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impeter.tistory.com/1690

유인촌, 총선출마위해 족보까지 바꾸다.
2011/12/13 07:04   impeter


이명박 대통령은 자신을 보좌했던 특보단(특별보좌관)과 지난 9일 송년 만찬회를 가졌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특보단을 격려하기 위함도 있지만, 사실 이 특보단에 참석했던 인물들은 내년 총선에 나올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동관 언론특보, 박형준 사회특보,유인촌 문화특보, 김영순 여성특보가 그 중심에 있는 인물인데, 청와대에서는 이들의 총선출마에 대해서 "“아직 출마 여부가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현 정부 출범과 국정 운영에 역할을 했던 인사들이 다음 국회에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 라는 생각을 대통령이 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이들이 노리는 것은 국회에 진출하여 '이명박 심판'을 저지하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이 초토화로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특보단 송년만찬회를 대통령이 개최한 것이고, 총선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이 모두 모인 것입니다. 

특히, 특보단은 청와대 사무동이 아닌 별관에서 두달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식사를 하면서 격의 없는 만남을 가졌던 인물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유인촌은 지난 11월 11일과 12일 전주와 완주에 내려가 있었습니다. 유인촌의 전북 방문이 무어 그리 대단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는 고향인 전북을 부인했던 사람이었습니다. 

■ 유인촌, 도대체 당신의 고향은 어디입니까?

한국에서 고향은 대부분 부모의 고향을 지칭합니다. 저 같은 경우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았지만, 군대에서는 충청도 병력으로 분류돼 매번 충청도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습니다. 그것은 한국이 호주제에 따라서 살았던 문화적,사회적 관례 때문입니다. 

그런데 유인촌은 희한한 고향 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유인촌을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하면서 유인촌을 '전북 전주'로 출신지를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유인촌은 '전북' 출신이 아닌 '서울' 출신임을 계속 인터뷰에 강조했던 인물입니다. 

그 당시 전라도 지역을 전혀 안배하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위해 유인촌을 '전북 전주' 출신으로 했다는 의혹이 강했습니다. 당시 호남측 인물은 정운천,남주홍 단 2명에 불과했습니다. 

이런 논란에 대해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출생지를 기준으로 출신지역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보통 고향을 출생지라고 하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이런 논란이 계속 불거지자, 유인촌은 '아버지 고향은 충남 서산이고, 한국전쟁 때 부모님이 전북으로 피난 가 거기에서 나를 낳으셨고, 이후 서울에서 자란 것'이라는 해명을 했습니다. 

유인촌의 변명을 보면 유인촌의 고향은 '충남 서산'이 맞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자신의 고향을 자식에게 알려주면서 뿌리를 찾는 경우는 있어도, 그냥 피난살이 하다가 태어난 곳을 고향으로 가르쳐주며 기억하라는 경우는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호남인사에 대한 '끼워맞추기식 홍보'에 대해 전라도 지역 국회의원들이 유인촌의 인사청문회 때 정확히 출신지를 계속 질의했고, 이에 대해 유인촌은 '전북 전주'가 아닌 '서울'이라고 답했습니다. 

당시 유인촌은 출생만 전북이었다는 사실을 밝혔다.


유인촌의 답변에 따라 결국 유인촌은 아버지 고향인 충남 서산도 아니고, 출생지 전북 전주도 아닌 서울 출신으로 귀결되었습니다. 

■ 고향도 아닌 '전주'에서 갑자기 대규모 종친 행사라니...

유인촌은 자신의 고향은 전북 전주가 아니라고 밝혔고, 이에 따라 전북 지역에서도 그는 '고향을 부인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진짜 고향을 부인한 것이 아니라, 조작된 고향을 부정)

이랬던 유인촌이 지난 11월에 전북 전주에 내려간 이유는 '전주 유시 종중 시제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인촌이 전주를 방문하고 난 뒤에 전주에는 '전주류(유)씨 문화축제'라는 현수막이 시내 곳곳에 걸렸습니다. 

'전주류(유)씨 문화축제'는 전주 유씨가 모두 모이는 종중 행사로, 전주유씨 종중이 설립한 전주 유일여고에서 '축제 형식'으로 모이는 대규모 종친 모임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회 회장은 유인촌이었습니다. 

이 모임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열리는 거대 종친 행사로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실제로 총선 출마가 임박하면, 이런 종친회, 동창회,향우회 모임이 잇달아 열리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실제 '전주류(유)씨 문화축제'는  일부 종중 사람들이 강하게 반발하면서, 대회 장소인 전주 유일 여고가 집회장 신고를 취소했고, 이에 따라 대회 자체가 무산됐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문화특보를 지냈던 유인촌은 총선 출마를 위해 종친행사를 만들려다가 오히려 망신만 당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 국회의원 배지 달자고 족보까지 바꾸어 버린 유인촌,

전주 유씨 종중은 '전주류(유)씨 문화축제'를 왜 반대했을까요? 간단합니다. 유인촌은 '전주 유씨'가 아닌 '문화 유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인촌은 같은 성씨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문화유씨와 전주유씨는 고려시대 말 한 조상, 한 뿌리 형제에서 시작됐다,전주유씨와 문화유씨를 나누는 것 자체가 모순"

얼핏 들으면 맞는 이야기 같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각자 종친회의 주장대로 류씨로 표기

우선 전주 류씨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족보가 소장되어 있을 만큼 가장 오래된 성본중의 하나입니다. 신라시대부터 존재한 전주 류씨의 시조는 류기훈으로 전주 류씨에 대한 문제는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문화 류씨입니다. 문화 류씨 종친회가 밝히는 시조는 류차달로 고려시대에 창성했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즉 신라시대에는 성이 없다가 고려 초기 개국공신으로 류차달이 시조가 되었다는 설이 가장 근거가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 성을 가진 역사를 돌이켜볼 때 실제 고려시대에 성을 갖게 된 사실만으로 오래된 역사입니다. 문제는 이런 근거를 가지고 유인촌은 전주 류씨와 문화 류씨가 한 근원이라고 주장하고 전주 류씨 인물 시제에 참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문화 류씨와 논란이 되고 있었던 차류대종회는 원래 문화 류씨의 시조가 신라 시대에는 차씨를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류차동원설을 주장했습니다. 결국 역사적인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지만, 이런 논란을 보면 문화 류씨와 전주 류씨는 엄연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인촌은 고려시대부터 시조가 엄연히 존재한 문화 류씨를 왜 굳이 버리고 자꾸 전주 류씨의 시제를 찾아 다니고, '전주류(유)씨 문화축제'의 대회장으로 거대 행사를 하려고 했을까요? 

당연히 내년 총선에서 어떻게 하든 금배지를 달아보고자 하는 욕망 때문입니다. 


유인촌이 '역사 스폐셜' 진행자였지만, 역사의식은 얼마나 형편없었는지 온 국민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역사의식이 없다고 해도 현재 자신이 존재하고 있는 족보까지도 저토록 바꾸려는 목적이, 단지 금배지 때문이라는 사실은 참으로 역겹기까지 합니다. 


진짜 유인촌이 자신의 뿌리를 제대로 찾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라면 그전에는 왜 전북 전주를 고향이라고 (전주 류씨) 말하지 않다가 이제야 말하는지 그 이유를 제대로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저는 도저히 생뚱맞게 갑자기 문화 류씨가 전주 류씨 행사에 가는지, 금배지 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참고로 유인촌은 90년대부터 전북 완주 출마설이 계속 나왔던 인물입니다. 

“내년 총선에서 이명박 정부의 공과를 짊어지고 심판을 받겠다” 라며 줄줄이 나오는 친이명박 인물들을 보면서 과연 무슨 배짱으로 저들이 나오는지 너무 어이가 없습니다. 자신의 조상까지 바꾸면서까지 장관-문화특보-국회의원을 향한 유인촌의 욕심을 바라보는 조상은 어떠할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에는 바꿀 수 없는 뿌리가 있고, 그 뿌리마저 금배지 때문에 바꿀 수 있는 유인촌을 보면 무섭기까지 합니다. 이런 인물이 저희 가문에 없다는 사실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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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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