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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발해 건국과정과 천문령 전투
'망국의 恨'을 품고 대조영 '해동성국'을 품다
2011. 11. 24 00:00 입력 | 2013. 01. 05 07:25 수정

당의 국제포로수용소 영주

발해는 698년 대조영을 주축으로 동모산에서 진국(震國, 또는 振國)을 선포하며 건국하였다. 발해 건국의 시초가 되었던 사건은 영주에서 일어난 거란인 추장 이진충의 난이다. 당시 영주는 당의 국제포로수용소와 같은 형상을 이루며 거란족과 말갈족, 그리고 고구려 유민들이 혼재하는 상황이었다. 영주 지역은 대릉하 상류지역에 해당하며, 5세기 이래로 중국의 동북진출을 위한 최전방 기지이자 관문에 해당했다. 따라서 동북아시아 여러 종족들의 교역 중심지이기도 했다. 7세기 이후에는 당 제국에 흡수된 종족들로 구성된 기미주가 다수 이 지역에 설치되었고, 고구려 멸망 후 많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이 이 지역에 옮겨져 생활하고 있었다. 걸걸중상과 대조영 부자도 이때 영주에 거주하였는데, 대조영의 출자를 대부분의 사료들이 ‘고구려의 별종’이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고구려 장수 출신이었다가 고구려 멸망 후 영주로 강제 이주해 온 것으로 판단된다.

이진충의 난과 대조영 집단의 東走

696년 5월 거란의 추장이면서 송막도독인 이진충과 귀성주자사 손만영은 돌궐의 후원을 받으며 영주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이진충은 스스로 최고의 왕(無上可汗)이라 칭하며 손만영을 대장으로 삼아 영주도독 조(문)홰를 죽이고 영주지역을 점령하였다. 표면적인 이유는 흉년이 들어 거란족이 굶주리고 있음에도 조(문)홰가 진휼을 하지 않고 오히려 거란족 추장들을 노복처럼 멸시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근원적인 배경은 687년 돌궐의 부흥에 따라 당의 북방 기미체제가 무너져 가는 상황이었고, 당 내부에서도 고종 사후 측천무후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하여 내치에 비중을 두는 상황에 직면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은 대외정책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진충의 난으로 영주 일대는 큰 혼란에 빠졌고, 일부 이종족 집단들은 당의 지배에서 벗어나 이탈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황한 당 조정은 이진충의 이름을 ‘모조리 멸한다’는 이진멸(李盡滅)로, 손만영을 ‘만번이나 목을 벤다’는 뜻을 따서 손만참(孫萬斬)이라 바꿔 부르게 하면서 많은 토벌군을 보냈지만 패전을 거듭하였다.

따라서 당은 영주 지역에 설치하였던 기미주들을 대거 장성 이남지역으로 옮겨 이에 대처하였다. 이때 대조영 집단과 말갈족의 걸사비우 집단은 동주(東走)를 선택하였다. 당시 거란은 남으로 하북일대로 진격하는 등 당에 대한 공격에 주력하였고, 당은 이를 저지하기에 급급하여 이들 집단의 동주는 상대적으로 용이하였다.

한편 이진충이 이끈 거란군은 신속히 북중국의 하북지역으로 남진하였다. 그해 9월 이진충이 병사하자 손만영이 무리를 이끌고 당군을 격파하며 크게 세력을 떨쳤다. 수세에 몰린 당은 돌궐에 물자를 제공하며 서로 밀약을 맺어 거란을 양면에서 협공하는 이른바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책을 실시하였다. 돌궐의 추장 묵철은 이에 응하여 거란의 배후를 기습하였고, 이에 정세는 크게 역전되었다. 거란은 본거지를 돌궐에게 유린당하였고 거란의 동맹군이었던 해족은 돌궐에 투항하기까지 하였다. 당군의 방어망이 강화되자 거란군은 궁지에 몰리고 마침내 당군에 궤멸되어 697년 6월 난은 마침내 진압되었다. 이 무렵 거란 장수였던 이해고(李楷固), 낙무정(駱武整) 등은 당에 항복하였다. 

당은 서부전선의 거란에 대한 진압을 이루게 되자 영주지방을 벗어나 동쪽으로 달아나 형세를 관망하던 대조영 집단과 걸사비우 집단에 대한 회유의 손길을 뻗쳤다. 즉 동부전선을 회유책으로 무마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대조영의 아버지라 일컫는 걸걸중상에게는 진국공(震國公)을, 걸사비우에게는 허국공(許國公)의 작위를 주면서, 다시 이들 집단을 당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려 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이를 거부하자 당은 항복한 거란 출신의 이해고를 장수로 임명하여 토벌군을 보내어 추격해왔다. 

당의 토벌군 지휘관 이해고

원래 이해고는 거란의 이진충과 손만영 휘하의 장수로 당과의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뛰어난 무장이었다. 특히 696년 8월 황장곡전투에서 비색(긴 밧줄을 던져 적을 올가미처럼 잡는 무기)으로 장현우·마인절의 두 적장을 생포하고, 당군을 거의 섬멸하여 큰 공을 세웠다. 당의 기록에는 비색과 기사(말타고 활쏘기), 무삭(긴 창을 휘둘러 적을 찌르는 무예)의 특출한 명장으로 매 전투에서 적들을 붕괴시켰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은 거란인으로서 동북방의 지리와 고구려인, 말갈인 부대들의 정황을 잘 안다는 명분으로 그를 토벌군의 총지휘관으로 삼은 것이다.

이 무렵 걸걸중상이 병사하고 대조영이 그 집단의 수장이 되었다. 이해고가 이끈 당군의 공격에 맞서 말갈족의 걸사비우 집단이 먼저 교전을 벌였으나 패배하여 걸사비우가 전사하였다. 대조영은 당군의 예봉을 피하여 더욱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혼하를 건너 천문령에 이르렀고, 걸사비우 집단의 잔여세력들을 규합하면서 전열을 가다듬고 있었다.

발해 건국의 분수령, 천문령 전투

이해고의 당군은 말갈의 군대를 격파한 것을 기세로 삼아 동쪽으로 대조영 집단을 계속 추격하여 천문령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조영 집단은 천문령을 넘어서 미리 매복·유인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천문령은 북류 송화강의 지류인 휘발하와 혼하의 분수령 지대인 합달령으로 추정되는 곳으로, 뒷날 발해의 교통로인 영주도가 거쳐가는 곳이기도 하다.

천문령 일대는 백두산 아래의 밀림지대이면서 험준한 협곡의 지세를 갖춘 매복·기습작전에 유리한 지역이었다. 이해고의 당군은 말갈족의 걸사비우 집단을 물리치면서 승승장구한 기세를 몰아 추격에 정신이 없었다. 천문령을 넘어 대조영 집단을 일망타진할 목적으로 속전속결의 전법을 구사한 것이다. 하지만 대조영 집단의 매복·기습작전으로 이해고군은 전멸하였고, 이해고 또한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치기에 바빴다. 이와 관련하여 대조영에 대한 기록에는 그가 매우 날래고 용감하며 용병을 잘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전쟁기념관서 소장하고 있는 천문령 전투 상상도. 

동모산에서의 건국

천문령 전투의 승리는 발해 건국의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대조영 집단은 휘하의 군사를 이끌고 백두산 밀림지대를 벗어나 송화강 상류의 휘발하를 건너 부이령산맥의 동쪽기슭 동모산에서 자리를 잡고 정착하였다. 동모산은 서쪽으로는 백두산의 밀림지대가 깊게 펼쳐져 있었고, 서북쪽은 거란과 돌궐이 차지하여 중간 방벽 역할이 되었다. 남쪽으로도 긴 산줄기가 뻗쳐 있어서 당군이 우회하여 진입할 수가 없었고, 신라군의 공격도 차단될 수 있었다. 따라서 천험의 요새인 동모산 기슭에 자리잡은 대조영 집단을 당은 더 이상 토벌할 수가 없었다. 698년 드디어 대조영은 동모산을 중심으로 성(성산자산성)을 쌓고 그 기슭에 궁궐을 지어 진국의 성립을 선포하였다.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만에 고구려의 뒤를 잇는 국가가 탄생한 것이다.


발해의 건국지 동모산 전경.

이렇듯 당시 복잡한 동북아 정세의 흐름 속에서 발해는 건국되었다. 특히 대조영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여 말갈세력과 고구려유민들을 빠르게 규합할 수 있었고, 효율적인 전술·전략을 구사하여 천문령전투를 승리로 이끌어 내 발해 건국의 기반을 마련하였다. 

<강성봉 성균관대 사학과 박사(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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