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33125

MB 닮은 개로왕의 '쪽팔린' 최후
[지역투어 - 대전충청④] '꽃중년' 무령왕은 백제를 어떻게 살렸나
11.10.09 18:24 l 최종 업데이트 11.10.10 11:59 l 김종성(qqqkim2000)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 행사가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맛집, 관광지 등은 물론이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낱낱이 보여드립니다. 10월, 첫 번째 지역투어 현장은 대전충남충북입니다. [편집자말]

▲  백제 임금의 모습. 출처: <한국생활사박물관>. ⓒ 사계절


한때 평양성과 중국 본토(요서 지방)까지 점령했던 백제. 이런 백제의 영광을 일거에 무너뜨린 장본인은 토목사업에 미쳐버린 개로왕(재위 455~475년)이었다. 그는 고구려 스파이의 부추김에 넘어가 과도한 토목공사를 벌이다가 민심도 잃고 국고도 탕진했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의 기록이다. 

"나라 사람들을 모두 동원해서 흙을 구워 성을 쌓고 그 안에 궁실(宮室)·누각·정자를 마련했다. 굉장하고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큰 돌을 욱리하(한강)에서 가져와 곽을 만들어 아버지의 뼈를 묻고 강을 따라 제방을 쌓으니, 사성(한강변의 풍납토성) 동쪽에서 숭산(한강변의 검단산) 북쪽까지 이르렀다. 이로 인해 창고가 텅 비고 백성이 곤궁해지니, 나라의 위기가 알을 쌓아 놓은 것보다 더 심했다." 

알 위에 알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험한 상태 즉 누란지위(累卵之危)를 자초할 정도로 토목사업에 심취한 개로왕. 그는 결국 고구려 장수태왕에게 수도 한성을 빼앗기고, 아차산에서 백제 출신 고구려 군인들에 의해 치욕적인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한성을 빼앗기고 웅진(충남 공주)으로 천도한 백제는 사상 최악의 쇠퇴기로 접어들었다. 

삽질로 쇠락한 백제, 웅진(충남 공주)에서 다시 부흥

이런 분위기 속에서 웅진시대의 백제왕들은 우울한 나날들을 보내야 했다. 개로왕을 뒤이은 문주왕은 즉위 2년 만에 쿠데타를 당해 목숨을 잃었다. 그 뒤를 이은 삼근왕도 허수아비 임금으로 살다가 즉위 2년 만에 15세의 나이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뒤이어 즉위한 동성왕 역시 쿠데타로 목숨을 잃었다. 

개로왕에 뒤이은 문주왕·삼근왕·동성왕의 운명에서 드러나듯이, 웅진 천도 이후의 백제 왕실은 우울함 그 자체였다. 한성을 잃은 백제는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이런 상태로 백제가 망했다면, 웅진은 불운의 도시로 기억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백제의 운명은 웅진에서 끝나지 않았다. 웅진시대 후반에 백제가 기적처럼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한성을 잃은 지 사반세기 만에 웅진은 무령왕(재위 501~523 혹은 502~523)이라는 영웅을 배출했고, 그는 다 죽어가던 백제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참고로, 대부분의 서적에서 무령왕이 501년에 즉위했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무령왕이 즉위한 정확한 시점은 동성왕 23년 12월로서 양력으로 치면 501년 12월 26일부터 502년 1월 23일 사이다. 501년보다는 502년에 즉위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 

무령왕 시대에 안정을 되찾은 백제는 국방을 강화하고 고토를 수복하면서 중국과의 문명 교류에 박차를 가했다. 최전성기인 한성시대의 영광에는 도달하지 못했지만, 웅진시대 나름의 영광을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무령왕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고구려의 만성적인 압박을 저지하고 나아가 도리어 고구려를 압박하는 수준에까지 도달했기 때문이다. 


▲  무령왕릉의 내부. 충남 공주시 금성동 소재. ⓒ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백제 중흥에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은 무령왕 12년 9월(512.9.26~10.25)의 대(對)고구려 전쟁이다. 이 전쟁은 고구려의 선공으로 시작됐다. 전쟁 초기에 백제는 일방적 수세에 몰렸다. 하지만, 무령왕이 3000명의 기병을 이끌고 직접 출전한 것이 계기가 되어 백제는 참으로 오랜만에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쟁의 승리로 백제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고구려는 그 후 10여 년간 백제를 침공하지 못했다. 

무령왕 12년의 전쟁이 백제 중흥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점은, 그로부터 9년 뒤에 무령왕이 양나라 황제인 무제에게 보낸 국서에서도 잘 드러난다. 이 국서에서 무령왕은, 과거에는 고구려에 시달렸지만 이제는 고구려를 부수고 강국이 되었노라고 자신감 있게 강조했다. 

한편, 무령왕은 섭라(涉羅) 지역에 대한 영향력 강화를 통해 고구려를 간접적으로 압박했다. 섭라에서 생산되는 옥이 고구려로 수출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참고로, 섭라는 경상도 고령이라는 설이 있다. 섭라에서 수입한 옥을 중국에 수출하던 고구려로서는 옥 수입이 막힘에 따라 대(對)중국 무역에서 곤란을 겪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자세한 정황은 <삼국사기> '고구려 본기' 문자태왕 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군사적·경제적으로 고구려를 압박한 덕분에, 무령왕은 과거의 영광을 상당 정도로 구현할 수 있었다. 이것이 밑바탕이 되어 무령왕의 아들 성왕은 사비(충남 부여)로 천도하여 백제의 중흥을 이룩할 수 있게 되었다. 성왕이 백제의 중흥을 이룩했다면, 무령왕은 중흥의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개로왕이 전사한 이후의 세 임금 중 2명은 쿠데타로 죽고 1명은 어린 나이에 죽은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웅진 천도 이후의 백제 왕실은 리더십 부족에 시달렸다. 무령왕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왕권을 안정시키고 이를 발판으로 국력을 결집했다. 무령왕이 백제 중흥의 초석을 놓을 수 있었던 결정적 요인 중 하나는 바로 그의 리더십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  웅진성의 위치. 붉은 원으로 표시된 부분. ⓒ 네이버 항공사진

무령왕이 리더십을 구축한 데는 꽃미남 같은 외모도 중요한 몫을 했다. '백제 본기' 무령왕 편에서는 그를 두고 "키는 8척이고 얼굴은 그림 같았으며 인자하고 관대해서 민심이 쏠렸다"고 말했다. 훤칠한 키에 그림 같은 얼굴, 따뜻하고 넓은 마음씨가 민심을 수습하는 밑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꽃중년' 무령왕, 웅진-사비(부여) 시대 열었네

<일본서기> 웅략천황 편에서는 무령왕이 461년에 출생했다고 했다. 한편, 무령왕릉에서 나온 지석(誌石)에서는 그가 462년에 출생했다고 나온다. 그가 즉위한 시점은 501년 혹은 502년이다. 즉위 당시의 나이가 대략 40세 정도였으니, 요즘 말로 하면 집권 당시의 무령왕은 '꽃중년'이었던 셈이다. 

지도자에게 외모는 '덤'이다. 지도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책임감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책임감은 인품과 능력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도자가 외모에 비해 인품이나 능력이 부족할 경우, 외모는 도리어 독이 될 수도 있다. 

무령왕은 키 크고 잘 생기기만 했던 게 아니라 인자하고 관대하기까지 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으로, 그는 고구려와의 경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100% 이상 완수했다. 무령왕의 경우에는 외모가 독이 아니라 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토목사업에 미쳐버린 개로왕이 전사하고 한성을 빼앗긴 이래, 웅진시대의 백제왕들은 연달아 3명씩이나 불행하게 인생을 끝마쳤다. 이들이 불운했던 공통적 요인은 리더십의 부족이었다. 만약 무령왕마저 리더십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면, 백제는 웅진시대를 끝으로 역사 무대에서 퇴장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책임감·인품·능력·외모를 골고루 갖춘 영웅의 등장으로 인해 백제는 리더십을 회복하고, 이를 발판으로 인적·물적 자원을 총동원하여 고구려와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웅진은 암울한 도시가 아니라 영광스런 도시로 거듭났다. 

웅진시대의 번영이 사비시대의 중흥으로 연결됐으니, 무령왕은 백제를 살린 임금인 동시에 웅진시대와 사비시대의 가교 역할을 한 군주라고 평가할 수 있다. 탁월한 책임감·인품·능력에 더해 조각 같은 외모까지 갖춘 꽃중년 군주가 등장했으니, 무령왕 시대의 백제인들은 이런 지도자와 함께 백제 중흥의 초석을 깔았다는 사실에 행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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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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