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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3): ‘법률제정의 세 호수’와 연(鳶), 어별성교(魚鼈成橋) 미스테리 글에서 일부만 가져왔습니다.


3.  어별성교(魚鼈成橋) 미스테리(mystery)
 
가.  주인공(主人公)이 혼란을 부르고, 의문투성인 어별성교(魚鼈成橋) 사건

고구리(高句麗)를 창건한 고주몽-동명성왕(東明聖王)의 이야기에는 이상하게도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널 때, 뒤쫒아 오는 군대(軍隊)가 있었지만, 바로 그때에 강에서 어별성교(魚鼈成橋)가 이루어져 무사히 건넜다.”는 신화(神話)가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넌 주인공이 누군가?”하는 문제를 여러 가지 역사적 자료로써 따져보면 아주 혼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것은 어떤 때에는 ‘해모수-동명성왕’으로 묘사되어 있고, 또 어떤 때에는 고주몽-동명성왕으로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이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동명성왕(東明聖王) 혹은 추모(芻牟)라는 칭호를 받기 전에 반드시 이 ‘엄리대수(奄利大水)’라는 강을 건너는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루어야하는 것만은 분명한 듯한 느낌을 주는 이야기로 나옵니다.  

그런데 가장 혼란된 이야기는 “도대체 이 뒤쫒아 오는 군대는 그 목표가 살해(殺害)인지? 체포인가?”도 아리숭함은 물론, 심지어 “뒤쫓아온 군대는 누구의 군대인지?”도 역시 아리숭하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왜 이 강가에서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고, 하백(河伯)의 외손(外孫)이다.  거북이가 떠올라 다리를 놓아라!”고 외치는지?  또 그 결과 갑자기 큰 물고기와 거북들이 떠올라서 다리를 만들어주는 이른바 어별성교(魚鼈成橋) 현상이 나타났는지?”하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주몽-동명성왕의 경우, <‘특별한 근거없이’>  금와왕(金蛙王)의 아들들인 일곱 왕자 군대일 것이라고 추정을 하고 있고,  또 쫒아온 군대의 목표가 ‘고주몽’의 살해라고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한 근거가 없다.’가 이야기한 것은  원문(原文)에 정확히 ‘살해하기 위해 뒤쫓아온 군(軍)의 명령권자’가 전혀 언급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고주몽-동명성왕이 쫓기는 모습을 묘사한 모든 기록은 신기하게도 신궁(神弓)으로 유명한 고주몽-동명성왕께서 신기하게도 대적(對敵)해서 싸우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장(武將)으로서는 분명히 비겁(卑怯)한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이 어별성교(魚鼈成橋) 사건을 다룬 기록들은 오히려 도주(逃走)하는 것이 자랑스런 ‘역사적인 사건인양’ 묘사되어 있어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도주(逃走) 행위가 “과연 살아남기 위해서 전력으로 질주(疾走)하는 사건인가?”도 의심스럽습니다. 
왜냐?
전력 질주할 때에는 마차(馬車)보다도 필마(匹馬)로 달리는 것이 유리(有利)합니다. 왜냐하면, 마차(馬車)가 지나갈 수 없는 지역 - 나무와 나무 사이가 좁은 숲이라든가, 겨우 말(馬) 하나가 달릴 수 있는 곳에서도 필마(匹馬)는 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광개토태왕 비문(碑文)의 ‘첫머리’를 보면, 이 엄리대수(奄利大水)를 넘는 사람은 마차(馬車) 즉 어가(御駕)를 탓음이 들어납니다.

□命駕, 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 명(命)에 따라, 어가(御駕)를 남하(南下)하면서 순행(巡幸)하였는데, 부여(夫餘)의 엄리대수(奄利大水)라는 곳을 말미암게 되었다.  

이런 광개토태왕 비문의 ‘첫머리’는 “아니...도망가시는데 마차(馬車)를 타셨다고??”하는 강한 충격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런 도망이 ‘□命駕’ - 즉 “□의 명(命)을 받들어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아니 명(命)을 받들어 도망치는 것도 있나?!”라는 의문을 우리는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뿐만이 아닙니다.  

도대체 “도주(逃走)하는데 왜 불편하기 짝이 없는 어가(御駕)를 탔단 말인가?”는 원초적 질문 이외에, 광개토태왕 비문에 적혀 있으니깐, 사실로 여길 수밖에 없더라도 위 문장 뒤에 나오는 광개토태왕 비문의 첫머리의 다음 구절을 보게 되면, 아연실색(啞然失色)하게 됩니다.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 浮龜. 應聲卽爲連 浮龜. 然後造渡, 

왕(王)께서 나루에 임(臨)하시어 말씀하시기를 “나는 황천(皇天)의 아들이요. 어머니는 하백녀(河伯女)이시다.  또한 나는 추모왕(鄒牟王)이니라. 나를 위하여 거북이 떠올라라.” 이 소리에 응하여 거북이 떠올라 연결되어 건너는 다리가 조성되였다.

즉 이 이야기는 앞 문장과 연결시키면 “‘거북’들이 떠올라서 ‘다리’를 만들어 주었는데, 그 위로 어가(御駕) - 그러니깐 마차(馬車)가 지나갔다 .”는 것이 됩니다.

“마차(馬車)가 지나갈 정도로 큰 거북이가 있나?!”라는 괴상한 질문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구리 사초 ‘시조 초모대제기 (始祖<芻牟大帝>紀)’를 읽어보면, 우리는 또 다른 의문에 휩쌓이게 됩니다.

나.  현무(玄武)는 고구리(高句麗) 잠수함(潛水艦)? 

- 이하 ‘시조 초모대제기 (始祖<芻牟大帝>紀)’ 사천(史穿) 김성겸 선생의 해석본을 옮김 -

◎辛巳,夏,與四豪(烏伊,摩離,陜父,芬奴)南來乘玄武(方丈大龜)而至<普述(穆陵河口)>,與三賢(再思,武骨,默居)逐虎攘<鞨>以開<順奴>. 是年,<禮>后生<光明>. 壬午春,與<樂浪><卒本>定界. 秋,納<召西奴>爲妃.

◎신사년(단기2294년/BC40) 여름, 네 명의 호걸(오이,마리,협보,분노)과 함께 남쪽으로 와서 현무(크기가 한 길이 되는 거북)를 타고 <보술(목릉하구)>(수)에 이르고, 세 명의 현자(재사,무골,묵거)와 함께 호랑이와 <갈(鞨)>을 쫓아내고 <순노(口서한口)>(부)를 열었다. 이 해에 <예>후가 <광명>을 낳았다. 
임오년(단기2295년/BC39) 봄, <낙랑>및 <졸본>과 (경)계를 정하고, 가을엔 <소서노>를 비로 삼았다.

일단 이 글 내용에서 <與四豪(烏伊,摩離,陜父,芬奴)南來乘玄武(方丈大龜)而至<普述(穆陵河口)> 즉 “네 명의 호걸(오이,마리,협보,분노)과 함께 남쪽으로 와서 현무(크기가 한 길이 되는 거북)를 타고 <보술(목릉하구)>(수)에 이르렀다.”는 말 자체가 물리적(物理的)으로 이해가 안됩니다.

추모(芻牟)가 어별성교(魚鼈成橋)로 놓아진 다리를 건넜다면, ‘고구리 사초’에 표현된대로 현무(玄武)로 소개된 방장대구(方丈大龜) - 즉 약 3미터 되는 ‘큰 거북’ 위로 어가(御駕)를 타고 건넌것은 틀림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북이는 그 등판이 철(凸)자 모양으로 ‘등판이 불쑥 올라와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방장대구(方丈大龜)들이 만든 ‘거북 등판’ 레일(rail) 위로 설혹 어가(御駕)를 몰고 갔다고 하더래도,  “어가(御駕)가 미끌어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고구리 사초에 묘사된 이 현무(玄武)는 ‘잠수함’ 같은 생각이 자꾸 들어오게 합니다. 

사영수(四靈獸)로 취급하는 청룡(靑龍), 현무(玄武), 백호(白虎), 주작(朱雀)의 그림을 고구리 벽화에서 보면, 이 현무는 ‘검은 색의 거북’에 ‘무지개(=홍예(紅蜺))’를 상징하는 ‘머리가 둘달린 용(龍)’ 즉 쌍수룡(雙首龍)이 겹쳐진 동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이 현무(玄武)의 쌍수룡(雙首龍)은 잠수함이 물에 잠겼을 때, ‘물 밖’으로 환기통(換氣筒)이나 잠망경(潛望鏡)을 내민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고구리 사초’는 결국 어별성교(魚鼈成橋)를 이 방장대구(方丈大龜) - 즉 사방(四方) 일장(一丈: 약 3미터)나 되는 ‘큰 거북’이가 엄리대수(奄利大水) 위에 다리를 놓았다고 되어 있음을 가정(假定)하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넌 후에는 네명의 호걸들과 -오이,마리,협보,분노 - 이를 타고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엄리대수(奄利大水)와 보술수(普述水)가 ‘물길’로 이어졌겠지만, 그 위에 계속 방장대구(方丈大龜)들을 타고 왔다는 것은 좀 이해가 안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방장대구(方丈大龜)들을 ‘잠수함’으로 보고,  “몸 체 ‘안’에  각기 네 호걸들을 태우고, ‘고삐-걸이’를 한 고래들이 끌고, 보술수(普述水)에 이르렀다.”고 하면 우리는 어느정도 그 개연성(蓋然性)을 오히려 인정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이 방장대구(方丈大龜)가 이처럼 잠수함(潛水艦)을 뜻한다면, 우리는 어별성교(魚鼈成橋)를 이 현무(玄武)들이 다리를 놓을 때, 현무(玄武)들이 두-줄로 서서 도킹(docking)을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어별성교(魚鼈成橋)는 마치 ‘凸凸’로 되어 있어서 그 사이에 어가(御駕)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면,  “오늘날 기차가 레일(rail) 위로 가듯이 안전하게 갈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현무(玄武)=고구리(高句麗) 잠수함(潛水艦)’이란 가설(假設)은 “어찌 그다지도 황당한 생각을 하는가?!”하는 반감을 즉각 일으키기 쉬운 것이지요.

그러나, 고구리(高句麗) 나아가 부여(夫餘)의 창건(創建)과 관련해서 반드시 등장하는 이 어별성교(魚鼈成橋)의 미스테리(mystery)에 아무런 생각을 안 하는 것이 더욱 황당함은 분명합니다.  

도대체 “누구의 명(命)을 받아 왜 건너는지?” 또 “이처럼 어별성교(魚鼈成橋)로써 엄리대수(奄利大水)를 건너는 것이 부여나 고구리의 입국(立國)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또 “쫓는 자가 누구며 왜 쫓는 것인지?” , 또 도망가는 자는 “왜 꼭 엄리대수 앞에 ‘나는 일월(日月)의 아들이요. 하백(河伯)의 외손(外孫)이다.’라고 외쳐야하는지?”가 온통 오리무중(五里霧中)이고 미스테리(mystery)의 창고라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는 신기할 정도로 아무런 ‘구체적 분석’이 없이 “~카더라.”로 일관하는 황당함이 있는 것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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