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토 (淵淨土)
집필자 : 노태돈
 
삼국시대 고구려 연개소문의 동생인 귀족.
 
 
개설
 
연개소문(淵蓋蘇文)의 동생이다. 665년(보장왕 24)연개소문이 죽은 뒤, 곧 이어 그의 아들들간에 권력다툼이 벌어져 맏아들이었던 남생(男生)이 실각하여 국내성(國內城)으로 달아났다. 국내성에서 자리잡은 남생은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고, 당나라에 그의 아들인 헌성(獻誠)을 보내어 투항하였다.
 
이렇듯 집권귀족들간에 내분이 벌어지고, 그 틈을 탄 당나라가 대군을 보내어 침공하니 고구려가 멸망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연정토는 고구려 남부의 12성 700호의 주민 3,543명을 들어 신라에 항복하였다. 12성 중 8성은 성과 주민이 온전한 상태였으므로, 신라 조정은 군대를 보내어 진수(鎭守)하였다.
 
연정토와 그의 막료 24명에게는 물자와 주택을 주어 수도와 지방에 거주하게 하였다. 667년 신라 조정은 연정토와 원기(元器)를 당나라에 파견하였다. 아마도 최종적인 고구려 공략전과 연관된 임무를 부여하여 당나라측과 협의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원기는 돌아왔으나 연정토는 그대로 당나라에 머물러 귀국하지 않았다. 연정토의 아들 안승(安勝)은 670년 고구려 유민집단을 이끌며 금마저(金馬渚)에 자리하였는데, 문무왕이 그를 고구려왕에 책봉한 데 이어 보덕국왕(報德國王)으로 책봉하였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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