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item/pdfViewer.do?levelId=hn_019_0070 (문서파일)
* "발해 城址의 조사와 연구 - 송기호" 중 "Ⅳ.지방도시성 - 4
.기타 - 2) 河南屯古城"만 가져왔습니다.

하남둔고성(河南屯古城)

허래성(虛萊城,虛來城), 팔가자토성(八家子土城)으로도 불린다.98) 이곳은 중국 길림성 和龍縣
八家子鄕 河南村에 속하며, 서북쪽으로 4km 떨어진 곳에 서고성이 있다. 이 성의 북쪽은 해란강에 접하고 남쪽은 산이다.

(그림 14) 하남둔고성

성은 동서로 긴 장방형이고 외성과 내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북벽이 강물에 씻겨내려가 ㄷ자 형태로 남아 있다(그림 14). 나머지 성벽도 대부분이 무너져서 평지화되어 있고, 서벽 중간만이 희미하게 확인될 뿐이다. 1942년 사이토 진베에(齋藤甚兵衛)가 이곳을 조사하였을 때의 기록을 보면, 북벽의 극히 일부와 서벽 전체, 남벽 일부만이 남아 있었다. 서벽은 길이가 360m 이고 북벽은 서벽 북쪽에 약간만 남아 있었다. 남벽은 잔존 길이가 840m이며 남벽 전체의 추정 길이는 1,20여m가 되었다.

성 안에는 도로와 방(坊)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남벽에서 180m 정도 떨어진 곳에는 석루(石壘)로 둘러싸인 내성 자리가 있다. 내성의 크기는 동서 140m, 남북 120m로 방형에 가깝다. 내성의 서벽 중간에는 문지로 보이는 절단부가 있었다. 또 내성 가운데에는 궁전지로 보이는 토단(土壇)들이 서북쪽 귀퉁이에 치우쳐 남아 있었다. 이 중 한 곳은 주춧돌 배치로 보아 동서 5간(間), 남북 3간(間)의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그 외에 내성 밖에도 토단들이 있고 이 중에는 주춧돌이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이 곳으로부터는 발해시기의 기와와 점토제 불상 머리 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한편 주목할 만한 것은 1971년 성 안에서 발해시기의 고분이 발견된 점이다. 이 고분은 성 안의 가운데에서 조금 서남쪽으로 치우친 지점에서 발견되었는데, 장방형의 전축분으로 2기의 고분이 동서로 나란히 붙어있었고 무덤 위에는 주춧돌이 있었다. 이미 파괴된 상태였지만 이곳으로부터는 발해시기의 화려한 금제 장식품들이 쏟아져 나왔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이곳이 발해시대에 능원지(陵園地)로 사용되지 않았나 하는 견해도 제기되고 있다.9) 그러나 이곳에 발해 초기에 성으로 사용하다가 뒤에 폐기하여 당시에 이미 무덤이 쓰여졌던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사이토 진베에(齋藤甚兵衛)는 이곳이 구국지(舊國址)이고 서고성은 뒤에 건설한 중경지(中京址)라고 추정한 바 있다.100)

 
주석

99) 李健才·陳相偉, 〈渤海的中京和朝貢道〉《北方論叢》1982―1 p. 74
100) 齋藤甚兵衛, 《半拉城―渤海の遺蹟調査―》琿春縣公署, 1942, p.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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