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의원과 정수장학회를 말하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내 재산은 가벼워도 남의 재산은 무거워"
2011-12-05 10:23CBS 변상욱 대기자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 박정희 장군이 부일장학회를 접수한 까닭은?
박정희 대통령은 왜 부산일보, 부산문화방송, 한국문화방송(서울 MBC), 그리고 부일장학회에 집착했을까?
부일장학회 김지태 회장은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자금 청탁을 거절하고 이승만 3선 독재 반대운동에 나셨던 인물이다. 그래서 4.19 혁명 때 부산일보, 부산MBC는 독재와 부정선거를 강력히 비판하며 부산경남 지역 4.19 민주화 시위를 확대시키는 역할을 했다.
그 후 박정희 전 대통령도 5.16을 모의하면서 쿠데타 자금 5백만 환을 요구했으나 부일장학회 김 회장은 이것도 거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회의 의장은 정권 장악 후 괘씸죄에 반독재기질마저 뚜렷하고 정치·재계·언론을 넘나드는 김 회장을 속히 제압하고자 했음을 쉽게 추정할 수 있다.
박근혜 의원은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을 앞둔 2005년 정수장학회 이사장직을 내놨다. 연봉 2억5천만 원 자리인데 대선 출마를 위해 구설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내놨다. 그래도 박근혜 의원이 실권을 쥐고 있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청와대에서 박근혜 의원을 보좌하던 최필립 전 리비아 대사가 이사장으로 있다.
박 전 대통령 동서인 조태호씨와 딸인 박근혜 전 대표가 각각 5·8대 이사장을 지냈고, 이후락(83) 전 중앙정보부장, 박준규 전 부산일보 사장, 진혜숙 전 청와대 총무비서 등 박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이사를 지냈고 아직도 박근혜 의원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이 이사로 있다.
박근혜 의원은 아버지의 측근들이자 자기의 최측근들이 지배하는 정수장학회가 있는 한 MBC문화방송과 부산MBC, 부산일보에까지 강한 영향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MBC가 해마다 20억 원의 장학금을 정수장학회에 내놓는 것이 그 반증이다.
◇ 박근혜 의원의 꼼수인가, 뚝심인가?
죄수복 입고 두 손에 수갑 차고 쿠데타 핵심세력 앞에서 위협받던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집에 있던 인감도장을 꺼내들고 감옥에 끌려가 '재산 포기하고 어버지, 어머니, 회사 임원들 목숨을 살려야 할 것 아니겠냐'고 울먹이며 호소하던 어린 아들(김영구 전 조선견직 회장)은 이제 칠순이다. 빼앗긴 사람, 뺏은 사람, 협박 현장의 목격자가 모두 세상을 뜰 때까지 버티는 것도 방법은 방법일까? 정말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박근혜 의원의 대답은 뻔하다. '명망 있는 분들이 이사로 계시고 이사회가 관장하는 공익재단이고 나는 이사장직도 내놨는데 내가 뭘 더 어쩌란 말이냐?' 과연 안 내놓고 버틸 수 있을까? 2007년 6월 29일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홍준표 의원은 박근혜 의원에게 이렇게 포문을 연다.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문제는 사실상 박정희 대통령 사후 꾸준히 제기된 문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대통령을 하려면 이런 문제를 전부 털고 가족들을 설득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고 말끔히 하고 나서 대통령에 도전하는 것이 옳다. 그 운영권을 가족이나 친지 또는 주변 사람들이 맡고 있는 것이 많은데 국가에 헌납하는 절차를 진행하면 될 것이고 공익법인 형태로 남아 있다고 해도 사실상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헌납하는 것이 옳다."
원주인과 국가,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미 수십년 째 계속되고 있다. 1988년 10월에는 부산일보와 부일장학회 전 임원들이 소유권을 원상회복 시켜야 한다고 국회 청원을 냈다. 이 청원을 국회에 소개한 의원명단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부산지역 국회의원 13명이 들어 있다. 그런데 왜 흐지부지됐을까?
노무현 전 대통령은 당시 초선의원으로서 5공 청문회, 광주 청문회로 바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당 총재로 노태우 대통령, 김종필 총재와 3당 합당을 모의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3당 합당으로 여소야대 정치권이 뒤집히면서 이 청원은 주목받지 못하고 묻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중학생 시절 부일장학회 장학금으로 중학교를 무사히 마친 인연도 있다. 그래서 후에 대통령 시절, '정수장학회는 장물'이라고 일갈하며 대통령직속 위원회를 통해 진상을 조사토록 했다.
<국정원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결과를 종합해보면 ▲박정희 국가 재건 최고회의 의장의 지시에 의해 시작되었다. ▲기부승낙서 서명은 구금상태에서 강압에 의해 이뤄졌다. ▲구금상태가 아닌 석방되어 자유로운 상태에서 서명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변조한 흔적이 역력하다. ▲구속 수감후 석방을 빌미로 한 재산포기 종용이 있었다. ▲중앙정보부와 국가재건 최고회의를 비롯한 국가 주요기관의 조직적이고 치밀한 계획 아래 이뤄졌다.
이러한 결론에 따라 두 위원회가 내린 권고사항은 이렇다.
<땅은 부일장학회에 반환하고 반환이 어렵다면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 부일장학회가 해체되고 없으니 공익재단을 설립해 거기에 넘겨주라. 언론사 주식도 돌려주라. 정수장학회가 끝내 돌려주지 않는다면 국가 공권력을 동원해 빼앗은 것이므로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
국가배상은 국가가 먼저 배상하고 정수장학회로부터 구상권으로 받아내라는 뜻이 된다.
◇ "내 재산은 가볍고 남의 재산은 무거워"
박근혜 의원은 이 결정에 대해 "어거지이자 흠집 내기 용 정치공세일 뿐"이라고 받아쳤다. 박근혜 의원이 간과하고 있는데 이것은 '흠집 내기'가 아니라 심각하고 진지한 '결격 사유'일 수 있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시라. 대통령 직속의 국가위원회들이 사유재산을 강탈해 만든 재단이니 원 주인에게 돌려줘야 마땅하다고 결정했고, 박정희 대통령마저도 '그거 돌려주긴 돌려줘야 할 텐데...'라고 종종 말했다고들 전한다. 그런데 딸이 대통령이 되어 아버지가 대통령 시절 강탈한 재산을 움켜쥐고 안 내놓는다면 대통령으로서 위선이고 아버지보다 더 독한 딸로 비난받을 수 있다.
그건 대통령 된 다음의 문제고 지금은 아니지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더 무서운 이야기이다. 대통령이 되면 돌려주고 못 되면 안 돌려주겠단 말인가?
빠져 나가는 것과 털고 가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모든 국민이 알고 있고 지켜보고 있다. 방법이 마땅치 않으면 훈수를 내놓겠다. 공익장학재단의 사업과 관련되어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시 교육청에 특별감사를 요청하라. 장학금과 운영경비 내역, 그 외 사업과 지출내역을 샅샅이 밝혀 달라고 하라. 그리고 드러난 비위나 부실에 대해 책임을 물어 서울 중부교육청에 임원취임승인취소신청서를 제출하라. 교육청이 임원들을 모두 해임하고 공익이사진을 새로 임명한 뒤 공익이사진이 국민의 뜻을 물어 재단을 처리하면 된다.
여러 일로 머리도 어지러운데 지금 감사 조치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만 하면 된다. 이사장 직분을 내놔서 그리하라고 명령하는 게 어렵다면 '그리 하는 것이 옳다'고 선언만 해도 된다. 어차피 지금 교과부 장관이나 서울 부교육감이나 확실하게 처리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으니 다음 정권에 하는 걸로 하고 박근혜 의원은 국민 앞에 말 한마디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알아서 처리 될 것이다.
왜 자꾸 정수장학회를 물고 늘어지고 무거운 짐을 만드냐고 원망할지 모르겠지만 답은 간단하다. <자신의 재산은 무겁지 않다, 무겁다면 그것은 남의 것이기 때문이다.>
정수장학회 뿐이 아니다. 박정희 대통령 일가의 의혹 3대 재단 - ▲정수장학회 ▲육영재단 ▲영남대. 한나라당 내 후보 경선 과정부터 시리즈로 터져 나올 것이 뻔하다. 왜 무거운 남의 재산을 짊어지고 선거 전 험한 길을 가려 하는가, 더구나 그 재산은 사실상 지역사회의 재산이어서 더욱 무겁지 않은가 말이다. 부디 영남대는 대구·경산 시민에게, 부산일보는 부산 시민에게, 육영재단은 서울 시민에게 돌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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