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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홀주를 설치하다 ( 556년 07월(음) )
한국사DB > 삼국사기 > 신라본기 제4 > 진흥왕(眞興王) > 비열홀주를 설치하다
 
十七年, 秋七月, 置比列忽州, 以沙湌成宗爲軍王.校勘 028
 
校勘 028 정덕본에는 王, 을해목활자본에는 主로 되어 있다. 《삼국사절요》·주자본에는 主로 되어 있다.
 
 
비열홀주를 설치하다 ( 556년 07월(음) )
 
17년(556) 가을 7월에 비열홀주(比列忽州)를 설치하고,註 001 사찬(沙飡) 성종(成宗)註 002을 군주(軍主)로 삼았다.註 003
 
註 001 비열홀주(比列忽州)를 설치하고: 비열홀은 함경남도 안변(북한의 강원도 안변)에 해당한다. 본서 권제35 잡지제4 지리2 삭주 삭정군조에 “본래 고구려 비열홀군이었는데, 진흥왕 17년, 양(梁)나라 태평(泰平) 원년(556)에 비열주로 삼고 군주(軍主)를 두었다. 효소왕 때에 성을 쌓았는데, 둘레가 1,180보였다. 경덕왕이 이름을 〔삭정군(朔庭郡)으로〕 고쳤다.”라고 전한다.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와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昌寧 新羅 眞興王 拓境碑)」에서 ‘비리성(碑利城)’, 본서 권제6 신라본기제6 문무왕 8년(668) 6월 21일조에서 ‘비열성(卑列城)’이라고도 하였다.
 
진흥왕 22년(561)에 건립된 「창녕 신라 진흥왕 척경비」에 비리성군주(碑利城軍主)라고 전할 뿐이지, 여기에 동해안지역에 신라에서 주(州)를 설치하였다는 정보는 전하지 않는다. 이에 근거하여 본래 진흥왕 17년(556) 7월에 비열홀지역에 왕경인 출신의 군사를 중심으로 편성한 비열홀정(비리성정)을 설치한 사실을 8세기 전반 성덕왕 때에 ‘비열홀주를 설치하였다.’라고 고쳤고, 이것을 본서의 찬자가 그대로 신라본기에 인용하였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전덕재, 2018, 『三國史記 본기의 원전과 편찬』, 주류성, 80~95쪽).
 
註 002 성종(成宗): 진흥왕 17년(556) 7월에 비열홀군주로 임명된 인물이다. 이외에 다른 기록에 전하지 않아 더 이상의 행적은 알 수 없다.
 
註 003 사찬(沙飡) 성종(成宗)을 군주(軍主)로 삼았다: 중고기에 군주는 지방에 주둔한 정군단(停軍團)의 사령관이면서 상주(上州)와 하주(下州), 신주(新州) 및 동해안의 우추군(于抽郡: 경북 영덕군 영해면)·실지군(悉支郡: 강원도 삼척시)·하서아군(何西阿郡: 강원도 강릉시) 등을 행정적으로 총괄하는 업무를 수행하였다고 이해되고 있다. 이때에 사찬 성종이 비열홀정의 사령관에 임명되었고, 아울러 동해안지역의 여러 군의 행정업무를 총괄하였을 것이다. 군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본서 권제4 신라본기제4 지증마립간 6년(505) 2월조 참조.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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