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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산세 이용한 성곽 등 고구려산성 특징 고스란히 지녀
역사의 숨결어린 요동- 고구려 유적 답사기행<29>
데스크승인 2010.08.23
옛 모습 완연한 산성
용담산성에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성문이 설치되어 있다. 동문은 산성의 정문으로, 산성에서 가장 낮은 산 어귀 남쪽에 치우쳐 있고 그 옆에 성벽은 겹성으로 견고하게 쌓아졌으며 문은 옹성 형태다. 동문 성벽 기초 돌은 커다란 가공석이고, 그 중간에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서 북으로는 산발을 타며 성벽 터가 올라갔고, 남으로는 동쪽으로 꺾어들며 한참을 나가다가 남쪽으로 굽이돌아 나간다.
산성은 네모난 장방형, 또는 약간 각진 타원형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알맞을 듯싶다. 산성 둘레의 길이는 2천240m로 규모가 아담해 보였다.
동문에 들어서 조금 더 가면 용화궁, 거기서 서남쪽으로는 용담만, 서북쪽으로는 옛 우물인 월아정(月牙井)이 있다. 이곳에서 서쪽으로 재당(齋堂)이 있고 진인탑, 노군전이 차례로 있다. 노군전에서 서쪽으로 조금 더 나아가면 산성의 서문이 있다. 서문 역시 옹성 형태로 축조됐는데 아직까지 그 구조와 형태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곳은 산성에서는 낮은 편에 속하지만 밖으로 가파른 비탈이고 성문 또한 옹문이어서 그야말로 난공이수의 요새라 할만 했다.
서문에서 본 산성 밖은 동문에서 본 것과는 완전 딴판이다. 산성 안 펑퍼짐한 분지와는 달리 서문 밖으로 물매 빠른 비탈을 따라 골짜기가 아찔하게 내려다보이고, 그 너머로 제전(梯田·산비탈을 따라 층층이 일궈놓은 밭이 사다리꼴로 된 것)으로 밭을 일군 산이 이어진다. 그 산 너머로 이어지는 산을 포대산(砲臺山)이라고 하는데, 러·일 전쟁 때 이곳에 포대가 설치되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포대산 옆 용호산(龍虎山) 남쪽 어름에도 사찰이 하나 있으니 바로 득리사(得利寺)이다. 득리사진 노둔촌(老屯村)에 속한다. 득리사진은 이 사찰 이름에서 온 것이다. 득리사는 당나라시기에 지어진 것인데 ‘문화대혁명’ 때 훼손된 것을 1990년에 중수했다. 이 사찰의 면적은 5천600㎡로 대웅보전, 낭낭전(娘娘殿), 약사전(藥師殿) 등이 있다. 이 사찰은 대련 비사성과 같이 석가모니 불교, 도교, 유교가 공존하는 요남의 대표 사찰이다.
서문에서 양쪽(남북)으로 등성이를 따라 성벽이 이어지는데 서문 부근을 제외하고 거의 허물어지고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우리는 남쪽으로 해서 산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북쪽 성벽은 대부분 천연적인 낭떠러지이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등성이를 따라 점점 가팔라지면서 서남쪽 등성이에 이른다. 이곳에서 성벽은 완만한 원을 그리며 다시 동쪽으로 뻗어나갔다.
이곳은 남쪽에서 가장 높은 등성이로, 그 높이가 해발 318m다. 등성이 위에는 장대였던 듯싶은 건물터가 남아 있고 여기서부터 성벽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동쪽으로 죽 이어졌다. 성벽은 자연 산세를 따라 축조되었는데 한눈에 보아도 직선을 이루며 이어졌다.
이곳에서는 산성 아래 노군전과 용화궁이 발 아래로 펼쳐지며 성안의 모습을 낱낱이 굽어볼 수 있다. 산성 북쪽으로 두 개의 봉우리가 두 자루의 비수처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다. 그중 높은 봉우리는 대아(大牙)라 부르고, 나란히 서쪽에 있는 것은 이아(二牙)라 부른다. 대아의 높이는 해발 418m로 산성에서 가장 높다. 바깥쪽으로는 벼랑이어서 자연방벽을 이루고 있다.
남쪽 성벽도 우리가 방금 지났던 서남쪽 장대 터부터는 산세가 험해지면서 벼랑에 가까운 산위에 다듬은 돌로 성벽을 쌓아 놓았다. 이곳의 성벽 역시 개주 건안성에서 본 성벽과 비슷하게 석영암으로 쌓았음을 알 수 있다. 성벽의 높이는 1~3m로 부동했고, 더러 허물어진 곳도 있지만 거의 남아 있었고, 성벽의 너비는 약 3m였다. 성벽 안쪽으로는 성벽 쪽으로 약간 기울어진 평평한 바위가 3~4m 너비로 쭉 이어지는데 이는 말을 달릴 수 있는 마도(馬道)로 보였다. 특이한 것은, 이 마도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것이라는 점이다. 참으로 조물주의 신비한 조화가 아닌가 싶다.
남쪽 성벽을 따라 동쪽으로 가다 보면 용담만 남쪽 어름에 약간 낮아 보이는 성벽이 나타나는데 눈짐작으로 보기에도 성문이 있었을성싶으나 성벽 터를 보면 또 그렇지도 않았다. 이곳 성벽을 지나면서 동쪽으로 성벽이 다시 높아지기 시작한다. 그중 가장 높은 성벽은 5~6m에 길이는 수십m에 달했다.
이 한 단락 성벽을 얼마 지나지 않아 높지 않은 등성이가 나타나는데 이곳에도 역시 장대 터였음직한 건물터가 남아 있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탑 하나가 보이고 그 너머 동남쪽으로 심양~대련 간 철도선과 득리사역, 그리고 득리사진의 정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동쪽으로 보이는 탑은 진산탑(鎭山塔)이라고 하는데 청나라 때 세운 것이라고 한다. 탑 이름으로 보아 악귀를 물리치고 용담산성의 상서로운 기운을 지키기 위해 세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벽은 이곳 장대터에서 탑까지 이어지다가 왼편으로 원을 그리며 서쪽을 향해 굽어 돌다가 동문과 만난다.
이 산성을 돌면서 여느 고구려산성과 같이 자연 산세를 잘 이용했고, 산성 구조가 비교적 단순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이 산성이 철령지역 개원(開原)의 용담사산성과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다만 용담사산성이 남북으로 길쭉하다면 득리사산성은 동서로 길쭉하다는 점이 조금 다를 뿐이다.
사서 기록에는 여당전쟁시기 대련지역의 비사성, 장하지역의 성산산성, 보란점지역의 위패산성 등 산성을 비롯해 요남지역에서는 100여 차례의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이곳 득리사산성에서 벌어진 싸움도 물론 여기에 포함된다. 사서에 따르면 수나라의 문제(文帝), 양제(煬帝)에 이어 당나라의 태종 이세민에 이르기까지 고구려 정벌에 수차례 나섰지만 견고한 산성을 공략하기는 그리 쉽지 않았다.
앞서 언급했지만 강흥패, 강흥본 형제가 산성을 지키고 있을 때도 이곳에서는 전란이 끊이지 않았고, 설인귀가 이 산성을 공격한 바 있다. 전설이기는 하지만 이런 이야기가 어떤 역사 사실에서 파생(派生)되었기 때문에 이곳에서도 전투가 여러 번 벌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장광섭/중국문화전문기자 윤재윤/요령조선문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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