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익, '일본군 위안부는 여성 해외취업' 주장"
민주당 "2008년 출간 뉴라이트 교과서 감수…내정 취소해야"
곽재훈 기자   기사입력 2013-09-26 오후 5:45:47

 민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 의해 국사편찬위원장에 내정된 유영익 한동대 교수가 과거 뉴라이트 성향 역사 교과서 감수에 참여한 사실이 드러났다며, 유 내정자에 대한 임명 취소를 재차 촉구했다.

민주당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유기홍 의원은 26일 "유 내정자는 '역사학계의 김기춘'"이라며 지난 2008년 출판된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감수한 이가 바로 유 내정자라고 밝혔다. 유 의원은 유 내정자의 감수로 펴낸 이 교과서에 대해 "교학사 역사교과서의 원조"라며 "일본 정부의 주장을 대변하는 내용"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에 따르면, 이 교과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인 (위안부 모집) 대리업자가 여인들에게 제시한 것은 큰 돈벌이, 가족의 빚 갚기, 쉬운 일, 신천지 싱가포르에서의 새로운 삶 등이었다. 이러한 꾐에 빠져 많은 여성이 해외 취업에 지원했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된 것이 아니라 피해 여성의 자발적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또 식민지 조선에 대한 일제의 '수탈론'에 대해서도 "수탈론에는 실증적인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문제점이 있다", "빈곤의 근본 원인은 급속한 인구증가에 따른 농촌 과잉인구의 축적에 있었다"고 쓰고 있다. 유 의원은 이에 대해 "다른 모든 교과서가 일제의 수탈에 의해서 농민들이 빈곤해졌다고 기술했는데 이 책은 인구 과잉으로 인해서 농촌이 빈곤해졌다고 기술하고 있다"고 짚었다.

유 의원은 "이런 극단적인 인사를 국사편찬위원으로 내정한 것을 즉각 취소해줄 것을 박근혜 대통령께 강력히 촉구하는 바"라며 "지난달 31일 친일독재 교학사 교과서의 검정합격 발표, 이달 17일 이배용 한국학중앙연구원장 임명, 23일 유 내정자 발표 등 일련의 과정은 '역사 쿠데타'의 시작"이라고 비판했다.

유 의원은 "우리는 '역사 쿠데타'의 배후에 박 대통령이 있다고 지목할 수밖에 없다"며 지난 2008년 당시 한나라당 국회의원이던 박 대통령이 바로 이 대안교과서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이 교과서를 후원해 주시고 오늘 참석해 주신 분들 모두 애국지사"라고 축사를 한 사실을 들춰내기도 했다.

민주당은 지난 24일 교과서대책위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들 공동으로 기자회견을 열고 유 내정자의 내정 철회를 요구했었다. 25일에는 민주당 배재정 의원이 유 내정자의 과거 저서 <한국근현대사>가 일제 식민지배를 긍정 평가하는 '식민지근대화론'에 입각한 내용이라고 밝혔다.

배 의원에 따르면, 1992년 유 내정자가 쓴 이 책은 "일제 식민통치는 (…) 해방 후 우리나라의 본격적 근대화 작업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특히 그것은 조선시대의 지도이념인 유교적 가치체계와 이에 바탕한 정치, 사회적 지도체제를 뒤흔들어 놓을 만한 발전 충격을 가함으로써 새로운 '근대적' 가치관 도입 및 전파와 지도세력의 등장을 용이하게 만들었다"는 취지의 서술을 담고 있다. 다음은 배 의원이 언론에 공개한 해당 저서의 발췌록을 정리한 것이다.

<정치분야>
△35년 간의 일제 식민통치는 장기적으로 볼 때 다음과 같이 여러모로 한국의 정치 근대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여겨진다. (191쪽)
△일제가 1910년에 조선왕조를 타도함으로써 조선의 군주제 전통에 치명적 타격을 가한 위에 몰락왕조의 지배계급을 친일세력으로 매수, 농락함으로써 동족 간에 그들의 권위를 실추시켰기 때문에 (…) 한국민은 국민 혁명을 거치지 않고 1919년 이후 민주공화제 정부수립을 시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193쪽)
△일제 총독부 정치의 주요 특징은 중앙집권의 효율적 행정체계에 있었는 바, 이 요소는 해방 후 남·북한 정부의 중앙집권적 통제력 강화와 행정의 효율성 제고 등에 공헌한 것으로 여겨진다. (같은쪽)

<경제분야>
△일제 식민통치는 해방 후 한국의 경제발전에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195쪽)
△일제가 야심적으로 추진한 토지조사사업을 통하여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근대적인 토지제도가 확립된 것은 사실이며, 또 이를 통해 총독부 지세(地稅)수입이 조선왕조 정부의 그것에 비해 2배 정도 증가하였다. (…) 이와 같은 총독부 재정규모의 확대는 장기적으로 현대 한국 중앙정부의 재정기반을 조성하는 데 공헌했다고 볼 수 있다. (198쪽)

<사회·문화분야>
△일제가 강조한 '실용주의' 교육은 한국인으로 하여금 조선시대의 유교위주 '허학(虛學)' 대신 서구의 과학과 학문을 본격적으로 수학·연마케 함으로써 장기적으로 한국인의 가치관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진다. (205쪽)
△일제의 식민통치기간 한국의 인구는 배증하였고 교통과 물산 교역의 중심지에서 중소도시가 발달하면서 그곳에 근대적인 도시문화가 발달하였다. (193쪽)
△1922년에 발효된 민법 제13호에 의하여 축첩제가 금지되고 법적으로 이혼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한국사회 내에서의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다. 일제 하에서 꾸준히 강조된 여성 교육도 한국여성의 여권(女權)을 어느 정도 신장시켜 주었다.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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