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꼼수' 김어준, 정봉주-주진우 덕에 살았다
[지역투어-서울·경기·인천①] '나는 꼼수다'가 한류스타-운동권을 압도한 힘
11.12.09 19:54 ㅣ최종 업데이트 11.12.09 19:54  이종필 (ststnight)

지난 6월부터 2011년 <오마이뉴스> 지역투어 '시민기자 1박2일'이 시작됐습니다. 이번 투어에서는 기존 '찾아가는 편집국', '기사 합평회' 등에 더해 '시민-상근 공동 지역뉴스 파노라마' 기획도 펼쳐집니다. 이 기획을 통해 지역 문화와 맛집, 그리고 '핫 이슈'까지 시민기자와 상근기자가 지역의 희로애락을 자세히 보여드립니다. 어느덧 마지막, 이번엔 서울·경기·인천입니다.  <편집자말>

▲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인 김용민 시사평론가,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열린 한미FTA 반대 특별 야외공연에서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탈북자 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이 북한에 풍선으로 날려 보내는 물품 중에는 북한 돈, 대북전단과 함께 소형 라디오가 있다. 이 단체의 대표는 언론 인터뷰(2009년 10월10일 자)에서 "북한 주민들이 북한과 국제사회의 실상을 알 수 있도록 대북방송 청취용 라디오와 전단을 계속해서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얼마나 많은 북한 주민들이 실제로 이 단체가 풍선으로 날려 보낸 라디오를 통해 북한과 국제사회의 실상을 알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만약 북한 주민 한 명이라도 이 소형 라디오를 정말로 갖게 되었다면 그 주민은 지금까지 평생 한 번도 듣지 못한 이야기를 그 라디오를 통해 들었을 것이다.
 
2011년의 남한 주민에게는 스티브 잡스라는 세기의 천재가 남긴 신형 라디오가 날아들어 온 장안을 들쑤시고 다녔다. 이 라디오에서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딴지일보> 김어준 총수가 제작한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이다. 전 세계 누구나 보고 들을 수 있는 팟캐스트라는 형식의 인터넷 방송 순위에서 <나꼼수>라는 신형 인터넷 라디오 프로그램은 세계 순위 1위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방송 7개월을 넘긴 <나꼼수>는 전 사회적인 파장과 이슈를 몰고 다니며 지금도 거침없는 인기몰이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외면하던 기존 방송매체와 사람들도 이제는 너도나도 나꼼수를 거론하며 그 현상을 분석하고 한마디씩 평가한다. '꼼수'라는 단어 자체가 요즘 급속히 확산된 것만 봐도 <나꼼수>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MB가 키운 세계 1위 <나는 꼼수다>
 
<나꼼수> 방송에서 회자되는 책들은 모두 베스트셀러에 등극을 하다 보니 출판업계에서는 <나꼼수>가 출판시장을 왜곡한다며 아우성을 칠 정도이다. 그렇다면 <나꼼수>는 왜 이렇게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일까?
 
가장 큰 이유는 <나꼼수>가 우리 사회에서, 마치 폐쇄된 북한 사회에 날아 들어간 라디오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꼼수>는 국민들이 알고 싶은 내용, 즉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이야기를 큰 소리로 거리낌없이 말해준다.
 
불행하게도 MB 치하의 한국 사회에서는 언론의 자유가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이 점에 관한 한 남한과 북한은 큰 차이가 없는 듯하다. 대표적인 인터넷 포털은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이미 '평정' 당했고 대선캠프의 언론특보를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앉혔으며 멀쩡한 공영방송 사장이 법원의 중재판결을 따랐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쫓겨났다.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괴담 유포자로 구속되었고 이제는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SNS도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반면 친정부적인 보수언론은 종합편성채널이라는 엄청난 전리품을 챙겨 그 영향에 비해 부당하게 큰 권한과 혜택을 누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우리가 알고 싶고 궁금한 사건의 내막을 알 길이 없다.
 
이런 환경 속에서 몰랐던 내용, 알고 싶은 내용을 기대 이상으로, '한 발 더 나가서' 들려주는 라디오가 인기를 끄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아니, 그 많은 거대 언론사가 국민의 관심사를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오히려 대단히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정세는 총체적으로 국민의 생활 속에 녹아 있다. 비록 그 디테일을 자세하게 모른다 할지라도 현 정부 들어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국민들은 생활 속에서 직관적으로 알고 또 느끼고 있다. 하지만 개개인이 느끼는 막연한 자각은 정부와 주류 언론매체를 통해, 그리고 비판 언론인들에게 재갈을 물리는 협박에 의해 움츠러들 수밖에 없다. 급기야는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의심이 과연 올바른 의심인지를 의심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 <나꼼수> 여의도 공연 "이제 니들이 쫄 차례다"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한미FTA 반대 특별공연이 열린 가운데, 수많은 시민들이 광장을 가득 메운 채 공연을 즐기고 있다. ⓒ 유성호

<나꼼수>는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며, 우리들이 그렇게 직관적으로 느끼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그 때문에 청취자들은 <나꼼수>를 들으면서, 김어준의 "쫄지마 씨바" 한마디에 큰 위안과 힘을 얻는다.
 
획기적인 구전 스토리텔링
 
<나꼼수>를 좀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더욱 재미난 사실들을 알 수 있다. <나꼼수>의 이야기 구조는 철저히 상향식(이른바 bottom-up)이다. BBK나 저축은행, 청계재단, 내곡동 사건 등 가장 구체적인 사례의 온갖 디테일한 면을 세세하게 다루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보통 우리가 편안하고 재미있게 수다를 떨 때 이런 방식을 택한다. 문제는 우리 사회의 진보세력에게서 지금까지 들어왔던 이른바 '진보담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보담론은 하향식(top-down)이었다.
 
<나꼼수> 이전의 이른바 진보논객들에게는 언제나 자기들이 생각하는 관념의 왕국이 있었다. 현실은 단지 자신들이 가꾼 그 왕국의 정당함을 입증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따라서 현실 자체에 대한 구체적인 관찰과 분석은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었다. 북유럽식 복지정책을 잘 연구하면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것이라는 관념은 '반MB'라는 절박한 현실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아주 단적인 예를 들자면, 기존의 논객들은 언제나 무슨 무슨 ~이즘으로 자신의 논리를 이끌어 나간다. 진중권이 대뜸 <나꼼수>에게 '너절리즘'이라고 대꾸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념의 틀이 나쁜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현실과 끊임없이 교감하며 긴장감을 갖지 않을 때 비극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예전에 내가 학생 운동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의 하나가 "운동권은 항상 자신만의 결론을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에 토론 자체가 되지 않아. 그걸 나에게 강요하려고만 해"라는 말이었다. 지금의 진보세력에게도 이 말은 여전히 유효해 보인다.
 
진보세력 하면 식상한 하향식 논리가 자동적으로 떠오르던 사람들에게 <나꼼수>의 상향식 구전 스토리텔링은 획기적인 서사였다. 말하자면 진보진영의 담론이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문어체에서, 술자리 뒷담화나 미용실 수다마냥 익숙하고 재미있는 구어체로 대변신을 감행한 것이다. 진보담론도 발상을 뒤집으면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구나! MB와 보수세력에 실망하면서도 현존하는 진보세력에 못마땅했던 사람들은 <나꼼수>의 획기적인 시도에서 새로운 가능성과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데에는 현장의 디테일을 두루 섭렵한 정봉주와 주진우라는 걸출한 인물들의 역할이 컸다.
 
나는 <나꼼수>를 들으면서 어릴 적 시골집에서 화롯가에 앉아 할머니 할아버지가 들려주시는 옛날 이야기를 듣다가 잠들던 기억이 떠오르곤 했다. 화롯가에서 들었던 얘기들 중에는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도 있었고, 시골 동네분들 사는 이야기도 있었고, 또 집안과 가족의 내력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다. <나꼼수>는 아이폰이라는 21세기 화롯가에서 네 명의 재담꾼이 들려주는 겨울밤 이야기와도 같다.
 
역설적이게도 <나꼼수>를 이끌고 있는 김어준은 상대적으로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그렇지는 않다) 하향식 논리에 더 가까운 인물이다. <나꼼수>에서 그가 '전지적 가카 시점'에 입각하여 '소설'을 쓰는 주된 역할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닥치고 정치>에도 그의 이런 면이 묻어난다. 이 책에서도 드러나듯이 김어준은 인물의 캐릭터를 분석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부산 출신인 내가 경험적으로 돌이켜 보았을 때, 대체로 영남 출신은 사회현상을 바라볼 때 등장인물의 원초적인 피아식별로 환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즉 이편인가 저편인가가 중요할 뿐 어느 쪽이 옳은가 혹은 그런 현상이 일어나게 된 사회구조적인 원인이나 역사적 배경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은 상대적으로 가볍게 처리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한마디로 말해 조직폭력배의 논리와도 닮은 점이 있다. 힘과 주먹이 곧 법인 세계에서는 누가 옳고 그른가가 의미가 없다. 오직 우리 편인가 아닌가, 정글 속의 생존경쟁에서 누가 살아남았는가가 중요할 뿐이다.
 
그래서 박정희나 전두환이 옳은가 그른가보다도 이들의 쿠데타가 어떻게 성공했느냐에 관심이 더 많고 또 이들을 영웅시하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다. DJ가 당선되었을 때 "인자 갱상도 사람들은 다 쥑이삔다 카데" "부산 갱제 작살낼라꼬 일부러 삼성차 날려묵었다 아이가" 하는 우려와 걱정이 팽배했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영화 <친구>나 <넘버3>의 정서를 떠올리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 5일 오후(현지시각) 미국 순회공연을 위해 뉴욕을 방문한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이하 나꼼수) 출연진들이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대를 방문했다. 가운데 김어준 총수, 왼쪽 김용민PD. ⓒ 최경준

진해 출신인 김어준이 나만큼 오래 영남에서 살지는 않았겠지만 <닥치고 정치>를 읽으면서 나는 내게도 여전히 많이 남아 있는 그 영남 정서를 떠올렸다. 곽노현 교육감 사건 때 유난히 김어준이 "우리 편 곽노현"을 강조하고 나선 것도 이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다.
 
김어준은 인물에 대한 심도 깊은 통찰력과 더불어 자신의 하향식 성향을 최대한 억누르면서 그 단점을 보완해 줄, 즉 현장의 디테일에서 출발하는 상향식 스토리텔러인 정봉주와 주진우를 전면에 내세웠다. <나꼼수>가 빛이 나는 이유는 김어준의 동물적인 촉수가 정봉주나 주진우와 만났기 때문이다. 현장과 사건과 팩트에 대한 집착에 가까운 집요함은 <나꼼수>를 떠받치는 가장 중요한 추동력이다. 김어준은 이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여느 '좌파논객'들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편향성이 오히려 신뢰받는 MB시대의 역설
 
<나꼼수>는 역설로 가득 차 있다. 21세기 첨단의 영상미디어 시대에 구닥다리 라디오 방송이 세계 1위의 인기를 누리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가장 원시적인 구전의 형태가 가장 첨단적인 팟캐스트와 아이폰을 통해 유통된다는 점, 이것이 다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라는 SNS를 통해 확대 재생산된다는 점도 또한 역설적이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사회였다면 당연히 우리는 '동영상 나꼼수'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대놓고 노골적으로 스스로가 편파적이라고 하는데도 사람들은 <나꼼수>를 신뢰한다. MBN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나꼼수>의 신뢰도는 40%로, 이른바 조중동의 신뢰도 17.2%를 두 배 이상 압도적으로 앞섰다.
 
<나꼼수>의 편향성이 오히려 더 큰 신뢰를 받는 상황은 한국사회의 역설을 대변한다. 예컨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여론이 찬성 여론보다 2배나 많은 상황에서 수입 찬성 입장과 반대 입장을 일대일로 보도하는 것은 중립적인 보도인가? 민족정론지니 일등신문이니 하는 언론사들은 언제부터인가 이런 기계적인 중립성조차도 내팽개친 지 오래다. 사람들은 이미 <나꼼수>의 편향성이라는 것이 굽은 막대를 곧게 펴려는 역편향임을 잘 알고 있다.
 
방송 7개월, <나꼼수>는 이미 많은 것을 충분히 이루었다. 언제 진보매체가 거대한 보수매체를 더블스코어 이상으로 이겨 본 적이 있었던가? <나꼼수>는 단 4명이 허름한 골방에서 불과 7개월 만에 오로지 '말발'로 그걸 해냈다. 사실 이것은 기적에 가깝다. 5만 인파가 엄동설한에 3시간 동안 여의도 벌판을 떠나지 않고 반FTA를 외치며 <나꼼수> 공연을 즐겼다.
 
이름난 한류스타가 아니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토크 콘서트와 정치집회가 결합된 형태는 지금까지 세상에 없던 공연형 집회다. 08년 촛불집회가 한국 사회 시위 문화의 새 장을 열었다면,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나꼼수>는 그보다 훨씬 더 진화된 형태의 정치문화를 만들었다.
 
▲ 11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팟캐스트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의 한미FTA 반대 특별공연이 열린 가운데, 수많은 시민들이 '한미FTA 날치기 무효'와 '이명박 퇴진' 등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지난 10·26 재보선과 한미FTA 비준을 거치며 <나꼼수>는 MB시대 저항의 사령부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내곡동 사건은 현직 대통령과 그 직계가족이 연루된 실정법 위반사례로 적발되었고 나경원 후보 관련 의혹은 재보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격동의 정국이 예상되는 내년 <나꼼수>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꼼수>의 미래는 과연 어떨까? 그동안 많은 의혹들이 <나꼼수>를 통해 제기되었고 또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더 많은 의혹은 안개 속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나꼼수>가 해야 할 일은 아직도 많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성공을 바탕으로 나날이 그 사회적 신뢰감을 쌓아온 결과 수많은 정보들이 앞으로 계속 <나꼼수>로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나꼼수>에게 새로운 기회이면서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좋은 콘텐츠는 형식을 초월... 나꼼수 진화 버전을 기대한다
 
예컨대 이제는 얼굴이 널리 알려지고 강연과 공연, 각종 고소로 바쁜 주진우가 앞으로 얼마나 탐사취재를 예전처럼 잘할 것인가, 정봉주가 내년 총선에 출마하면 관계설정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도 과제로 남을 것이다. 또한 넘쳐나는 정보와 정권 말기 홍수처럼 드러날 비리의혹 관련 제보들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처리할 것인지도 풀어야 할 숙제이다.
 
언젠가 김어준이 말했듯이 단편적인 정보들을 모아서 하나의 거대한 이야기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조만간 <나꼼수>의 정보처리 능력이 한계에 이르기 전에 새로운 질적 도약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나꼼수>가 민변과 함께 이른바 '쫄지마 프로젝트'를 기획한다든지 자매방송이라 할 수 있는 <나꼽살>이 경제 문제를 전담하는 현상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개인적인 욕심을 부려 본다면 <나꼼수>가 좀 더 조직적인 진화를 거듭해서 한국 진보진영의 유력한 씽크탱크로 발돋움하는 모습도 기대해 본다.
 
목수는 연장을 탓하지 않고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 법이다. <나꼼수>가 증명했듯이 좋은 콘텐츠는 형식을 초월한다. 다행히도 기술의 진보로 태어난 놀라운 문명의 이기들은 우리의 목소리를 세계 어디에든 날려 보낼 풍선과 라디오를 만들어 주었다.
 
<나꼼수>가 싫다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나꼼수>더러 뭐라 하기 전에 여러분 자신만의 방송을 만들면 된다. 그런 방송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는 그만큼 더 풍성해지지 않겠는가. 행여 <나꼼수>보다 재미있는 방송이 나온다면 나는 기꺼이 <나꼼수>를 버리고 그 프로그램의 열렬한 애청자가 될 것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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