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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저성
[고구려사 명장면 121] 무너지는 고구려 (2) 압록 이북 방어망이 뚫리다. - 매경
④ 당군이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 3성을 함락시키고 천남생 군대와 합류하였다.
기사 ④는 신성을 함락시킨 당군이 소자하 유역의 주요 거점인 남소성, 목저성, 창암성[오녀산성]을 차례로 장악하고, 국내성에 머물던 남생과 합류하였음을 보여준다. 항복한 남생과 국내성 세력을 접수하려는 당군의 군사행동은 666년 9월부터 시작되어 이때에 비로소 완결되었으니 대략 1년여가 넘게 걸린 셈이다. 아마도 소자하 유역을 장악해서 국내성까지 진군하는 당군을 이끈 인물이 글필하력으로 추정된다.
목저성(木底城) - 나무위키
고구려의 성채 중 하나.
위치는 현재의 중국 랴오닝성(요령성) 무순시 신빈만족자치현(新賓滿族自治縣) 목기진(木奇鎭) 일대로 추정된다.
2. 역사
고구려 서북쪽의 신성에서 수도 국내성을 잇는 길목에 위치하여 중요한 요충지로 주목받았다.
4세기 고국원왕 시절 전연의 모용황이 목저성에서 고구려군과 전투 후 승리하여 곧바로 국내성으로 진격해 함락시켰다는 기록이 있다.
광개토대왕 시절에는 후연의 모용희가 침략하자 요동성과 목저성에서 후연군을 격퇴시킨 뒤 요동을 점령했다.
발해 2) 국가체제의 정비 - 우리역사넷
우리역사넷 > 신편 한국사 > 고대 > 10권 발해 > Ⅰ. 발해의 성립과 발전 > 2. 발해의 발전
한편 발해는 758년과 759년에 楊承慶과 高南申을 각각 일본에 사신으로 파견하였는데, 그 때 양인의 관직이 행목저주자사와 현도주자사였다. 목저주와 현도주는 각각 혼하와 소자하(蘇子河) 유역에 있어 요동평야로 나아가는 발해의 서남쪽 관문에 해당한다. 이 지역을 담당하는 관리를 파견한 것은 안녹산의 난에 대한 정보에 밝았던 이들을 보내어 난의 추이를 일본에 전하여 일본측의 반응을 탐색하고, 난의 여파가 밀려올 때를 대비한 대책 마련에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소식에 접한 일본 조정은 난의 여파가 미칠 만약의 사태에 대한 대책 마련에 부심하였다.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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