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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술 雞鳴酒일까, 曲阿酒일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고구려의 술이라고 이름 한 것 가운데 계명주와 곡아주가 있다. 그런데 고구려 술이라고 말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 

먼저 계명주 부터 살펴보자. 
 
계명주는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기능보유자가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에 사는 최옥근이란 분이다. 그녀는 시어머니 박채형씨에게 술 빚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박채형씨는 평남 강동군 출신으로, 본래 술 이름은 '엿탁주'였다고 한다. 그런데 남편 장기항씨가 이를 문화재로 신청했다. 
 
엿탁주는 달착지근하며, 서민이 마셨던 속성주(速成酒)로, 2주일이면 만들어진다. 재료는 북쪽 지방에서 많이 나는 붉은 수수다. 술을 빚는 방법은 누룩을 조청에 버무려서 삼베로 싸 6일 가량 항아리에 보관한다. 물에 불린 수수를 맷돌에 갈아 엿기름과 물과 함께 가마솥에 넣고 잘 삭을 때까지 은근하게 끓인다. 끓인 죽은 삼베 자루에 넣고 눌러 짜서 엿밥을 걸러낸 뒤 다시 끓인다. 죽을 다시 식혀 술독에 담은 뒤 조청에 버무린 누룩과 솔잎을 넣고 고루 섞는다. 섭씨 25∼28도에서 8일 정도 발효시킨 뒤 걸러낸다. 그러면 붉은 빛이 도는 엿탁주가 만들어진다. 지금은 옥수수와 수수를 8대 2로 섞어 쓰기 때문에 노란 옥수수 빛이 돈다. 

그런데 고대 음식문화를 연구한 한양대 식품영양학과 이성우 교수가 이 술을 문화재로 지정여부를 평가하다가, 조청과 엿기름이 들어간다는 말을 듣고 이교수가 이렇게 추론했다. 
 
“엿탁주가 고려도경(麗圖經) 26권 연례(燕禮飮)에 “고려의 잔치 술은 맛이 달고 색이 짙고 취하게 하지 않는다”(酒味甘監色重不能醉)라는 기록과 일맥상통한다. 

또 제민요술(濟民要術)에 거론된 ‘하계명주’(夏鷄鳴酒)나, 허준의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오는 계명주가 바로 엿탁주일 것이라고 추정했다. 엿기름을 사용한 속성주라는 동질성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성우 교수는 작고하여, 더 이상 그에게 이런 추론에 대해 따질 수는 없게 되었다. 어쨌든 이교수 때문에 엿탁주가 계명주로 다시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그후 계명주는 1987년 민속주로 지정되었고, 정부의 민속주 개발 정책과 맞물린 탓인지, 이제는 작은 공장에서 생산되어, 수출까지 되고 있다. 

자. 그런데 과연 엿탁주가 계명주 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라고 하겠다. 

계명주에 대한 제민요술(齊民要術)7권 제 1편 술 항목의 원래 표현을 보자. 
作夏雞鳴酒法 秫米二升煑作糜麴二斤擣合米和令調以水五斗漬之封頭今日作明旦雞鳴便熟 
여름에 계명주를 만드는 법. 차조 2두를 끓여 죽을 만든 다음 누룩 2근을 빻아 쌀과 고르게 섞는다. 이것을 물 5두에 담근 다음 술독을 봉한다. 오늘 만들면 내일 아침 닭이 울때 익는다. 

제민요술은 6세기에 만들어진 책으로 북중국의 농업기술 등을 연구하는 가장 중요한 농서로, 고구려의 경제생활을 알 때에도 매우 필요한 책이다. 

그런데 계명주는 단 하루만에 만들어진다. 명나라 사람 송후(宋詡)가 쓴 죽서산방(竹嶼山房) 권 16에도 게명주가 나오는데, 겨울에는 5일, 봄에는 3일, 여름에는 2일이면 숙성하는 술로 나온다. 이 술은 고구려와 관련이 없다. 이것을 엿탁주라고 한 이성우 교수의 독자적 판단일 뿐이다. 엿탁주와 고려도경의 술을 연관시키는 것도 무리한 추정이려니와, 고려도경의 술을 계명주라고 보는 것도 무리다. 계명주가 고려도경의 말처럼 취하게 하지 않는다는 것도 기로도 없다. 

또한 계명주는 아주 빠르게 숙성한다. 하지만 엿탁주는 적어도 8일이 걸리며, 그 재료도 옥수수와 수수 등 잡곡을 사용한다고 한다. 하지만 고구려는 옥수수를 먹지 않았다. 현재 엿탁주는 향과 미주를 만들기 위해 솔잎을 더 넣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과거 기록과는 다른 점이다. 

그럼 고구려의 술 기록은 없는가. 있다. 바로 곡아주다. 
송나라 악사(樂史) 라는 사람이 편찬한 태평환우기(太平寰宇記) 권 77을 보자. 
高驪山在縣西南七十里 梁武帝輿駕東行記云 自覆船山 酒甖山南 次高驪山傳云 昔高驪國女來此東海神 棄船 致酒醴聘之女不肯 海神撥船覆 酒流入曲阿湖 故曲阿酒美也 

고려국 여인이 와서 곡아주라는 술이 유래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게다가 시점도 양 무제(501-549)시대이다. 태평환우기는 송나라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백과사전류(유서 라고 한다.) 책이다. 곡아주는 이미 당나라 단성식(段成式)이 쓴 유양잡조(酉陽雜俎) 권 7, 주식(酒食)에도 등장하는 술이다. 고구려의 술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 

그런데 다만 곡아주는 그 만드는 법에 대해서 자세한 기록을 찾을 수가 없다. 현재 곡아주라고 생산되는 제품이 과연 고구려의 것 그대로 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고구려가 술을 잘 빚는 나라인 것은 많은 기록에서 보인다. 또 주통촌 여인과 같이 술 빚는 마을에서 집단적으로 술을 생산했음도 기록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나는 모르겠다. 앞으로 더 자료를 뒤져야 하겠지만, 곡아주를 만드는 법을 제대로 한번 찾아야 할 것이다. 또 계명주가 고구려의 술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는 만큼, 무리하게 엿탁주를 계명주라고 부르는 것도 글쎄.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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