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현장] '나꼼수 열풍' 어떻게 볼것인가?
세계일보|입력 2011.12.12 17:21|수정 2011.12.13 08:15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접근…기득권자들 惡으로 내몰아
사법부까지 바이러스 전파…경박한 사회풍조 심화시켜
조롱과 독설의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에 인터넷 방송 '나는 꼼수다'(나꼼수)가 자리한다. 나꼼수는 음모론을 양산하면서 노골적으로 편파적인 진보진영 매체임을 과시한다. 이들은 선과 악의 대립구도를 구축, 갈등과 분열의 이분법을 구사한다. 이로 인해 기득권에 대한 빈정거림은 영역의 구분 없이 확산되는 추세다. 선동성이 강한 나꼼수 바이러스는 지성과 합리성의 보루인 사법부에도 전파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강행처리 뒤 일부 판사들은 공공연하게 '가카(이명박 대통령)'를 조롱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여의도 공원에서 열린 '나는 꼼수다' 특별콘서트 현장. 한·미 FTA 비준 무효 촉구 집회를 겸한 이날 공연에 주최 측은 5만여명(경찰 추산 1만6000여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 뉴시스
◆조롱과 탐정놀이
'나는 꼼수다'라는 아이툰즈 팟캐스트 방송은 한 시간 반에서 세 시간 동안 시사현안을 주로 다루는 언더그라운드 방송이다. 술자리에서나 제기할 만한 음모론과 사실관계,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 이어지고 비속어가 판을 친다. 이들은 주류언론이 보도하지 않는 것을 '퍼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내용은 허접하고 그저 듣고 낄낄대는 수준이지만 1회 다운로드가 180만 이상이 된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인지도를 조사해보니 방송을 알고 있는 사람이 유권자 가운데 600만명이 되는 것으로 추산됐다. 출연자들이 책을 쓰면 곧장 베스트셀러에 오른다. 순회 콘서트도 매진사례다. 지상파 방송에서 열풍의 원인을 분석하고 '꼼수'라는 표현이 기성언론의 제목으로 자주 등장한다. 나꼼수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정치적 파급력을 증폭시켰다. 여당 대표까지 출연할 정도의 사회적 매체로 성장했다. '너 꼼수' 같은 유사프로그램도 생겨나고 있다.
이유는 뭔가. 풍자와 조롱의 코드를 들 수 있다. 한국외대 김동원 교수는 나꼼수를 탐정놀이 관점에서 분석하고 있다. "나꼼수가 시도하는 것은 탐정소설 기법이다. 출연자들은 음모론을 제기하고 시청자들은 탐정이 돼 수사에 동참하는 식이다." 에르네스트 만넬은 '즐거운 살인, 범죄소설의 사회사'에서 "범죄소설은 기계적이고 형식적으로 등장 인물을 두 종류로 나눈다. 나쁜 놈과 착한 사람으로. 나쁜 놈은 범인이고 착한 사람은 탐정, 혹은 다소간 무능한 경찰"이라고 썼다. 나꼼수 제작진은 출연진을 착한 사람으로, 그들이 비판하는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 한나라당 정치인들은 나쁜 자들이라는 이분법으로 접근한다. 즉 나꼼수는 우리 사회 20, 30, 40대에게 스스로를 탐정이라고 여기게 하고, 집권층을 악으로 몰아 소탕하게 만드는 가상의 구도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분노와 불신, 사회적 불만이 표출되는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나꼼수, 대통령을 풍자해 젊은이들의 분노를 쏟아내다'란 제목의 뉴욕 타임스 인터넷판은 "이들의 인기는 줄어드는 일자리와 생활비 급등 속에 젊은이들의 정치적 각성을 의미한다. 보수적인 주류 매체들과 '가카'에 대한 불신의 증거"라고 분석했다. 솔직한 감정표현, 감성적인 언어사용이 청년들에게 어필하기 때문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사회갈등문제 전문가들은 "기존 언론에서 다루지 않는 내용을 육성으로 들려주면서 현실의 답답함을 풀어주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음모론이 부메랑 될까
나꼼수의 인기는 음모론에서 나온다는 평가가 적잖다. 이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생아 의혹, 에리카 김과의 불륜설을 퍼트렸고, 일부 출연진은 박정희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이들이 제기하는 음모론은 실체가 없는 단순한 구조다. 가수 서태지와 배우 이지아의 이혼소송 보도가 나오자 "BBK 사건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덮기 위한 초대형 떡밥"이라고 몰아붙이는 식이다. 술집에서 친구들과 떠들 만한 것으로 사실도 근거도 없다. 그래서 음모론이 인기에 공헌했지만, 음모론이 부메랑이 되면서 나꼼수 인기도 곧 시들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숱한 음모론이 근거없다는 사실로 드러나면서 결국 신뢰를 떨어뜨리게 돼 팬들이 머잖아 외면하게 된다는 것이다.
◆주도권 잡은 진보진영과 정부의 SNS 규제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서울시장 보선을 거치면서 진보진영의 공세는 날로 강화됐다. 민주당 등 야권이 무상 복지 담론의 주도권을 잡은 데다 나꼼수 같은 인터넷방송이 사회적 매체로 떠오른 데도 이러한 정치적 공간의 변화와 무관치 않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의 국회처리 전후에 좌우 대립의 골은 더 깊어졌는데, 갈등구조 악화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워가 일조하고 있다. '법과 양심으로 말한다'는 사법부마저 휘둘리는 상황이다. 한 판사는 나꼼수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 현직 대통령을 조롱했다. 그는 "오늘부터 SNS 검열 시작이라죠? 방통위는 나의 트윗을 적극 심의하라… 앞으로 분식집 쫄면 점차 사라질 듯. 쫄면 시켰다가는 가카의 빅엿까지 먹게 되니. 푸하하"라고 썼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여서 어느 직역보다 신뢰가 생명인 판사가 이렇게 가볍게 언동하는 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경박해졌다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SNS가 아무리 사적 공간이라고 해도 글을 여러 사람에게 공개하는 순간 공론의 장으로 넘어간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정부는 지난 7일부터 SNS를 관리하는 뉴미디어정보심의팀을 가동했다. 명예훼손 신고가 있으면 방통심의위가 제재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 올라온 글에 대해 자진삭제를 권고하고, 더 나아가 해당 계정(아이디)에 국내 이용자들의 접근을 차단할 수도 있다. 정부의 이런 접근방식에 대해 언론에 재갈을 물린다는 비판이 만만치 않아 음모론 확산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보수진영에서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SNS행위에 대해 적극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진보진영에서는 "SNS 통제 같은 것은 시대착오적이고 실현 가능하지도 않은 발상"이라며 "시민의 자기성찰이 더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과거 '미네르바 사건'의 예에서 보듯 규제도 쉽지 않다. 결국 시민들의 자발적인 자정능력과 합리적 판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진보진영의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강하고 정부도 무기력증이 심해 음모론은 당분간 활개칠 것으로 보인다.
백영철 정치전문기자iron10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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