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kiho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482033
* 원제가 "고구려의 제례의식(祭禮儀式) 8-4"인데 내용과 맞지 않아 바꿨습니다.

고구려의 산성
연천선사박물관 관장  2012년 09월 27일 (목) 기호일보  webmaster@kihoilbo.co.kr

고구려 유적의 분포를 보면 요녕성(遼寧省) 지역 내에 고구려 옛산성[古山城]의 전체 수가 70~80기[座]가 된다. 그리고 작은산성[小型城]과 전망대[了望台] 등을 포함시키면 약 100기가 된다. 요하(遼河)시 동쪽 9개 시(市)의 범위 내에 대련(大連)에 9기, 영구(營口)에 8기, 안산(鞍山), 요양(遼陽), 심양(沈陽) 등에 각각 1기가 있으며, 단동(丹東)에 17기, 본계(本溪)에 10기, 무순(撫順)에 13기, 철령(鐵嶺) 7기 등 모두 67기가 있다. 길림성 경내의 고성(古城)은 집안, 통화(通化)지구에 가장 많으며, 가장 전형적이다. 

고구려산성의 건축특징과 유형을 7가지로 나누어 보고 있다. 
1) 자연조건과 지리조건을 중시해 선택, 산성 위치는 가장 적합 장소를 선택한다. 절대 다수 산성은 산세가 험준한 곳을 선택, 특히 물길이 닿는 요충지대를 선택한다. 
2) 산성은 모두 산의 자연형태에 의해 건축하고, 건축설계는 정해진 것은 없다. 일반적으로 각 산성은 높은 산과 절벽의 삼면(三面) 주위에 설치, 천연장애물과 인공장애물을 결합시켰다. 산성 앞에 거대한 감시 체제를 구축한다. 
3) 실용성을 중시해 군사적 실용성 있는 것을 설치한다. 
4) 산성 내에 충족한 수원(水源)을 설치, 때로 자연적 수원을 이용하거나, 때론 샘터를 깊이 파기도 했다. 
5) 하나의 대형 산성을 중심으로 주위에 작은산성을 마련했다. 방어성의 기능을 철저히 확보한다. 
6) 설치된 것은 여장(女墻, 낮은 담), 치첩(雉堞, 성위에 쌓은 성), 각루(角樓), 망루(望樓), 수구(水溝, 실개천), 옹성(甕城), 암문(暗門) 등의 방어시설 등이다. 
7) 채석과 암석 절단 기술이 대단히 발달되었다. 축성의 석재의 길이, 너비와 높이는 비율적으로 처리돼 길이 3 × 너비 2 × 높이 4 또는 5로 처리한다. 성벽의 바닥 너비, 높이 너비 및 높이(고도)의 비율은 석성(石城)은 5×2×6으로, 토성(土城)은 9×2×7 비율로 처리시켰다. 성벽의 높이와 너비 비율은 공격 무기 발전과 수준에 따라 변경되었다. 

고구려 산성 중 도성(都城)의 오녀산성(五女山城), 환도산성(丸都山城)외에 규모가 대단히 큰 산성은 봉황산성(鳳凰山城), 나통산성(羅通山城), 용담산성(龍潭山城) 등이다. 봉황산성은 전체 길이 1만5천995m, 성문(城門), 성벽, 천연벽 등 부속 설치가 5부분으로 조성되었으며, 86단(段)의 성벽이 있으며, 87단의 자연(천연)벽이 있다. 이 성내의 부속시설은 전망대[哨台], 기간좌(旗杆座), 산입구(山口), 점장대(点將台), 우물터[水井], 채석장, 적석묘, 요지(窯地) 등이 있다. 지금도 토기편과 기와장이 출토되고 있다. 

길림성 지역에 최대의 고구려 산성이 나통산성(羅通山城)이다. 주위 길이는 전체 7.5km이다. 서성(西城)평면은 불규칙한 4변형, 성벽 주위 길이 3천737m, 높이는 산허리에 있다. 천연벽을 이용하기도 했으나 기타 지역은 모두 장방형 암석으로 쌓여졌으며, 돌담이 높은 곳은 18층으로 높이는 4m, 어느 큰 바위의 길이 너비는 각각 1m이다. 현 잔존 성벽높이는 2~6m, 너비 4~6m이다. 이곳에는 동·서 2성이 있다. 이 동·서 2성에서 대략의 고구려 유물이 출토되었다. 또한 병영(兵營)유적 10곳, 저수지, 점장대, 연무장(演武場, 군사훈련장)등과 동·서 2성 접촉 지점에서 봉화대(烽火台)도 발견되었다.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에 탄생해 기원 668년 멸망했다. 다만 상기한 고구려유적 중 산성은 아직 잔존된 상태가 ‘천리장성(千里長城)’의 찬란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다음은 발해문화를 소개한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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