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조 원 아낄 수 있는데 왜 망설이나
[주장] 4대강사업과 밀양송전탑, 본질 똑같다...토목·원전국가 미래 없어
13.10.12 11:03 l 최종 업데이트 13.10.12 11:03 l 하승수(haha9601)
한국 사회는 끝없는 토건의 악순환에 빠져 있다. 건설하고 건설하고 또 건설한다. 4대강 사업은 최악의 토건사업이었다. 22조 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어 남은 것은 흉물스러운 '보'와 녹조 뿐이다.
차라리 이 돈을 국민들에게 나눠줬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든다. 스위스에서 국민들에게 월 300만 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안)이 국민들에 의해 발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드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에서 각종 토건사업에 들어가는 돈이 대략 1년에 40조 원쯤 된다고 치고, 그것을 5천만 명에게 나눠준다고 하면 1인당 80만원쯤은 돌아간다. 4인가구면 320만 원이다. 차라리 콘크리트에 쏟아 붓고 대기업들에게 특혜성으로 지원하는 돈을 이렇게 쓰면 어떨까? 돈을 낭비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것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것이다.
토건사업에 쓰는 돈을 차라리 국민들에게 돌려준다면...
▲ 영주댐 건설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수몰지인 내성천에는 강과 산이 파이거나 깎이고 있다. 내성천은 낙동강 제1지류다. ⓒ 윤성효
이런 생각이 들만큼 대한민국의 토건중독증은 심각하다. 그리고 그 상처는 깊다. 4대강 사업이 남긴 상흔은 생각보다 오래 갈 가능성이 높다. 한번 파괴된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4대강사업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더 이상 '국책사업'이라는 이름으로 비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그리고 돈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여론몰이를 해 사업을 추진하는 일은 없어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도 이런 일은 계속되고 있다. 영주댐 공사는 계속 진행되고 있고, 아름다운 내성천은 파괴되고 있다. 댐이 완공되면 농경지 378만859제곱미터, 임야 661만 제곱미터, 38점의 문화재, 천연기념물, 멸종위기종이 사라진다. 영양댐, 지리산댐 등 전국 곳곳에 댐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토건세력들은 끈질기게 새로운 토건사업을 벌이려고 한다.
이런 토건사업은 생태계에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다. 정부와 공기업의 빚이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정부와 공기업의 채무는 위험수준을 넘어섰다. 이것은 복지정책을 펴다가 생긴 부채가 아니다. 바로 무리한 개발사업, 경기부양사업을 하다가 저지른 실책이 모여 빚이 커진 것이다.
감사원도 이런 부분을 우려하고 있다. 감사원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공기업들의 채무는 급속하게 늘어났다. 한국전력, 한국수자원공사, LH공사 등 9개 주요 공기업 부채는 2007년 말 127조 9590억 원에서 2011년말 283조 9148억 원으로 121% 증가했다. 부채비율도 2007년 116.8%에서 2011년말에는 209.0%까지 늘어났다.
그에 따라 공기업들의 독자신용등급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정부의 보증이 없다면 자금조달이 어려운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렇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중앙정부와 공기업들의 부채는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불안요인이 되고 있다.
▲ 공기업 신용등급 현황 ⓒ 하승수
감사원도 지금의 공기업 채무가 잘못된 정책 때문에 생긴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4대강사업과 경인아라뱃길사업으로 수자원공사가 진 빚이 8조 5525억 원에 달한다. 고속도로 건설사업으로 한국도로공사가 진 빚이 3조 6500억 원이다. 철도공사가 실패한 사업인 인천공항철도 지분을 인수하면서 진 빚이 1조 2928억 원이다. LH 공사도 무리한 개발사업으로 29조 3071억 원의 빚을 늘렸다.
뿐만 아니다. 대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면서 늘어나는 빚도 만만치 않다. 산업용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훨씬 낮게 책정해 한국전력공사는 최근 3년간 5조 원 이상 손해를 봤다는 분석도 있다.
밀양송전탑도 4대강사업과 본질 같아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건설문제도 4대강사업과 본질은 똑같다. 4대강사업이 강을 파헤치는 토목사업이라면, 초고압 송전탑 건설은 산과 마을을 파괴하며 높이가 최대 140미터에 달하는 송전탑을 줄지어 짓는 또 다른 토목사업이다. 그리고 4대강사업으로 녹조가 발생하고 있는 것처럼, 송전철탑을 완성한 다음 전기를 송전하면 전자파가 나와 생명을 공격한다.
4대강사업을 수주해서 재미를 본 것이 재벌건설사들인 것처럼, 송전탑 건설공사로 재미를 보는 곳도 재벌기업들이다. 송전철탑 1개에 35억 원짜리 공사라고 한다. 밀양을 지나는 765kV 송전선 공사를 따낸 기업 중에는 삼성이라는 이름도 어김없이 자리하고 있다.
▲ 밀양 송전탑 공사 재개로 주민과 경찰, 한국전력공사 직원 사이에 충돌하는 상황이 계속 벌어지고 있다. 사진은 한 할머니가 산속 임도에서 농성하다 지쳐 쓰러져 누워 있는 모습. ⓒ 윤성효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나 인권이 설 자리가 없는 점도 똑같다. 국민들을 상대로 진실을 감추고, 주민들을 돈으로 분열시키는 행태도 똑같다. 말을 안 들으면 공권력을 투입하는 행태도 똑같다.
송전탑의 끝에는 원전이 있다. 정부는 현재 23개가 가동중인 원전을 계속 늘리려고 한다. 낡아서 못 쓰게 되면 그만 가동해야 하는데, 수명이 끝난 원전도 계속 가동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밀양 송전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토건국가, 원전국가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4대강 사업에 대한 국민심판 운동이 중요하다. 심판받지 않은 역사는 되풀이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밀양 송전탑 문제가 더 중요하다. 더 이상 시골 노인들의 피눈물이 흐르고, 미래세대에게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는 전기생산-소비방식을 유지할 수는 없다. 대안이 없는 것도 아닌데, 이런 방식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
'대안이 없다'는 얘기는 거짓말이다. 지역분산적인 에너지를 통해 전력자급을 하겠다는 유럽의 도시들을 보라. 독일의 경우에는 100% 에너지자립을 추진하는 지역의 숫자가 500개를 넘어섰다. 독일의 경우에는 이미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가 원전에서 생산되는 전기를 넘어섰다. 중국의 경우에도 풍력발전으로 생산하는 전기가 원전으로 생산하는 전기보다 더 많다. 중국은 재생가능에너지 투자 세계1위 국가이기도 하다.
작년 11월 현대경제연구원은 '원전의 드러나지 않은 비용'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는 결론부분에서 "에너지 소비자가 에너지 생산자가 되고 그 과정에서 자발적으로 에너지 절약에 동참하게 되는 분산형 발전시스템 확대", "낮은 전기요금 - 에너지 다소비 - 원전확대로 이어지는 구조를 저에너지- 친환경 산업구조로 재편"할 것을 제안했다. 이것은 특별한 제안이라기보다는 세계적인 추세를 따라가자는 제안이다. 재벌계열 연구소에서도 이런 얘기를 할 정도가 되었다.
이제 대한민국도 이런 방향으로 전환하면 된다. 그것이 더 이상 파괴하지 않고 미래도 생각하며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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