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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원문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의 역사"를 좀 짧게 분리 편집하였습니다.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의 역사
   1.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졸본부여(고구려)의 역사  http://tadream.tistory.com/74
   2.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고구려의 통치기구  http://tadream.tistory.com/75

   3.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고구려의 역사 (해모수계,동명계,졸본,동부여)  http://tadream.tistory.com/73
   4.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고구려의 경제  http://tadream.tistory.com/76


한단고기를 바탕으로 본 북부여/동부여/졸본부여(고구려)의 역사



6. 고구려의 통치기구


환단고기 북부여기에 의하면 고구려의 통치기구로는 중앙에 세습제에 의한 왕과 그 아래에 동서남북을 각 담당하는 4가(四加)가 있었다. 즉 전국을 5 구역으로 나누어 중앙은 왕이, 동서남북은 4가들이 통치하였다.

「서울 도성은 곧 천왕(天王)이 직접 수비를 총괄하며 지방은 네 갈래로 나누어 군대를 주둔하도록 하니 마치 윷놀이에서 용도의 싸움을 보고 그 변화를 아는 것과 같았다.」
 

고구려의 중앙관직은 왕 아래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저加), 구가(狗加), 대사(大使), 대사자(大使者), 사자(使者) 등이 있었다. 이들은 고구려의 지배계급으로 국중대회에서 왕을 보좌하여 죄수들을 판결한 후 처형하거나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석방하기도 하는 등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고구려의 통치기구로 수천 호 내지 수백 호를 다스리는 제가(諸加)가 있었다. 각 가들의 규모는 큰 것은 수천 호, 적은 것은 수백 호였다. 제가(諸加)들이 다스리는 읍락(邑落) 중 큰 규모의 읍락에는 성(城)이 있었고, 그 성주(城主)를 압로(鴨盧)라 불렀으며, 그 보다 적은 규모의 읍락은 촌(村)이라 불렀고, 촌에는 촌장(村長)이 있었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있었다. 고구려의 군대는 국왕 밑에4가들이 거느린 전투부대가 있었고, 이 부대는 수많은 제가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삼국지 부여전에 의하면 하호는 전투부대가 아닌 보급부대로 활용되었다.
 

「적들이 쳐들어오면 제가가 스스로 나가 싸운다. 하호(下戶)는 모두 식량을 져 날라 이들을 먹이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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