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leekcp.new21.org/ez2000/ezboard.cgi?db=12&action=read&dbf=129

발해의 명칭 

발해(渤海)라는 용어는 요동반도와 산동반도에 싸인 바다의 명칭으로서, 이것을 국호로 택하게 된 것은 당나라와의 외교적 타협 결과였다. 발해의 건국 당시의 국명은 '진(震)'이었다. 이 글자는 새벽을 나타내는 '신(晨)'과 의미가 통하는데, 그 뜻은 '동방, 새벽, 아침' 등을 나타낸다. 즉 당나라보다 동쪽에 있으므로, '해 뜨는 나라'를 뜻하는 것이다. 건국자인 대조영(大祚榮)은 고구려의 부흥을 기치로 내걸고 점차 지배지역을 넓혀갔는데, 곧 '진'이라는 국명은 그런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진국의 성립에 대해, 무력 이외에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던 당나라도 급속도로 신장되어가는 진국의 국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무력을 동원한다 해도 전쟁의 승리에 자신이 없었던 당나라는 그들 특유의 이민족 회유방법, 즉 독립을 인정해주면서 명분을 얻으려는 정책을 사용하였다. 이에 대조영이 그의 아들을 당나라에 인질로 보내어 조공의 예를 갖추자, 당 현종(玄宗)은 713년에 진국의 황제를 자처하는 대조영을 '좌해위원외대장군 발해군왕(左駭衛員外大將軍 渤海郡王)'으로 책봉하였다. 대조영은 이후 '발해군왕' 또는 '발해왕'으로 불려졌고, 그에 따라 자연히 진국도 '발해'라는 국명으로 바뀌어 불리게 되었다. 진국의 입장에서는 형식상 당에 종속하여 그 조공국이 되는 것이 문물의 수입과 국토의 안전을 위해 좋은 계책이었다. 게다가 '발해'라는 바다는 아직 지배권에 들지 않은 요동반도 저편의 영역이었는데, 요동반도는 고구려의 영토였으므로 향후 그 지역을 자신의 판도에 넣으려는 측면에서도 그것은 유리한 것이었다. 따라서 대조영은 당나라의 정책이 달갑지는 않았지만, '발해군왕'의 칭호와 '발해'라는 국명을 기꺼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편 당의 입장에서 볼 때, 한번 정벌하려다 실패한 나라로부터 인질과 조공을 받게 되니 그 중화의식을 충족시킬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체면상 진국에서 스스로 사용하는 국명을 사용하게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당나라에서 진국으로 통하는 교통로의 입구인 '발해'의 명칭을 국호로 주었던 것이다. 게다가 대조영을 '군왕'으로 책봉함으로써 발해를 형식상 중국보다 한단계 아래의 지위에 두고자 했던 의도를 알 수 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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