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트리트 인공수로' 청계천의 참된 복원은?
[홍성태의 서울 만보기] 원래 물길과 영조 때 석축 되살려야
홍성태 / 상지대 교수 | mediaus@mediaus.co.kr 입력 2013.08.23 14:4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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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도심과 청계천.
*청계천의 발원지는 서울 종로구 청운동의 백운동천이다. 청운동의 창의문 아래 길가에 청계천 발원지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여기서 흘러 내려가는 계곡을 백운동천이라고 하는 데, 청운동은 청풍계와 백운동을 합쳐서 만든 지명이다. 청풍계는 인왕산 남동쪽 계곡 지역이며, 청계천의 본래 명칭은 청풍계천이었다. 세종 때 대대적인 청계천 준설 작업을 하고 청계천은 그냥 ‘개천’(開川)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청계천의 길이는 발원지에서 중랑천까지는 10.8km, 태평로에서 중랑천까지는 5.8km, 도심 구간은 2.9km이다.
1.
서울 도심에서 가장 즐거운 산책로를 꼽는다면 아마도 ‘청계천 길’이 최고로 꼽히지 않을까? 정동의 ‘덕수궁 돌담길’, 삼청동과 효자동의 ‘돌담길’도 아주 좋지만, 자동차를 보지 않고 물과 풀을 느끼며 한참 걸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청계천 길’은 특히 훌륭하다. 그러나 사실 지금의 청계천은 청계천이 아니다. 사실 지금의 청계천은 ‘명박천’이라고 불러야 옳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사실 지금의 청계천은 ‘천’도 아니다. 도시학자 강병기 선생이 오래 전에 지적했듯이 사실 지금의 청계천은 ‘세계에서 가장 긴 옆으로 누운 분수’이다. 엄밀히 말해서 지금의 청계천은 ‘정치 사기’의 대표적인 예이다. ‘4대강 죽이기’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 이명박의 문제는 이미 ‘청계천 복원’에서 예시됐던 것이다.
청계천은 본래 백운동천으로 시작해서 청풍계천, 옥류동천, 삼청동천 등을 받아들이며 동대문 옆 오간수문을 빠져나가 왕십리를 지나 중랑천을 만나서 한강으로 들어갔다. 겸재 정선(1676~1759)은 18세기 전반기에 인왕산 자락과 창의문 지역을 그림으로 그렸다. ‘창의문’을 보면 백운동천이 험한 바위들이 많은 골짜기를 흘렀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장동춘색’을 보면 인왕과 백악 일대의 산세와 동네들을 잘 볼 수 있다. 이제는 길들이 닦이고, 집들이 들어서고, 청계천의 상류는 거의 모두 복개되어 자취조차 볼 수 없으나, 겸재 정선이 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을 남겨서 아름다운 ‘자연 도시’였던 서울을 떠올려 볼 수 있다. 아주 다행이다. 아름다운 ‘자연 도시’ 서울을 사랑했던 겸재 정선에게 늘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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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겸재의 창의문(왼쪽)과 장동춘색(오른쪽)
청계천은 본래 백악의 계곡에서 시작된 자연하천이었다. 그러나 조선이 서울을 왕도로 정하고 청계천은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600여 년 전인 1411년에 조선의 3대 왕인 태종은 ‘개거도감’을 설치해서 청계천의 개수를 시작했다. 이것은 청계천의 배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사업이었다. 도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쓸 물을 잘 공급해야 할 뿐만 아니라 쓴 물을 잘 처리해야 한다. 즉 상수가 잘 공급되고 하수가 잘 처리돼야 한다. 서울의 상수는 계곡과 우물로 공급됐고, 하수는 모두 청계천으로 처리됐다. 박태원의 '천변풍경'은 청계천을 배경으로 쓰여진 장편소설로 1절의 제목은 ‘청계천 빨래터’이다. 청계천은 빨래와 같은 일상생활로 중요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청계천의 기능은 배수였다.
청계천은 서울 도심의 지형적 특징을 아주 잘 보여준다. 본래 서울은 주산인 백악, 안산인 목멱, 좌청룡인 낙산, 우백호인 인왕 등 내부의 네 산(내사산)에 주로 의지해서 만들어진 ‘산중 도시’이다. 이 산들에서 흘러나온 수십 개의 개울들이 모두 청계천으로 흘러든다. 청계천은 서울의 자연 배수로였다. 청계천은 사람들이 버리는 각종 하수와 오물들을 서울 밖으로 빼내는 구실을 했다. 청계천이 막혀서 물이 잘 빠지지 않으면, 장마철에는 서울의 도심에 물이 넘쳐 물 난리가 났고, 평소에는 하수와 오물들이 쌓여 서울의 도심이 시궁창 지경이 됐다. 이 때문에 청계천의 개수는 조선 왕조에서 아주 중요한 과제였고, 이 과제는 영조 때 두 차례에 걸친 석축 공사를 통해 비로소 마무리되었다.
2.
이명박은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청계천 복원’을 대표 정책으로 제시해서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당시 이에 대해 시민사회에서도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다. 사실 ‘청계천 복원’은 오래 전부터 시민사회에서 요구했던 역사적인 과제였다. 그런데 왜 이 좋은 정책을 둘러싸고 상당한 논란이 일어났던 것일까? 그 이유는 무엇보다 이명박이라는 자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명박은 현대건설 시절에도 온갖 비리 의혹을 받았고, 정치인이 되어서도 비리를 저질러서 정계에서 추방됐던 자였다. 이명박은 김대중이 특별사면해서 정계로 복귀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가장 큰 잘못은 전두환의 사면을 김영삼에게 요청해서 성사시킨 것과 직접 이명박의 사면을 실행했던 것이다.
이명박은 기회를 잘 보는 영악한 자이다. 청계천 일대는 이미 오래 전부터 고가도로로 말미암아 거대한 슬럼지구가 되어 있었고, 이 때문에 1990년대 중반부터 ‘청계천 복원’에 대한 논의가 불거지고 있었다. 이명박은 이 사실을 정확히 포착했고, 연세대 환경공학과 노수홍 교수가 진행하고 있던 ‘청계천 복원 연구’의 성과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 나는 시민사회가 요구했던 ‘청계천 복원’을 하겠다고 하니 하지 말라고 해서는 설득력이 없고 똑바로 하라고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여러 시민단체의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이명박이 조례를 제정해서 구성한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에 참여했다. 나는 역사문화분과에 참여해서 간사위원으로 활동했다.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는 역사, 생태, 토건, 교통, 시민 등의 여러 분과들과 운영위원회로 구성되었다. 역사문화분과의 분과장은 ‘청계천 복원’을 주창했던 소설가 박경리 선생의 따님이자 한국미술 연구자인 김영주 선생이었다. ‘청계천 복원’의 핵심은 사실 두 가지였다. 청계천은 자연하천이자 인공하천인데 그 상태가 일제, 이승만, 박정희에 의해 크게 망가졌으니 바로 그 상태를 되살리는 것이 ‘청계천 복원’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요점을 추려서 말하자면, 자연하천의 복원은 원래의 물길을 되살리는 것이고, 인공하천의 복원은 영조 때의 석축을 되살리는 것이었다. 역사문화분과는 이 점을 명확히 정리해서 제출했고, 다른 분과에서도 이에 찬성하고 동의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의견을 따르지 않았다. 시작 전부터 우려했던 것이 결국 실현되고 말았다. 사실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첫 전체회의에서 이 우려는 크게 불거졌다. 첫 전체회의에서 양윤재 청계천복원추진단장은 복원에는 원래의 것을 찾는 것과 더 좋은 것을 만드는 두 가지 뜻이 있다는 황당한 주장을 천연덕스럽게 펼쳤다. 나는 기가 막혀서 대체 서울시가 추진할 복원은 무엇이냐고 따져묻고, 역사를 되살리는 것이 아니라면 복원이 아니라고 강력히 지적했다. 그러나 이명박은 결국 ‘청계천 복원’을 내걸고 ‘청계천 개발’을 강행했다. 이 때문에 나와 김영주 분과장, 그리고 다른 시민사회의 대표들이 함께 이명박과 양윤재를 2004년 3월 5일에 서울지검에 형사고발했으며,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주요 위원들은 2004년 6월에 임기 만료를 앞두고 서울시에 항의하며 사퇴했다.
우리가 이명박과 양윤재를 형사고발한 직접적인 이유는 영조 때의 석축을 파괴해서 없애버렸기 때문이었다. 고가도로와 아스팔트를 뜯어내자 청계천 1가와 2가의 두 곳에서 수백 미터 길이의 석축이 잘 보존되어 있는 채로 드러났다. 참으로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당연히 이 석축을 보존해야 했고, 청계천 전체에서 석축을 복원해야 했다. 그러나 이명박과 양윤재는 정치적 계획에 따라 공사를 마치기 위해 오히려 이 귀중한 석축을 없애 버렸다. 나아가 600년 동안 제 자리를 지켜왔던 광통교를 상류로 이설했고, 제 자리로 옮기겠다던 수표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닥에는 3중 콘크리트 차수막을 설치했고, 12km나 떨어진 한강에서 물을 끌어와서 역류시키고 있다. 이명박은 시민을 속이고 소중한 역사와 자연을 산산이 파괴해서 ‘콘트리트 인공 수로’를 만들었다.
이명박은 2005년 10월 1일에 ‘청계천 복원’ 행사를 성대히 하고 본격적인 대통령 선거를 시작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을 짓누르고 있던 거대한 고가로도와 아스파트를 없애고 도심 수변공간을 만들자 서울 시내는 확 밝아졌고 숨통이 트이게 됐다. 시민들의 열광적인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이명박의 대성공이었다. 이명박은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 흉내를 많이 냈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은 박정희식 개발주의와는 사뭇 다른 이명박식 개발주의의 본격화였다. 전자는 자연과 역사를 무시하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연과 역사를 존중하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자를 구개발주의, 후자를 신개발주의로 구분한다. 이명박은 신개발주의의 시대를 활짝 열었고, 그 참담한 결과가 바로 ‘4대강 죽이기’이다.
3.
박원순이 이명박의 뒤를 이은 오세훈을 누르고 서울시장이 된 것은 대단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박원순이 서울시의 복지를 크게 증진시킬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비리를 척결해야 하며, 또 이를 위해서는 비리의 원천인 불필요한 토건사업을 척결해야 한다. 이명박의 ‘청계천 복원’은 도시의 재생, 문화복지, 생태복지 등의 여러 시대적인 요청의 면에서 꼭 필요한 사업이었다. 그러나 이명박은 이 사업을 올바른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으며, 그 결과 허울만 그럴 듯한 상태에서 엄청난 혈세의 낭비와 막대한 비리의 발생이라는 극히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므로 ‘청계천 재복원’이 추진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다.
‘청계천 재복원’은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청계천 복원’이 과연 무엇인가에 대해 잘 살펴봐야 한다. 그 핵심은 앞에서 말한 대로 청계천의 생태복원과 역사복원이다. 생태복원은 자연하천 청계천을 되살리는 것이고, 역사복원은 영조 때의 석축을 기준으로 귀중한 하천 토건유적 청계천을 되살리는 것이다. <아래 왼쪽 사진>은 자연하천 청계천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청계천 곳곳에 모래밭이 있었으며, 건기 때는 청계천도 말랐다. 한강 역류 중단, 도심 하수도의 정비, 계곡 소형 보와 유수지 설치, 탈시멘트화 등으로 자연하천 청계천을 되살려야 한다. <아래 오른쪽 사진>는 청계천의 석축을 잘 보여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청계천의 석축이 청계천의 너비와 굴곡 등의 형태를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 석축을 없애면서 청계천의 형태도 크게 훼손되었다. 청계천의 형태를 가능한 한 되살리면서 석축의 복원을 추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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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하천 청계천의 모습(왼쪽) 청계천 석축의 모습(오른쪽)
둘째, ‘청계천 재복원’이 상당히 지체되고 있는 데, ‘청계천재복원 시민위원회’는 하루빨리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가 제안했던 내용들을 잘 살펴서 같은 일을 반복하거나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는 지금의 ‘청계천재복원 시민위원회’보다 훨씬 방대하고 전문화된 기구였다. 여기에 당시 중요한 시민단체의 핵심 활동가들과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해서 올바른 청계천 복원의 내용과 방식을 만들어서 제안했다.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제안을 검토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 수 있다. 사실 당시 서울시에서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했던 자들도 지금 ‘청계천재복원 시민위원회’에 관여하고 있어서 우려가 더욱 더 크다.
지금 청계천에서는 아주 멋지고 즐거운 만보를 즐길 수 있다. 수많은 시민들이 청계천을 찾고 있으며, 곳곳에서 청춘 남녀들이 꿀같이 달콤한 얘기를 나누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을지로 3가 을지면옥에서 냉면을 먹고 청계천으로 내려가서 태평로 쪽으로 슬슬 걸어가는 것을 즐긴다. 그러나 청계천은 지금보다 훨씬 나은 곳이 될 수 있다. 광통교, 수표교, 오간수문 등이 모두 제대로 복원되고, 귀중한 하천 토건유적인 영조 때의 석축이 복원되고, 흙과 물이 모두 원래대로 살아 있는 청계천이 되살아날 수 있다. 그런 청계천에서 만보하는 것은 콘크리트 화분과 수로 속에서 만보하는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즐거울 것이다. 이제 천박한 ‘명박천’을 진정한 ‘청계천’으로 되살릴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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