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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도 모르고 쓰는 역사 이야기<4>고구려 건국조 주몽(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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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랜만에 글을 올리게 된 것 같네요....

죄송하기 그지없고요....

조금 있으면 학교 기말고사라 잠수기간에 들어갈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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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사》는 유화가 쫓겨난 상황을 이렇게 묘사한다.

 

[於是時, 得女子於太白山南優渤水, 問之. 曰 “我是河伯之女, 名柳花. 與諸弟出遊, 時有一男子, 自言天帝子解慕漱, 誘我於熊心山下鴨淥邊室中私之, 卽往不返. 父母責我無媒而從人, 遂謫居優渤水.”]

이 때에 태백산(太白山) 남쪽 우발수(優渤水)에서 한 여자를 발견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하백(河伯)의 딸이며 이름이 유화(柳花)입니다. 여러 동생과 나가 노는데 그 때에 한 남자가 스스로 천제의 아들 해모수라 하고 나를 웅심산(熊心山) 아래 압록수(鴨水) 가의 집으로 꾀어서 사통하고 곧바로 가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부모는 내가 중매없이 남을 좇았다고 책망하여 마침내 우발수에서 귀양살이하게 하였습니다.”

라 하였다.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삼국사》의 기록이 좀더 예스럽고 양반답다.

《삼국사》 기록 어디에서도 하백이 딸의 입술을 잡아쨌다느니 어쩌니 하는 기록은 없다.

뭐 이규보 선생은 《구삼국사》를 토대로 《동명왕편》을 저술하셨으니

《삼국사》보다야 《동명왕편》이 좀더 《구삼국사》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지만....

어찌됐건 유화는 이렇게 아버지에게 쫓겨나 금와왕의 눈에 띄었다.

 

河伯責厥女. 하백이 그 딸을 책망하매

挽吻三尺弛. 입술을 당겨 석 자를 늘여 놓았네.

乃貶優渤中. 그리고는 우발수 가운데로 내쫓았는데

唯與婢僕二. 오직 비복 두 명만 주었지.

[河伯大怒, 其女曰. "汝不從我訓, 終辱我門." 令左右絞挽女口, 其脣吻長三尺, 唯與奴婢二人, 貶於優渤水中<優渤澤名, 今在太伯山南.>]

하백이 크게 노하여 그녀에게 말하기를

"네가 나의 훈계를 따르지 않아 끝내는 우리 가문을 욕되게 하였다."

하고는 좌우에 명하여 딸의 입을 당겨서 묶게 하고 그 입술을 3척이 되게 하여 오직 노비 두 명과 더불어 우발수 가운데로 내쫓았다.<우발은 연못 이름인데, 지금 태백산의 남쪽에 있다.>

<동명왕편>

 

필자는 딸을 키워보지 않아서 잘 모르지만 아무래도 이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다.

가문의 체통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딸의 입술까지 잡아 늘여서 쫓아내버리는 아버지라니.

 

漁師觀波中  어사(漁師)가 물 속을 보니

奇獸行○騃  기이한 짐승이 돌아다녔네.

乃告王金蛙  이에 금와왕에게 고하여

鐵網投湀湀  쇠 그물을 샘에 던져서,

引得坐石女  당겨서 얻으니 돌에 앉은 여자로구나.

姿貌甚堪畏  자태가 심히 무서워 견디기가 어렵도다.

脣長不能言  입술이 길어 능히 말하지 못하니

三裁乃啓齒  세 번 자른 뒤에야 입을 열었다네.

[漁師强力扶鄒告曰. "近有盜梁中魚而將去者. 未知何獸也." 王乃使魚師以網引之, 其網破裂. 更造鐵網引之, 始得一女, 坐石而出. 其女脣長不能言, 令三裁其脣乃言.]
어사 강력부추(强力扶鄒)가 고하였다.

"요즘 도랑 속의 고기를 가져가는 것이 있습니다. 무슨 동물인지 모르겠습니다."

왕이 이에 어사를 시켜 그물로 그것을 끌어내니 그 그물이 찢어졌다. 다시 쇠 그물을 만들어 그것을 끌어내니 비로소 돌에 앉아 있는 여자 한 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여자는 입술이 길어 말하지 못하므로 세 번을 자르게 한 후에야 말을 하였다.

<동명왕편>

 

여기서 잠시 동명왕편을 설명하면, 이규보가 1193년 자신의 문집인 《동국이상국집》에 실어 소개한 장편서사시다.

고구려의 시조 동명성왕의 일대기를 병서(幷書)와 오언절구로 된 282구 1410자의 본시와 그것을 설명하는 주(註)까지 포함하면 거의 4천여 자에 달한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제3권에 실려 전하며, 고려 초기의 문인들이 허상적 관념론에서 벗어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문화 민족임을 재인식하는 입장에서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의 영웅적이고 성자적(聖者的)인 행위를 찬양, 고구려인의 긍지를 노래한 장편 서사시이다. 대몽항쟁(對蒙抗爭)에 있어서 민족의식 내지는 국가의식이 고취되면서 역사적 사실이 문학에 반영된 작품으로 기사체(記事體) 문학의 선구가 된 작품이다.(라고 다들 그랬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생각 않는다) 

 

고려를 침략한 몽골족을 평생 달단완종(達旦頑種)이라 부르며 저주해 마지않던 이규보가, '천하에 이 땅이 성스러운 자의 도읍임을 알게 하리라'라고 절규하며 고구려를 세운 건국의 영웅 주몽의 업적을 찬양하고 고구려의 전통을 노래했던 민족서사시.

그것이 바로 동명왕편이다.

굳이 비긴다면 게르만족의 서사시인 '니벨룽겐의 노래'에 견줄만한 것이라고 할까.

 

王知慕漱妃   왕이 해모수의 왕비임을 알고

仍以別宮置   별궁에 두었네.

懷日生朱蒙   해를 품어서 주몽을 낳으니

是歲歲在癸   이 해가 계해년이라.

骨表諒最奇   골격은 매우 기이하고

啼聲亦甚偉   울음 소리 또한 심히 우렁찼네.

初生卵如升   처음에는 되와 같은 알이었는데

觀者皆驚悸   본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두려워했다네.

王以爲不祥   왕이 상서롭지 못하다 여겨

此豈人之類   이것이 어찌 사람의 종류인가 하며

置之馬牧中   마구간 가운데 두었다네.

群馬皆不履   말 무리들이 모두 밟지 아니하고

棄之深山中   깊은 산 가운데 버려도

百獸皆擁衛   온갖 짐승들이 모두 옹위하였다네.

[王知天帝子妃, 以別宮置之, 其女懷中日曜. 因以有娠, 神雀四年癸亥歲夏四月, 生朱蒙. 啼聲甚偉, 骨表英奇. 初生左腋生一卵, 大如五升許. 王怪之曰 "人生鳥卵, 可爲不祥." 使人置之馬牧, 群馬不踐, 棄於深山, 百獸皆護. 雲陰之日, 卵上恒有日光. 王取卵送母養之, 卵終乃開得一男, 生未經月, 言語○實.]

왕은 천제자의 비(妃)인 것을 알고 별궁(別宮)에 두었는데, 그 여자의 품 안에 해가 비쳤다. 이어 임신하여 신작(神雀) 4년 계해년 여름 4월에 주몽(朱蒙)을 낳았다. 우는 소리가 매우 크고 골상이 영특하고 기이하였다. 처음 낳을 때에 왼쪽 겨드랑이로 알 하나를 낳았는데 크기가 닷 되[五升]들이만하였다. 왕이 괴이하게 여겨 말하기를,
“사람이 새 알을 낳았으니 상서롭지 못한 일이로다.”
하며, 사람을 시켜 마구간에 두었더니 여러 말들이 밟지 않고, 깊은 산에 버렸더니 모든 동물이 지키며 보호하였다. 구름 끼고 음침한 날에도 알 위에 항상 햇빛이 있었다. 왕이 알을 도로 가져다가 어머니에게 보내 기르게 하매, 알이 마침내 갈라져 사내 아이 하나를 얻었고, 한 달이 못 되어 말이 모두 정확하였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추모가 알에서 태어났다....

그것도 여자의 배가 아닌 왼쪽 겨드랑이로 말이지.

불교적인 윤색이 듬뿍 가미된 《고기》류의 역사서가 가진 성격상, 석가여래가 마야부인의 왼쪽 옆구리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는 이야기에서 추모가 유화 부인의 왼쪽 겨드랑이에서 태어났다는 이 부분이, 순암 영감이나 단재 선생도 미처 발견하지 못한 또다른 불교적 윤색의 흔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삼국사》나 《동명왕편》 이하 중국의 《위서》와 《통전》 등 거의 대부분의 문헌이, 추모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말하고 있다. 다만 고구려인들이 직접 남긴 기록인 광개토대왕비에는 추모가 알에서 태어났다는 기록은 없고 그저 천제(天帝)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하백여랑(河伯女郞)이었다고만 운운하고 있을 뿐이다.(하긴 무슨 닭도 아니고 알에서 태어났다는 말을 기록에 담기는 좀 그렇지) 《삼국사》는 이 때의 일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金蛙異之, 幽閉於室中. 爲日所炤, 引身避之, 日影又逐而炤之. 因而有孕, 生一卵. 大如五升許. 王棄之與犬豕, 皆不食. 又棄之路中, 牛馬避之. 後棄之野, 鳥覆翼之. 王欲剖之, 不能破. 遂還其母, 其母以物裹之, 置於暖處, 有一男兒, 破殼而出, 骨表英奇.]

금와는 이상하게 여겨서 방 안에 가두어 두었다. 햇빛이 비추니 몸을 피했다. 햇빛이 또 쫓아와 비치니 임신하여 알 하나를 낳았다. 크기가 다섯 되쯤 되었다. 왕은 알을 버려 개, 돼지에게 주었으나 모두 먹지 않았다. 또 길 가운데에 버렸으나 소나 말이 피하였다. 후에 들판에 버렸더니 새가 날개로 덮어 주었다. 왕이 깨어 보려고 했지만 깨뜨리지 못했다. 마침내 그 어머니에게 돌려 주었다. 그 어머니가 물건으로 싸서 따뜻한 곳에 두었더니, 한 사내아이가 껍질을 깨고 나왔는데 골격과 외모가 빼어나고 기이하였다.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옛날에는 남자여자 다 똑같이 성교육을 못 받은 사람이 많아서, 애가 와갖고 난 어떻게 태어났어? 하고 물으면 하늘에서 떨어졌어, 황새가 갖다줬어,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 하고 아무렇게나 둘러대주던지 그러는데, 유화의 경우에도 자기가 어떻게 애를 낳았는지, 애가 대체 어떻게 생기고 태어나는 건지 알 길이 없으니까, '내가 하늘에서 햇빛을 받아서 그러나?' 하고 마는 거지. 아니면 해모수라는 남자를 '햇빛'으로 은유했을 뿐이거나.

 

그러다보니 계보가 좀 복잡해졌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는, 금와왕의 선왕인 해부루왕의 아버지가 다름아닌 주몽의 아버지로 알려진 해모수라고 말하고 있다. 해모수가 처음 이 땅에 내려와 북부여를 세웠고, 해부루는 그런 해모수의 아들로 해모수가 하늘로 올라간 뒤 북부여를 다스리는 왕이 되었다가 가섭원 쪽으로 피해가서 동부여를 세웠다는 것이다.(해부루왕의 성씨는 해모수와 같은 해解씨) 금와왕의 아버지는 해부루, 해부루의 아버지는 해모수, 그리고 주몽의 아버지도 해모수.

이런 식으로 계보를 따져보면 주몽이 금와왕의 삼촌뻘이고, 유화가 금와왕의 할머니뻘이 되는 해괴한 계보가 그려지게 된다.

 

무슨 개족보도 아니고 어떻게 이런 식의 계보가 가능한 것일까? 그야말로 놀랄 노자다.

내가 좀더 학식이 깊고 아는것이 많았다면 자세하게 설명했겠지만, 유감스럽게도 본인은 그렇지 못하다. 그저 주몽의 이야기만을 전할 뿐이다. 그리고 처음부터 그런 취지로 이 글을 썼으니까.

계속해서 《동명왕편》을 보자.


母姑擧而養   어머니가 거두어 기르니

經月言語始   한 달이 지나 말을 하였네.

自言蠅○目   스스로 말하되, "파리가 눈을 빠는데

臥不能安睡   누워 편안히 잠을 못 자겠습니다." 하여

母爲作弓失   어미가 활과 화살을 만들어주니

其弓不虛掎   아무렇게나 날리는 법이 없구나.

[謂母曰.  "○蠅○目. 不能睡. 母, 爲我作弓矢." 其母以 作弓矢與之. 自射紡車上蠅. 發矢卽中. 扶余謂善射曰朱蒙.]
어미에게 말하기를

"파리들이 눈을 빨아서 잠을 못 자겠어요. 어머니, 저한테 활하고 화살 좀 만들어 주세요."

하니 그 어미가 나뭇가지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그것을 주었다. 스스로 물레[紡車] 위의 파리를 쏘니 화살을 쏘면 곧 적중하였다. 부여에서는 활 잘 쏘는 사람을 주몽이라 불렀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천재로 알려진 매월당 김시습 선생도 태어난 지 몇 달만에 글자(한자)를 깨치셨다는데,

한달이 지나 말문이 트인 주몽 또한 그러한 천재적 머리(?)를 타고 난 것이 아닐까.

(아니면 후대로 내려오면서 동명왕을 영웅화하려고 온갖 사족을 다 붙여 부풀렸겠지)

그런데 '주몽'하면 꼭 뒤에 붙는 수식어가 바로 '활을 잘 쏘는 자'인데,

《삼국사》도 주몽이 활을 잘 쏘았다고 인정하고 있다.

단재 선생님께선 만주어로 '명궁'을 지칭하는 '주릴무얼[卓琳奔阿]'이라는 단어는,

바로 이 '추모'에게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年甫七歲, 嶷然異常. 自作弓矢射之, 百發百中. 扶餘俗語, 善射爲朱蒙, 故以名云.]

나이가 겨우 일곱 살이었을 때에 남달리 뛰어났다. 스스로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면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朱蒙)이라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이름을 삼았다 한다.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내 생각이지만, 기록으로 본다면 당시 부여에서는 최고의 활잡이 즉 명궁에게는 모두 주몽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을 것이다. 한민족 건국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은 대부분이 활을 잘 쏘는 사람들인데, 조선을 건국하게 되는 태조 이성계 또한 활을 잘 쏘았던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활은 고대 사회에서 없어서는 안 될 수렵 도구였다.


<고구려의 힘은 기마술과 함께 성능 좋은 활에 있었다.(무용총 수렵도 中)>

 

한민족의 조상은 원래 흉노나 거란, 여진과 같은 북방 기마민족과 그 맥락을 같이 하기 때문에(신라 또한 북방에서 온 기마민족의 후손이다) 전통적으로 수렵을 중요시여겼던 사회 풍조가 있었다. 기마민족은 수렵을 중심으로 생활한다. 따라서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사냥 능력, 말하자면 말을 잘 타고 활을 잘 쏘는 능력이다. 고구려 또한 기마민족의 유풍을 간직한 나라였기에, 주몽이 활을 잘 쏘았다는 전설이 남아있는 것은 어쩌면 그러한 북방 기마민족의 맥락에서인지도 모르겠다. 고대 사회는 그 사회가 원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신으로 혹은 왕으로 추대받는 사회였던 것이다.

 

年至漸長大    해가 갈수록 점점 장대하여

才能日漸備    재능이 날로[日] 점점 갖추어졌네.

扶余王太子    부여왕의 태자(대소)가

其心生妬忌    투기하는 마음이 생겨

乃言朱蒙者    이에 말하기를 

此必非常士    "주몽이란 놈은 비상한 자라

若不早自圖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其患誠未已    그 근심이 진실로 그치지[已] 않으리이다."

[年至長大, 才能竝備. 金蛙有子七人, 常共朱蒙遊獵. 王子及從者四十餘人, 唯獲一鹿, 朱蒙射鹿至多. 王子妬之, 乃執朱蒙縛樹, 奪鹿而去, 朱蒙拔樹而去. 太子帶素言於王曰 "朱蒙者, 神勇之士,  瞻視非常. 若不早圖, 必有後患."]
해가 지나 장대하여 재능이 아울러 갖추어졌다. 
금와왕은 아들 일곱이 있었는데 항상 주몽과 함께 놀며 사냥을 다녔다. 왕자와 종자 40여 명이 겨우 사슴 한 마리를 잡았는데, 주몽은 사슴을 쏘아 많이 잡았다. 왕자가 그것을 투기하여 주몽을 붙잡아 나무에 묶고 사슴을 빼앗아 가버렸더니 주몽은 나무를 뽑아서 가버렸다. 태자 대소가 왕에게 고하여 말하기를

"주몽이란 놈은 신이 내린 용력을 가진 사람이니, 눈길[瞻]이 심상치 않습니다. 만약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반드시 후환이 있을 것입니다."

라 하였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주몽신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악역이 바로 금와왕의 태자 대소를 비롯한 부여 왕자들이다.

영웅신화에서는 영웅을 괴롭히는 악역이 한명씩은 꼭 있게 마련이다. 단재 선생 말씀으로는 이때가 '신수두'의 10월 대제(大祭) 때였는데, 왕은 추모에게 겨우 화살 하나를 주었지마는 추모는 말을 잘 달리고 활을 잘 쏘아 그가 쏘아 잡은 집승이 대소 7형제가 잡은 것보다 몇 갑절이 더 많았고, 이에 대소는 더욱 그를 시기하여 기어코 죽이려고 음모를 꾸였다고 한다.(단재 선생은 추모가 마구간 일을 맡았다가 명마를 얻게 된 뒤의 일이라고 했지만 《동명왕편》은 이미 그 전에 사냥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했다. 단재 선생께서 뭔가 착각을 하신 듯.)

 

[金蛙有七子, 常與朱蒙遊戱. 其伎能皆不及朱蒙. 其長子帶素言於王曰 “朱蒙非人所生, 其爲人也勇. 若不早圖, 恐有後患. 請除之.”]

금와에게는 일곱 아들이 있어 항상 주몽과 더불어 놀았다. 그 기예와 능력이 모두 주몽에게 미치지 못하였다. 그 맏아들 대소(帶素)가 왕에게 말하였다.

“주몽은 사람이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사람됨이 용맹스럽습니다. 일찍 도모하지 않으면 후환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없애버리소서.”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기록 속에서도 대소는 주인공인 추모를 괴롭히고 모함하는 악역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추모라는 인물을 미화하기 위해서 과장이 실렸을 수도 있지만 대소와 추모의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것만은 확실하다. 대소로서는 명궁이라 불리며 여러 사람들의 관심을 받던 추모가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기와 피도 안 섞였을 뿐 아니라, 자신보다도 더 뛰어난 능력ㅡ기마민족 사회에서 필요로 하던 수렵 능력ㅡ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추모 또한, 사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을 지닌 인재였음에도, 서자라는 신분과 정실의 태자인 대소라는 인물 때문에 가로막혀버린 자신의 입신양명의 길을 생각하면, 대소를 그렇게 따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추모와 대소는 엇갈린 운명으로 하여 결국 길을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王令往牧馬   왕이 가서 말을 기르게 하니

欲以試厥志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함이었네.

自思天之孫   스스로 생각하니 하늘의 손자가

廝牧良可恥   말을 기르는 것이 진실로 부끄러워

捫心常竊導   가슴을 움켜쥐고 항상 몰래 분을 삭이네.

吾生不如死   사는 것이 죽음만 못하니

意將往南土   생각건대 장차 남쪽 땅 가서

立國入城市   나라를 세우고 성과 시장을 열자니

爲緣慈母在   어머니가 계시는구나

離別誠未易   이별이란 진실로 쉽지가 않은걸.

[王使朱蒙牧馬, 欲試其意. 朱蒙內自懷恨, 謂母曰 "我是天帝之孫, 爲人放馬, 生不如死. 欲往南土造國家, 母在不敢自專." 其母云云]

왕이 주몽에게 말을 기르게 하여 그 뜻을 시험하고자 하였다. 주몽이 속으로 한을 품고 어미에게 말하기를

"나는 천제의 손자인데 다른 사람을 위하여 말을 기르니 사는 것이 죽음만 못합니다. 남쪽으로 가서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어머니가 계셔서 감히 제 뜻대로[自專] 하지 못합니다."

하였다. 그 어머니가 이르기를....

 

其母聞此言   그 어미가 이 말을 듣고

潛然杖淸淚   몰래[潛然] 눈물 닦으며

汝幸勿爲念   "너는 행여라도 나를 생각지 말거라.

我亦常痛痞   나도 항상 마음 아프니."

土之涉長途   장사가 먼길을 떠나면

須必憑騄   모름지기 준마를 타야하는데

相將往馬閑   서로 마구간에 가서

卽以長鞭捶   곧 긴 채찍으로 치니

群馬皆突走   말들이 모두 달아나는데

一馬騂色斐   붉은 빛 나는 말 한 마리 있어

跳過二丈欄   두 장 되는 난간 뛰어 넘으니

始覺是駿驥   비로소 이 말이 준마임을 깨닫겠네.

[通典云, 朱蒙所乘, 皆果下也.]
《통전》에 말하기를 주몽이 타던 말은 모두 과하마였다.
                      

潛以針自舌    몰래 바늘로 혀를 찌르매

酸痛不受飼    시고 아파서 먹이를 먹지 못하여

不日形甚癯    며칠 가지 않아 형상이 심히 야위니

却與駑駘似    곧[却] 둔마와 다름이 없었다.

爾後王巡觀    그 뒤에 왕이 돌아보고

予馬此卽是    이 말을 곧 주었다.

得之始抽針    그것을 얻어 비로소 바늘을 빼고

日夜屢加餧    밤낮으로 먹였다.

[其母曰, "此吾之所以日夜腐心也. 吾聞士之涉長途者. 須憑駿足. 吾能擇馬矣." 遂往馬牧. 卽以長鞭亂捷.  馬皆驚走. 一騂馬跳過二丈之欄. 朱蒙知馬駿逸. 潛以針捷馬舌根. 其馬舌痛. 不食水草. 甚瘦悴. 王巡行馬牧. 見群馬悉肥大喜. 仍以瘦錫朱蒙. 朱蒙得之. 拔其針加餧云.]

그 어머니가,
“이것은 내가 밤낮으로 고심하던 일이다. 내가 들으니 장사가 먼길을 가려면 반드시 준마가 있어야 한다 했다. 내가 말을 고를 수 있다.”
하고, 드디어 목마장으로 가서 긴 채찍으로 어지럽게 때리니 여러 말이 모두 놀라 달아나는데, 
한 마리 붉은 말이 두 길이나 되는 난간을 뛰어넘었다. 주몽은 이 말이 준마임을 알고 가만히 바늘을 혀 밑에 꽂아 놓았다. 그 말은 혀가 아파서 물과 풀을 먹지 못하여 심히 야위었다.왕이 목마장을 순시하며 여러 말이 모두 살찐 것을 보고 크게 기뻐서 이로서 야윈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주몽이 이 말을 얻고 나서 그 바늘을 뽑고 도로 먹였다 한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단재 선생님 말씀으로는 추모가 말을 기르는 일을 맡아보게 된 것이 그의 나이 열 아홉 살때의 일이라고 그러던데.... 어디서 근거한 얘기일까?

 

[王不聽, 使之養馬. 朱蒙知其駿者, 而減食令瘦, 駑者善養令肥. 王以肥者自乘, 瘦者給朱蒙. 後獵于野, 以朱蒙善射, 與其矢少, 而朱蒙獸甚多. 王子及諸臣又謀殺之, 朱蒙母陰知之, 告曰 “國人將害汝. 以汝才略, 何往而不可? 與其遲留而受辱, 不若遠適以有爲.”]

왕은 듣지 않고 그를 시켜 말을 기르게 하였다. 주몽은 날랜 말을 알아내어 먹이를 적게 주어 마르게 하고, 둔한 말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왕은 살찐 말을 자신이 타고, 마른 말을 주몽에게 주었다. 나중에 들판에서 사냥할 적에 주몽이 활을 잘 쏘므로 화살을 적게 주었으나, 주몽은 짐승을 매우 많이 잡았다. 왕자와 여러 신하가 또 죽이려고 꾀하자, 주몽의 어머니가 이것을 눈치채고, 

“나랏사람[國人]이 널 죽일 것이다. 네 재주와 지략으로 어디간들 안되겠느냐? 지체하여 머무르다 욕보는 것보다는 멀리 가서 뜻을 이루는 것이 낫다.”

라 일렀다.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주몽에게 남쪽으로 내려갈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 수단까지 제공해주는 것은, 다름아닌 어머니 유화다.

그녀는 자신이 겪어야만 하는 이 슬픈 운명을 아들에게는 겪게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아들에게 남쪽으로 내려갈 것을 말하며 아들이 타고 갈 말까지 손수 골라주는 모성애를 보인다.

유화는 실로 강인한 어머니였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집에서는 쫓겨나 금와왕의 궁에 의지해 홀로 살면서 아들 주몽을 키워냈고,

또 그렇게 키워낸 아들을 떠나보내면서 자신과 이별하는 것을 마음아파하지 말라며

아들인 주몽이 자신의 품을 떠나 새로운 나라를 세울 수 있도록 격려한다.

그녀는 진실로 아들을 사랑했을 것이다. 아들이 부여라는 작은 세계를 박차고 나와,

보다 더 큰 세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헌신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로서의 그녀의 강인함은 몽골제국의 시조 칭기즈칸의 어머니였던 호엘룬과 같았다. 

호엘룬 역시 남편 예수게이를 타타르 족의 손에 잃었지만,

유화와 같은 강인함으로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난 어린 아들 테무진을

세계 최강의 제국 몽골제국의 호랑이 칭기즈칸으로 키워냈다.

동북아시아 최강제국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

세계 최강의 제국 몽골제국의 시조 칭기즈칸의 어머니 호엘룬.

두 사람의 어머니는 시대는 달랐지만 뭔가 통하는 것이 있었던 게다.

동북아시아를 호령했던 고구려인의 강인함은, 그 시조 주몽의 어머니 유화에서부터 이미 그 뿌리가 확인된다.

어머니란 영웅의 이면에 숨은 또 하나의 영웅인 것이다.

 

暗結三賢友    몰래 세 명의 어진 벗과 맺어졌는데

其人共多智    그 사람들이 모두 지혜가 많았다네

[烏伊, 摩離, 陜父等三人.]

그들이 오이, 마리, 협부의 세 명이었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하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는 혼자만 있어서는 안 되지. 그를 도울 신하들도 필요하다.

추모의 옆에는 신하이자 친구들이 있었다. 오이, 마리, 협부의 세 가신들.

왕자 시절 추모가 마구간에서 말이나 치고 있을 때부터 추모를 따랐고,

훗날 그와 그의 아들 유리를 도와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일조했던 그 세 명의 신하들은

일찌기 환웅이 하늘로부터 내려올 때에 3천 명의 무리와 함께 데리고 왔다는

풍백(風伯)과 우사(雨師), 운사(雲師) 세 신과도 비길 인물이었다.

 

南行至淹滯    남으로 가서 엄체수에 이르러

[一名盖斯水, 在今鴨綠東北]  

일명 개사수인데 지금의 압록강 동북에 있다.

 

欲渡無舟艤    건너자니 배가 없구나.

[欲渡無舟, 恐追兵奄及,  以策指天, 慨然嘆曰 "我天帝之孫, 河伯之甥. 今避難至此. 皇天后土, 憐我孤子, 速致舟橋." 言訖, 以弓打水, 魚鼈浮出成橋, 朱蒙乃得渡. 良久追兵至.]
건너려 하였으나 배는 없고 뒤쫓는 병사들이 엄습할까 두려웠다. 
이에 채찍으로 하늘을 가리켜 분개하여 탄식하여 가로되

"나는 천제의 손자요, 하백의 외손자다. 지금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다. 황천(皇天) 후토(后土)시여, 나 유복자[孤子]를 불쌍히 여기시어 어서 배다리를 만들어 주소서[致]."

말을 마치고 활로 물을 치니, 물고기와 자라가 떠서 다리를 만들어 주몽이 이에 건널 수 있었다. 시간이 오랜 뒤에야[良久] 뒤쫓던 병사가 당도하였다.

 

秉策指彼蒼     채찍을 잡고 저 하늘을 가리키며

慨然發長     개연히 긴 한숨을 내쉬네.

天孫河伯甥     "하늘의 손자이자 하백의 외손자가

避難至於此     난을 피하여 이곳에 이르렀나이다.

哀哀孤子心     슬프고도 슬퍼라 외로운 이 마음이여.

天地其忍棄     하늘과 땅이 차마[忍] 나를 버리십니까?"

操弓打河水     활을 잡아 강물을 치니

魚鼈騈首尾     물고기와 자라가 머리와 꼬리를 나란히 하여

屹然成橋梯     우뚝 솟아 다리를 이루었고

始乃得渡矣     비로소 건널 수 있었다.

俄爾追兵至     갑자기 뒤쫓던 병사가 당도하여

上橋橋旋     다리에 오르니 다리가 갑자기 무너지도다.

[追兵至河. 魚鼈橋卽減. 已上橋者. 皆沒死]
뒤쫓던 병사가 강물에 이르니 물고기와 자라의 다리가 곧 무너져서, 이미 다리 위에 있던 자들은 모두 죽었다.

<동명왕편> 본장(本章)

 

필자에게 주몽신화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을 뽑으라면, 추격병에게 쫓기던 주몽이 강 앞에 서서 하늘에 호소하자 거북과 물고기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주는 장면을 떠올릴 것이다.

동명성왕 신화에서 가장 절정,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부분이다.

주몽은 마침내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위한 대장정에 오른다. 그리고 태자 대소의 추격을 받는다.

주몽은 엄사수(엄리대수)를 건넜다. 그러나 그 강이 구체적으로 지금의 어느 강인지는 아직 모른다.

김부식도 주몽이 건넜던 강이 어디인지 모른다며 삼국유명미상지명(이름은 있지만 지금 어디를 말하는지 밝혀지지 않은 곳)에 엄사수의 이름을 올려두었으니.

 

어쨌든, 주몽은 엄사수 앞에서 천손(天孫)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강에 물고기와 거북을 떠올라 자신이 강을 건널 다리를 놓게 함으로서, 천손이자 하백의 외손자인 자신의 신성한 능력ㅡ강에 사는 모든 미물을 복종시키는 자신의 능력을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朱蒙乃與烏伊 · 摩離 · 陜父等三人爲友. 行至淹○水<一名盖斯水. 在今鴨淥東北> 欲渡無梁. 恐爲追兵所迫, 告水曰 “我是天帝子, 河伯外孫. 今日逃走, 追者垂及如何?” 於是, 魚鼈浮出成橋, 朱蒙得渡. 魚鼈乃解, 追騎不得渡.] 

그래서 주몽은 오이(烏伊) ·마리(摩離) ·협보(陜父) 등 세 사람을 벗으로 삼아 함께 갔다. 엄시수(淹○水)<또는 개사수(蓋斯水)라고도 한다. 지금(고려)의 압록강(鴨淥江) 동북쪽에 있다.>에 다다라 건너려 하였으나 다리가 없었다. 추격병에게 잡히게 될 것이 두려워 물에게 고하기를

“나는 천제(天帝)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자이다. 오늘 도망가려 하는데 추격자들이 다가오니 어찌하면 좋은가?”

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었으므로 주몽은 건널 수 있었다. 물고기와 자라가 곧 흩어지니 추격하는 기마병[騎]이 건널 수 없었다.

<삼국사> 권제13, 고구려본기1, 동명성왕 즉위전기

 

주몽이 강을 건너는 이 장면은, 한민족 건국 신화중 가장 스케일이 크고 방대한 동명왕신화의 절정부분이기도 하면서 또한 고구려의 건국시조 동명성왕 주몽의 신성함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북아시아 일대에서는 실제로 어떤 시기가 되면 강으로 커다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서 이동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그걸 많이 보던 옛날 사람들이기에, 추모가 강을 건널 때에 강을 덮을 정도로 많은 물고기들이 다리가 되어 추모를 건네다 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추모왕의 건국전설을 가장 첫머리에 소개한 광개토태왕릉비>

 

어쨌든 주몽은 이렇게 해서 무사히 강을 건넜고, 자신에게 주어진 건국의 대장정을 계속한다.

그리고 모둔곡을 넘어, 졸본부여의 땅 홀승골성에 다다른다.

아버지가 약속한 자신의 왕성(王城)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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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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