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it.ly/1pF9QG6
<19>이순신의 리더십 (1):그는 어떻게 부하 병사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게 했나?
충무공 리더십이 사라지자 거침없던 전투력이 와르르
2012. 05. 14 00:00 입력 | 2013. 01. 05 07:58 수정
임진왜란 해전에서 조선 수군이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첨단 조선 수군과 위대한 리더 이순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 수군은 총통포격전술을 익숙히 구사하는 혁신된 첨단 수군이었다. 또한, 왜구의 해전전술인 등선백병전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판옥선은 이른바 ‘왜구 대비용 맞춤형 함선’으로서 해전에서 그 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거기다 임진왜란 발발 1년 2개월 전에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전투준비에 박차를 가했으며 새로운 용도의 거북선을 창제했다. 거북선은 가까이 근접해 총통을 발사함으로써 총통의 명중률도 높이고 일본 수군의 장기인 등선백병전으로부터 조선 수군 병사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설계된 함선이다.
통제사 원균, 부하들과 거리 둔 독단적 지휘 최강이던 조선 수군, 칠천량 해전 패배 수모 구성원들 '한마음' 이끈 이순신 리더십 빛나
서울 광화문 광장에 서 있는 이순신 장군 동상.
이런 준비에 기초해 조선 수군은 옥포해전부터 승전보를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첨단 해전전술인 총통포격전술과 재래식 해전전술인 활과 화공술(火攻術)의 적절한 조화는 조선 수군을 막강 수군으로 변모시켜 놓기에 충분했다. 임진년(1592) 첫해 크고 작은 16회의 해전에서 320여 척을 격파 및 나포한 전과(戰果)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조선 수군이 정유년(1597) 7월 칠천량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임진년에 70여 척에 불과했던 조선의 함선은 5-6년에 걸친 지속적인 건조 사업으로 칠천량해전 직전에는 160-180척에 달했으니 이때 조선 수군의 전투력은 개전 이후 최강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조선 수군이 하루아침에 궤멸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통제사 이순신이 파직되기 전까지 벌인 30여 회의 해전에서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는, 단 한 척도 함선이 격파되지 않았던 조선 수군이 아니던가. 패인은 결국 리더의 리더십 문제로 귀결된다. 칠천량해전은 함선이나 무기체계 같은 하드웨어적 전투력 요소도 중요하지만, 리더의 전문성이나 리더십 역량 같은 소프트웨어적 전투력 요소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해전이다.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동양의 병법서 ‘손자’의 구절을 인용한다면 “리더십이란 리더(군주)와 구성원(백성)이 뜻을 함께하는 것(道者, 令民與上同意)”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왜 리더와 구성원이 뜻을 함께해야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도 ‘손자’에 있다. “리더와 구성원이 함께하고자 하는 쪽이 승리하기 때문(上下同欲者, 勝也)”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리더와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조직에 주어진 임무 완수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전시에 리더와 구성원이 한마음 한뜻이 되어 죽기를 각오하고 싸울 수 있을까. 이 물음은 군의 리더십에서 해결해야 할 영원한 화두다.
리더십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리더다. 리더의 일거수일투족, 모든 언행은 구성원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순신과 원균을 비교하는 다음의 자료는 리더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순신(舜臣)이 진영에 있을 때 운주당(運籌堂)을 짓고 여러 장수와 더불어 그 속에 모여 일을 의논했는데, 원균은 기생 첩을 두고 울타리를 둘러치고 술에 취해 일을 살피지 않으니 모든 군심(軍心)이 이반되어 모두들 <적이 오면 달아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국포쇄언<菊圃瑣言>) 이순신이 통제사였을 때는 늘 부하 장수, 참모들과 함께 모여 군사 일을 의논하고, 실행에 옮겼으며 이런 소통을 기반으로 리더와 구성원은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싸웠다. 그러나 원균은 울타리를 둘러치고 부하 장수들이나 참모들과 함께 일을 의논하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했으니 상·하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싸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당초 무리였다. 통제사 원균이 지휘하는 한산도 삼도 수군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는 것은 이순신의 일기에도 보인다. “늦게 충청 우후 원유남이 한산도로부터 와서 원균의 못된 짓을 많이 전하고, 또 진중의 장졸들이 모두 다 배반하므로 앞으로 일이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리라고 하였다.”(정유년 5월 5일) 일기를 쓸 당시 이순신은 도원수 권율 밑에서 백의종군하기 위해 가는 도중으로 순천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한 달에 걸친 옥살이와 어머니의 장례 등으로 피로한 심신을 추스르고 기운을 회복하라는 도원수 권율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시기를 전후해서 한산도에 있는 옛 부하들이 이순신을 방문해 한산도의 상황을 전하는 내용이 일기의 여러 곳에서 보인다. 칠천량해전이 벌어지기 두 달여 전에 이미 한산도에 있는 삼도 수군의 지휘관, 참모들 입에서 ‘해전이 벌어지면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적이 오면 달아날 따름이다’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칠천량해전에서 조선 수군의 패배는 부산 앞바다를 차단하라는 조정의 무모한 작전 지시에도 원인이 있었지만, 수군의 최고 지휘관인 통제사와 예하 지휘관, 참모 사이의 불화(不和), 불통(不通)이 더 근본적인 원인이었다. 여러 정황을 분석해 보면 칠천량해전의 패배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으며, 리더십 부재가 패전의 핵심 요인이었다.
리더십은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행사하는 다양한 방식의 영향력이다.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영향을 주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리더의 인격이나 언행 그 자체로서 이는 구성원들에게 간접적으로 영향을 준다. 전통적으로 덕목(德目)이라 불리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리더십 방법으로 이는 리더가 구성원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영역이다. 구성원들에게 무언의 긍정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 리더는 어떤 덕목을 지녀야 할까. 리더가 어떤 방법을 사용해야 구성원들이 주어진 임무 완수를 위해 자신의 역량을 십이분 발휘할까. 리더십의 영원한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이순신은 어떤 덕목을 지녔는가. 이순신은 어떤 방법의 리더십을 구사했기에 그와 함께했을 때 조선 수군 장병들이 죽기를 각오하고 싸웠을까. 이순신의 리더십을 살펴봐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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