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농사가 절단 났다...평범한 농사꾼이고 싶은데
[두 바퀴 현장리포트 OhmyRiver!] 4대강 합천보가 망쳐놓은 고령 수박농사
13.10.13 18:06 l 최종 업데이트 13.10.13 18:06 l 정대희(kaos80)

<오마이뉴스>10만인클럽과 환경운동연합은 '흐르는 강물, 생명을 품다'라는 제목의 공동기획을 통해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구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7일부터 6박7일 동안 심층 취재 보도를 내보냅니다. 전문가들이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어민-농민-골재채취업자들을 만나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고발하고 대안을 제시할 예정입니다. 또 한강과 금강 구간의 문제점에 대해서도 기획기사를 통해 선보이겠습니다. 이 기획은 4대강복원범국민대책위원회와 4대강조사위원회가 후원합니다. 10만인클럽 회원, 시민기자,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이 글은 낙동강 4대강사업으로 합천보가 건설되면서 피해를 입은 경북 고령군 우곡면 포리의 수박 농사꾼 곽상수(45)씨와 마창진환경운동연합 배종혁 상임의장이 들려준 이야기를 토대로 작성한 글입니다..... <기자주> 

올해 또, 농사를 망쳤다. 벌써 3년째다. 이대로라면 조만간 농사를 포기해야 할 것 같다. 부지런히 논밭을 오가며 밤낮 일만 했는데 결과는 처참했다. 농사꾼은 농사에 실패하면 삶이 곧 고통이 된다. 그래서 농작물을 애지중지 키울 수밖에 없다.

7년 전 고향으로 돌아왔다. 경북 고령군 우곡면 포리, 어릴 적부터 살던 마을이다. 고령은 수박이 유명하다. 수박농사를 결심한 이유이기도 하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수박농사를 한다면 시골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다행히 첫해부터 제법 수확이 괜찮아 희망이 보였다. 차츰 생활도 안정됐다.

2009년쯤인가 한가롭던 농촌이 떠들썩해졌다. 낙동강에 4대강사업이 진행된다는 소식이 퍼지자 농사꾼들은 너도나도 얼굴에 근심이 쌓였다. 서너 명이 모였다하면 걱정을 풀어놓았다. 낙동강에 보가 건설된 2011년, 우려하던 일이 현실로 일어났다.

2011년, 수박농사가 절단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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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령에서 농사를 짓는 곽상수씨 ⓒ 조정훈

낙동강에 보가 건설되던 그해 2011년 수박농사가 절단이 났다. 이웃집도 마찬가지로 농사를 망쳤다고 한탄했다. 우곡면 포리 열린들 일대 수박농가를 조사해 보니 200동(1동=200평)정도가 수확량이 뚝 떨어졌다. 수박크기도 농구공에서 핸드볼공 크기로 작아졌다. 전체 850동(약 20만평) 중 4분의 1정도가 수박을 내다팔지 못할 상황이 됐다. 

더 걱정스런 것은 해마다 폐기되는 수박이 더 늘어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수박농사를 포기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지난해(2012년)에는 200동 규모가 수박농사를 포기했다. 올해도 비슷한 수준의 면적이 다른 농사를 선택했다. 이렇게 3년 만에 수박을 재배하는 면적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다.  

이유는 간단했다. 수박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너도나도 "땅이 축축하고 수박뿌리가 물에 잠겨서 성장을 못한다"고 말했다. 굴착기를 동원해 농경지 몇 군데를 파봤다. 흙을 조금만 파내자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여기저기서 "4대강 때문이야"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2011년 10월 27일은 합천보에 담수가 시작된 날이다. 동시에 수박농가의 시름이 깊어지기 시작한 날이기도 하다. 고령군 일대 낙동강의 평상시 물 수위가 10.5m로 높아졌다. 수박농사를 짓는 농경지와 불과 1.6m 차이에 불과했다. 4대강사업 이전 낙동강 수위는 7~8m였다 장마철 비가 억수로 쏟아져야 낙동강 수위가 10m를 넘는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높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강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 3일이면 수위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기억하는 또 다른 날짜는 2011년 12월 31일, 이날은 낙동강에 건설된 보의 완공식이 있었던 날이다. 강물은 이 시점부터 더 이상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4대강사업 초기 합천보 배수장 완공일은 2013년로 잡혀 있었다. 앞뒤가 어긋난 엉터리 계획이었던 셈이다. 

병든 수박이 늘어난 원인을 두고 한국수자원공사(수공)와 한바탕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일반적으로 수박의 평균 병충해 발생율은 약 8%이다. 올해 고령군이 조사한 고령수박의 병충해 발생율은 30%를 넘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수치가 높았던 적은 없었다. 농민 여럿이 찾아가 자료를 내밀며 항의를 했다. 하지만 수공은 4대강사업과의 연관성을 부인했다. 더러는 언성을 높이는 이들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에 화가 났다. 뭐든 다 해줄 것 같았던 정치인들은 막상 당선이 되자 누구하나 나서주는 이가 없었다. 그동안 정부를 믿고 투표를 했던 게 후회가 됐다. 동네 어르신들도 "이제는 무조건 여당을 믿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따질 것은 제대로 따지면서 투표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범한 농사꾼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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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동강 합천보. ⓒ 소중한

삶이 힘이 드니 자꾸 옛 생각이 떠올랐다. 누군가 말하길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한다. 오늘도 잠이 들기 전 낙동강의 옛 모습이 떠오른다. 4대강사업 전까지만 해도 낙동강에 때때로 멱을 감으러 가곤 했다. 날씨가 더운 날이면 찾아가는 횟수가 더 늘어났다. 

과거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강변에는 사람이 더 많았다. 모래사장에서 아이들은 소꿉장난을 하거나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어른들은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거나 적당히 자리를 잡고 집에서 싸가지고 온 음식을 먹곤 했다. 때론 사람들과 나와 강 주변에 나무를 심기도 했다. 

어쨌든 지금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이제는 더 이상 낙동강으로 누구도 멱을 감으러 가지 않는다. 모래사장이 사라지고 물이 깊어지면서 오히려 낙동강 곳곳에는 경고판이 늘었다. 여름에는 녹조가 심해져 강물을 바라만 봐도 거부감이 생길 정도였다. 

수시로 낙동강에서 물고기를 잡던 동네 주민들은 더 이상 강에 가지 않는다. 변해버린 수중 생태계에 빈손으로 돌아오는 날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는 낙동강과 주민 삶이 단절된 느낌이다.

문득, 지난 3년간의 생활이 뇌리를 스친다. 평범한 농사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악에 받친 중년 남성만 남았다. 만감이 교차한다. 잠들기 전 소망을 빌어본다. 

'낙동강 물이 다시 흐르고 옛 모습을 되찾아 평범한 농사꾼으로 돌아가길...'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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