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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시대, 리더십을 말하다> 박종평 이순신 이야기26
장자의 목계를 배우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ilyo@ilyoseoul.co.kr  [1040호] 승인 2014.04.07  14:46:35


요즘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는 중국 최고 지도자 시진핑(習近平)의 모습은 전례없는 중국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치 중국 최전성기의 황제였던, 당태종이나 청나라의 강희제를 보는 듯하다. 그이 이미지와 행동 모두에서 당당함과 겸손함이라는 양날의 칼이 보인다. 그의 좌우명은 “스스로 당당하되 자만하지 않고, 드높게 일을 추진하되 떠벌리지 않고, 실질에 힘쓰되 조급해하지 않는다(自豪不自滿 昻揚不張昻 務實不浮躁)”라고 한다. 그 좌우명에 맞게 중국을 새로운 제국으로 창조하고 있다. 《포브스》에서 경계한 실패한 리더들의 습관과 완전히 정반대이다.

현재 중국에 시핀핑이 있다면, 우리는 비록 역사속의 인물이지만 이순신이 있다. 시진핑도 온갖 고난을 겪으며 현재의 자리에 올랐지만, 이순신과는 그 격이 한 수준 아래라고 평가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순신은 시진핑 처럼 평상시는 물론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조차 당당함과 겸손함을 갖췄고, 게다가 신중함까지 겸비한 인물이다. 시진핑이 묵직하게 태산을 오르려는 사람이었다면, 이순신은 태산 그 자체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0일이 채 안된 1592년 5월 4일, 이순신과 그의 부하장수와 군사들은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으로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 첫 출전을 했다. 이순신도 북방에서 여진족과 전투를 했었지만, 일본군은 처음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하고, 기괴한 가면을 쓴 상태에서 조선군에는 익숙하지 않았던 칼을 무섭게 휘두르는 일본군에 대한 소문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일본군이 가는 곳은 순식간에 짓밟혔고 그 기세도 태풍이 몰아치듯 했기에 조선군과 백성들은 일본군이 온다는 소문이라도 들으면 모두 도망치기 바빴다. 

출전 후 이순신은 경상도 바다를 알고 있는 경상 우수사 원균과 만나, “적선의 많고 적음, 현재 정박하고 있는 곳, 일본군과의 전투 방법 등을 상세히 상의”했다. 그런 뒤 전라도와 경상도의 장수들을 불러 모아 작전 계획과 군율을 몇 차례 분명히 약속했다. 

7일 옥포 앞바다에 도착하자 운명의 순간이 왔다. 일본군의 동향을 확인하기 위해 내보냈던 우척후장 사도 첨사 김완과 여도 권관 김인영이 신기전(神機箭)을 쏘아 올렸기 때문이다.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안 부하 장수들과 군사들은 순간 공포에 질렸다. 그 때 이순신은 엄하게 명령했다.

▲ 가볍게 움직이지 말고 태산처럼 신중해라(勿令妄動, 靜重如山). (<玉浦破倭兵狀>)

그리고는 작전 계획에 따라 대열을 지어 일제히 적선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날 전투 상황을 기록한 같은 장계에는 다음과 같은 모습이 나온다.

▲ 일본 전선 30여척이 옥포 선창에 나눠 정박하고 있었는데, 큰 배는 사방에 온갖 무늬를 그린 휘장을 둘렀고, 그 휘장 밖에는 대나무 장대를 꽂았으며, 붉거나 흰색의 작은 깃발을 어지러이 매달아 놓았다. 깃발의 모양은 여러 가지였는데, 무늬 새겨진 비단으로 만들었으며, 바람 따라 펄럭였기에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적의 무리들은 포구에 들어가 분탕질하고 있어 연기가 산을 가리고 있었다. 우리의 전선을 보고는 당황해 제 각기 바쁘게 배를 타고 아우성치며 기슭으로 급하게 배를 몰았다.

이순신은 스스로가 태산이 되어 일본군의 모습을 자세히 관찰한 내용이다. 그런 뒤 일본군을 “동서로 포위하고 바람과 우뢰같이 총통과 활을 쏘게 해(東西衝抱, 放砲射矢, 急如風雷)” 전멸시켰다.

위기 때 빛나는 리더십

그리고는 첫 번째 승리를 거두었다. 이순신은 모두가 두려움에 질려 당황할 때조차, 냉정한 관찰자의 눈으로 지켜보며 행동했다. 심지어 일본군이 불시에 기습해왔을 때도 그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 적선 8척이 뜻하지 않게 돌입했다. 우리의 전선들이 겁을 먹고 후퇴하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호각을 불고 깃발을 휘두르며 군사들을 지휘해 일본군을 추격하게 했다. 
(《난중일기》, 1597년 8월 28일.)

태산 이순신은 부하들의 동요를 막으며 정확한 판단을 해 위기 상황을 극복했고, 심지어 전투 중에 적선에 갖힌 우리나라 사람들까지 구출할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이순신이 강조한 태산처럼 흔들림 없는 자세는 《손자병법》을 비롯한 모든 병법서에서 강조하는 장수의 기본적 자질이다. 때문에 《삼략(三略)》에서는 장수는 “무려(無慮)·무용(無勇)·망동(妄動)·(遷怒)”라는 네 가지를 경계해야 한다고 꼽았다. 장수는 생각이 깊어 가볍게 판단하지 않아야 하고, 용기가 있어 늘 앞장서고, 신중하게 행동해 부하들이 장수를 믿게 만들어야 하고, 쉽게 분노하지 않아 처벌위주로 운영하지 말라는 것이다.

《장자(莊子)》에는 ‘나무 같은 닭(木鷄, 목계)’

《장자(莊子)》에는 ‘나무 같은 닭(木鷄, 목계)’ 이야기가 있다.
 
싸움닭을 잘 키우는 기성자(紀·子)가 왕의 부탁으로 싸움닭을 키웠다. 열흘이 지나자 궁금했던 왕이 물었다. “이제 싸울 수 있겠는가?” 기성자가 말했다. “아직 멀었습니다. 한창 허세를 부리고 교만해 제가 잘난 줄만 알고 있습니다.”
 
다시 열흘이 지난 뒤에도 “멀었습니다. 아직도 다른 닭의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그림자만 보면 당장 덤벼들 것같다”라고 말했다.

답답했던 왕이 또 열흘이 지나자 물자, “아직도 멀었습니다. 다른 닭을 보면 노려보면서 성난 듯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고 대답했다.

또 열흘이 지난 뒤 왕이 묻자, 기성자는 말했다.

“거의 다 되었습니다. 싸움을 거는 닭이 아무리 소리를 질러대도 조금도 꿈쩍하지 않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나무로 만든 닭(木鷄)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만하면 이제 그 어떤 닭라도 무서워 도망칠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보면, 목계가 되는 과정은 세 단계이다. 첫 번째는 교만한 자신을 아는 단계, 두 번째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을 버리는 단계, 세 번째는 과도한 욕심을 버리는 단계이다. 결국 ‘자신을 아는 것’이 시작과 끝이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매일 매일해야 하는 과정이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가 같다면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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