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4대강’ 교수와 관료의 책임도 크다
이상돈 | 중앙대 명예교수  입력 : 2013-09-05 21:32:41ㅣ수정 : 2013-09-05 21:32:41

낙동강, 영산강, 그리고 금강 전체 구간에서 녹조가 심해지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4대강 사업이 가져온 재앙은 녹조에 국한되지 않는다. 지류가 본류와 합류하는 지점은 하천이 무너지는 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하천 합수부(合水部)에 콘크리트 석재 제방을 쌓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무엇보다 4대강 원래의 모습을 찾아 볼 수 없게 됐으니, 우리가 알아 왔던 낙동강, 남한강, 금강, 영산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셈이다.

4대강 사업이 미래세대를 위한 녹색성장 전략이라는 이명박 정부의 주장이 허망한 거짓말임은 이제 분명하다. 일각에서는 이럴 줄은 잘 몰랐다면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본질을 흐리는 꼼수에 불과하다. 4대강 사업을 일방적으로 홍보해 오던 언론이 지금 와서 이런저런 말을 하는 것도 우습다. 국정원 정치개입을 수사하는 검찰이 밝혀낸 바에 의하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댓글 심리전을 하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정체불명의 집단들이 4대강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비난하는 시위를 하기도 했다. 진실의 편에 선 사람들을 터무니없이 비방한 이들에 대해 사법당국은 준엄한 심판을 해야 한다.

 

4대강은 복원돼야 하며, 그 과정은 매우 힘들고 비쌀 것이다. 하지만 복원에 앞서 짚어야 하는 것은 책임 문제다. 검찰은 ‘수자원 마피아’의 한 축인 설계회사와 토건회사에 대한 수사에 강도를 높이고 있으니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공사수주와 비자금 조성 같은 범죄행위를 파헤치는 일 못지않게 4대강 사업이 급속하게 진행된 과정을 규명하고 책임을 묻는 일 역시 시급하다.

4대강 사업은 애당초 해서는 안되는 사업이었다. 환경부 산하의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이 사전환경성 검토를 제대로 하고 국토부 산하 중앙하천관리위원회가 하천기본계획 수정안을 제대로 심사했더라면 이 사업은 추진될 수 없었다. 4대강 사업에 대한 진실 규명은 이 과정을 밝히는 데서 시작돼야 한다.

중앙하천관리위원회 위원의 다수는 수자원학 등을 전공한 교수들이다. 중앙부처의 중요한 위원회이니만큼 이들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고 정년을 보장받은 정교수들이다. 이들 교수 중에 4대강에 보를 여러개 세우면 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논문을 썼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4대강 사업에 참여했던 정부 연구기관의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개중에는 보 같은 하천 구조물을 철거해서 하천을 자연상태로 복원해야 한다는 국책연구를 했던 사람도 있다. 중앙하천관리위원회에 참여했던 교수들이 단호하게 목소리를 냈더라면 4대강 사업은 추진되지 못했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4대강 사업이 논의될 즈음에 원로 수자원 학자들이 “안된다”고 단호하게 나섰다면 4대강 사업은 시작도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원로학자들에게만 책임을 돌릴 일도 아니다. 교수에게 정년을 보장하는 이유는 세상이 어지러울 때 옳은 말을 하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전공교수들은 대부분 침묵했다. 4대강 공사가 한창일 때 수자원학회는 차기 정권에 대비해서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논의한 적이 있다. 필요할 때 당당하게 의견을 펴지 못한 사람들이 나중에 돌아올 비난으로부터 학회를 보호할 생각이나 한 것이다.

공무원이 상부 방침을 거역하기는 어렵지만 4대강 사업에 앞장선 관료들의 책임을 상명하복이란 편리한 이유로 덮을 수는 없다. 국토부의 어떤 공무원은 준설 규모를 줄이자고 했다가 인사 불이익을 당했고, 어떤 정부 전문가는 심의과정에 할 수 없이 찬성하면서 의견서를 첨부해서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장관 등 많은 고위공무원들은 4대강 전도사가 되어 국토환경 파괴에 앞장섰으니 이들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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