업에 비견할 만한 것은 문민정부의 하나회 척결과 역사바로세우기(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형판결로 귀결된), 그리고 참여정부의 한미 FTA 정도일 것이다. 물론 국민의 정부 초기 일련의 조치들도 그 이후의 사회경제적 조건들을 결정적으로 규정했지만 그것들은 IMF 구제금융이라는 상황적 조건과 자유주의 성향 경제관료들의 성향과 일련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지 대통령 개인의 의지였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것들 중에서도, 문민정부의 역사바로세우기의 경우 대통령의 과감한 결단에 의한 것이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헌법정신을 복원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일개인이나 특정 당파의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가장 맥락적으로 근접한 사건은 참여정부의 한미 FTA일 것이다. 물론 두 사건 간에는 차이도 적지 않다. 한미 FTA가 어쨌든 국가 백년지대계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동시다발적 FTA’라는 프로젝트의 일부분이었다면, 4대강 사업은 단지 일회적인 사건이었고 건설업체에 세금을 퍼주면서도 그 사실을 뒷받침할 만한 그럴듯한 논리가 없었다. “참여정부는 의를 추구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이를 추구했다”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과거 발언도 그러한 차이에 대한 인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한미 FTA의 경우 국정홍보처가 공식적으로 옹호하며 반대파들을 쇄국세력에 비유했다면, 4대강 사업의 경우 드러난바 국가정보원이 비공식적으로 옹호하며 반대파들을 종북세력으로 몰았다는 차이도 있다. 
 
한미 FTA도 그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졸속으로 처리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4대강 사업만큼 국민적 논의를 피해서 추진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부분에 대해 말할 때에는 또 하나의 역설이 있다. 만약 민주정부가 한미 FTA만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진보개혁적 정책을 추진하려 했다면 훨씬 더 큰 반대에 직면했을 거라는 예측이 그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만일 보수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려 했다면 미국 문제에 민감한 한국 사회 진보담론의 속성에 맞물려 훨씬 더 큰 반대에 직면했을 거라는 예측도 있다. 
 
즉 한미 FTA는 민주정부에 의해 추진되었기에, 관성적 반대에 나설 수 있었던 집단을 일부 분할하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에 비해 빠른 결정이 가능했을 거라는 추측이다. 그래서 참여정부의 한미 FTA에 비판적인 이들은 “개혁정책에서 성과를 낼 가능성이 사라진 정부가 역사적 업적을 남기기 위해 임기 내에 성취를 내기 쉬운 보수의제를 선택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사회운동가들은 우스갯소리로 “참여정부도 FTA의 길로 나아가 보수를 도왔는데 박근혜 정부는 복지정책이나 증세를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런 거 민주정부가 하면 ‘빨갱이’ 소리까지 듣지만 박근혜 정부야 그렇게 어렵지 않게 가능하지 않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것은 이른바 ‘기울어진 운동장’ 담론의 상대주의 버전이라 할 만하다.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가 불균형상태에 있지만, 어떤 의제에 대해선 민주정부가 추진하기 쉽고 다른 의제에 대해선 보수정부가 추진하기 쉬운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4대강 사업은 앞서 말했듯 일회적인 이권 사업이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의 적용은 받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중립적인’ 사안에선 보수대통령의 의사결정 능력이 훨씬 막강했다. 또 이런 종류의 사안에선 박근혜 정부 하 검찰이 4대강 사업에 관련된 건설업체 수사를 강하게 할 것으로 예측되는 것처럼, 정권재창출에 성공하더라도 무조건 비호 받는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는 4대강 사업에 관련된 검찰 수사가 국정원 여론전 및 선거개입 논란에 관련된 검찰 수사보다는 훨씬 엄정할 것이라 기대할 수 있다. 사람들이 이명박 정부에 염증을 느꼈으면서도 박근혜 정부로의 교체(?)에 만족한 이유 중 일부도 이러한 맥락에 대한 인지일 수 있다. 
 
아무리 대통령의 권한을 살려야 개혁이 가능하다 해도 민주정부에게 4대강 사업의 처리과정을 본받으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런 일은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우리가 대통령에게 기대를 거는 종류의 정책은 저런 식으로 처리될 수도 없을 것이다. 한국 사회의 대통령은 권력을 활용한 사적인 자원배분을 노린다면 반발을 수월하게 피해갈 수 있지만, 어느 방향이 되었든 개혁을 추구한다면 상대 당파의 반발을 피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4대강 사업의 강행은 한국 사회의 제도의 맹점을 찌른 사건이지만 자주 일어날 수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대통령이 그러한 종류의 정책에 자신의 ‘로망’을 담아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을 쉽게 상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어찌되었건 우리가 맞이한 현실은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다. 그야말로 ‘눈 뜨고 코 베인’ 심정이겠지만, 어쨌든 이를 반면교사로 삼고 정권이 바뀌었을 때 대통령이 자신의 지향을 관철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 4대강 사업의 강행과 같은 사건이 가능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변혁에 대한 고민도 필요함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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