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ikoreanspirit.com/news/articleView.html?idxno=43023 
*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2 : 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현장 답사 심양에 도착하다 - 코리아스피릿"의 뒷부분 내용이 이 기사와 연결이 되어 일부 옮겼습니다.

요하문명론은 중국 역사 공정의 결정판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3
승인 2014.07.30  07:58:54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전략) 

바른 역사 인식을 위한 현장 답사 심양에 도착하다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2>
승인 2014.07.22  20:12:14  글/사진= 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점심을 기내식으로 해결한 일행은 곧바로 심양에 있는 요령성박물관(遼寧省博物館 )으로 향했다. 이곳에는 홍산문화(紅山文化) 유물과 요하문명(遼河文明)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요령성의 성도(省都)가 심양이라서 이곳에 요령성박물관이 있다. 
   

▲ 옆에서 본 요령성박물관.
 
요령성박물관 자료에 따르면 요령성박물관은 1949년 7월7일 개관한 동북박물관(東北博物館)에서 출발하였다. 이 박물관은 신중국이라 하는 중화인민공화국이 설립한 제1호 박물관이다. 

소장유물은 12만 건에 달한다. 요령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과 역사 자료, 예술품 등이 다수를 차지하며 고고, 서화, 도자, 청동기, 비문 등 17개 부문으로 분류하여 소장한다. 소장품 가운데는 진(晉)나라, 당송(唐宋), 원(元)나라의 서화, 송원(宋元)과 명청(明淸)시대의 자수, 홍산문화의 옥기, 요(遼)나라 시대 도자기, 고지도 등 특색 있는 유물이 많다.
   

▲ 요령성박물관은 '요하문명'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요하문명전 전시장 초입에 걸린 '요하문명' 글이 눈길을 끈다.

요령성박물관은 12개 전시실을 두고 ‘기본전시실’, ‘상설전시실’, ‘특별전시실’을 운영한다. 그들 용어로는 '기본진열' '전제(專題)진열', 특별전청이라 한다. 상설전시실은 비문, 화폐, 옥기 등 소장품을 정기적으로 전시하는 곳이라면 특별전시실은 국내외 유물을 부정기로 전시한다. 기본전시실은 ‘요하문명’ 유물을 전시하는 ‘요하문명전’이다. 요령성 내 최근 50년의 고고 유물을 모아 요하 유역 문명 발전을 상세하게 소개한다. 

요령성박물관 3층으로 곧바로 올라갔다. 점차 몸에 힘이 가해지며 긴장된다. 3층 전체가 요하문명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요령성박물관이 요하문명을 알리는 데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요하문명론은 중국 역사 공정의 결정판
중국 속 우리 역사 기행 3
승인 2014.07.30  07:58:54 글/사진=정유철 기자  |  hsp3h@ikoreanspirit.com 
 
“요하 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이 이곳에 대거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유물 전시에는 중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관점에 유의하면서 관람하세요. 왜 요령성박물관이 요하문명을 강조하는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

▲ 요령성박물관 요하문명전 관람에 앞서 설명을 들었다.
 
7월 15일 오후 요하문명전 관람에 앞서 임찬경 박사의 해설을 듣고  전체 전시관을 밖에서 둘러보았다. 요령성박물관 3층은 온통 요하문명을 알리는 전시관이다. 모두 5개 관이 있는데 역사의 줄기에 따라 1. 문명서광관(文明曙光館), 2. 상주북토관(商周北土館), 3. 화하일통관(華夏一統館), 4. 거란왕조관(契丹王朝館), 5. 만족굴기관(滿族崛起館)으로 구분하였다.

각 관마다 자유롭게 관람하였다. 내부 사진 촬영도 막지 않는다.

전시관에 들어가는 초입에는 ‘전언’(前言)이라는 게시판에 전시 목적을 제시하였다. “요하유역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이며 많은 민족과 문화가 교류하는 지대였다. 지금으로부터 5천 년 전 이 지역에 가장 먼저 국가가 출현하였다… 이 문명전의 취지는 풍부한 문물자료를 통해 요하유역의 유구한 역사, 지역문화를 보여줌으로써 중화통일다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에 크게 기여하는 데 있다.”

전언의 문장은 짧았으나 그 의미는 깊고도 컸다. 요하지역이 중화 문명의 발상지임을 밝히고, 이 문물전을 통해 중화통일다민족국가의 형성과 발전을 도모하겠다는 의미다. 
 
요하문명. 요하(遼河)는 중국 동북지방 남부 평원을 관류하는 강. 대흥안령(大興安嶺) 산맥 남부에서 발원하여 동으로 흘러 길림(吉林), 요령(遼寧) 성경(省境) 부근에서 노합하(老哈河)와 합류한다. 요령성에 들어와 삼강구(三江口) 부근에서 백두산에서 발원한 동요하와 합류하여 요하가 된다. 다시 남쪽으로 흘러 혼하(渾河)와 합류하고 영구(營口)에서 발해로 흘러들어간다. 요하는 전장 1,390㎞에 달하며 유역면적이 21.9만 ㎢에 달한다. 이렇게 길고 넓은 곳을 흐르는 요하 유역에 일찍이 문명이 꽃피웠을 터. 그동안 기록도 유물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20세기 중반 신석기문화 유적이 속속 발견됐다. 이 유적들은 기존의 중화문명보다 시기도 앞서고 더 발달된 것들이었다. 중화문명은 북경 인근의 구석기시대와 황하 중류의 신석기 시대 앙소문화를 포함하는 황하문명이었다. 예로부터 같은 문화권으로 보지 않았던 장성 너머 북방에서 중화문명보다 더 우수한 문명이 일찍이 존재했다니.

“고고학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역사는 종종 지배자에게 야합하는 날조된 기록을 남긴다. 반면 고고학은 단지 있는 그대로의 유물만을 남기고 여기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다. ”
미국 태생 동양미술 사학자 존 카터 코벨(Jon Carter Covell, 1910~1996) 박사는 일본의 역사 왜곡을 지적하며 이런 말을 남겼다.( ‘부여기마족과 왜(倭), 글을읽다. 2006. 37쪽)

날조되지 않은 날 것의 유물. 역사를 왜곡한 자들에게는 터져서는 안 될 폭탄이었다. 그런데 요하에서는 이미 터진 것이다. 이를 수습하기 위해 나온 것이 요하문명론이다. 요하문명론은 유물유적에 중국의 역사를 가져다 꿰맞추는 작업이다. 유물유적을 통해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아니다. 요하문명론을 뒷받침한 것이 중화통일다민족국가론. 이는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부터 줄기차게 논의되어 왔다. 이 이론의 핵심은 현재의 중국 영토 안에 있는 모든 민족은 중화민족의 일부분이고, 그 역사는 중화민족의 역사라는 것이다.
   

▲ 요령성박물관 요하문명전의 첫번째 전시관 '문명서광'. 중화문명이 요하에서 처음 시작됐다는 의미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 등 우리 민족의 역사가 죄다 중국의 역사가 되는 것이고 우리 조상도 중국인이 되는 것이다. <우실하 교수 '요하문명은 중국,  한국 누구의 것도 아니다 기사 바로가기>

문명서광관은 요하문명을 중국의 것으로 하기 위한 전시관으로 보였다. 중화문명의 첫 서광이 이곳에서 발현하였다고 한다. 요하문명전 도록에는 “중화민족 조상들이 씨족에서 고대국가로 발전한 과정, 문명의 첫 번째 서광이 요하에서 발현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장성 넘어 야만시 하던 지역이 중화문명의 첫 번째 발현지라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남북교류와 오제전설’이라는 전시물. 오제의 전설시대를 역사와 끼워 맞춘 것이다. 전설상의 오제를 역사상의 인물로 해석하여 역사를 끌어 올리고 요하와 연결 지으려는 의도이다.
   

▲ 요하문명전 제1관 문명서광관에 전시된 홍산문화와 오제전설. 전설상의 인물 오제를 홍산문화에 맞춰 역사로 만들었다.
 
출국 전 보았던 우실하 교수의 책 내용이 머리에 떠올랐다. “요하 일대를 황제(黃帝)족의 판도에 넣어버리고 북방의 모든 소수민족은 그 손자인 고양씨 전욱과 고신씨 제곡의 후예라고 주장한다.”(‘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소나무. 2007. 273쪽).
   

▲ 요하문명전에 소개된 홍산문화 유물.
 
신석기 시대 토기, 빗살무늬토기, 옥. 보는 유물마다 정교하고 빛을 발한다. 특히 옥은 수천년 된 유물이라고 믿기 않을 만큼 우수하다. 우하량에서 나온 여신 두상 앞에서 멈췄다. 여신숭배, 우리 고대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여기는 유물. 예사로 보고 갈 수 없어 자세히 보고 사진도 여러 장 찍었다.

2관은 상주북토관이다. 요하가 상나라, 주나라 때부터 북쪽 영토였다며 그것을 유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상ㆍ주 시대,  이때부터 장성을 넘어 통치를 했다는 말인가. 2관은 청동기 시대 유물을 전시한다. 안내 글에는 4,000년 전 요하유역은 고대국가 시대를 지나 방국시대(方國)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소개한다. 
 
하가점(夏家店) 하층문화는 초기 청동기문화가 형성된 곳으로 상(商)나라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주(西周)에서 춘추전국시대에 연(燕)나라의 문화가 확대 발전하여 동북의 여러 민족문화와 교류를 하였고, 요하유역에는 청동기 문화가 많이 분포한다. 중원(中原)문화와 빈번한 교류을 하여 점차 융합하여 화하민족(華夏民族) ”다원일체(多元一體)의 발전을 이루어 널리 동북아지역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중원의 문화가 요하에 영향을 미쳐 여러 민족이 융합하여 한화되었다고 보여주는 것이 상주북토관이다. 이를 보면 요하지역이 상·주시대부터 중원 왕조에 속해 있었고, 소수 민족이 중화문명의 영향을 받아 화하민족과 ‘단원일체’가 되어 중화민족이 되었다는 의미이다. 

3관은 화하일통(華夏一統)관이다. 화하의 통일ㅡ요하 지역의 모든 소수 민족이 중국의 화하족으로 통일되었다는 의미다.
   

▲ 화하일통.
 
“요하유역은 동북지역과 중원의 교류의 중심지로 자고이래로 농경문화와 유목문화를 긴밀히 연계하여 서로 교류하고 융합하는 지역이었다. 진한(秦漢) 통일이후 요하유역 대부분 민족이 중원 왕조의 판도에 들어왔다. 위진(魏晉) 이후 중원왕조가 쇠퇴함에 따라 요하유역은 일시 소수민족이 흥기하게 되었다. 서쪽 선비 모용씨, 북방의 부여, 동쪽의 고구려 등이 이 지역을 지배하고 성쇠가 거듭되었다. 중국역사상 방대한 민족대융합이 이루어져 오래된 화하문명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그 후로 중국 봉건사회는 성당(盛唐)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통일다민족국가론을 바탕으로 동북 지역의 모든 소수민족이 중화민족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이에 따라 부여, 고구려는 중화민족이 되고 중국의 지방정권이 되는 것이다.
 

▲ 요동의 공손씨를 소개하고 중원왕조의 판도가 한강 이북까지 미친다는 지도도 걸려있다.
 
제 3관에 전시된 고구려 유물로는 집안시에서 출토된 금동제 관식, 신발, 말안장이 있다. 부여의 유물도 다수 소개된다. 고구려 유물 전시하는 곳에는 민족융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민족융합, 이 민족은 중화민족이라는 의미이고 고구려는 이때 중화민족이 되었고 중국의 지방정권임을 강조한다. 요동의 공손씨를 소개하고 중원왕조의 판도가 한강 이북까지 미친다는 지도도 걸려있다.
   

 ▲고구려 유물 전시한 곳에 걸어놓은 '민족융합' 자판.

이어지는 제 4관은 거란왕조관이다. 거란이 중국 고대 북방유목민족으로 북방초원에서 일어나 중국 북방의 소수 민족을 통일한 왕조로 소개한다. 거란은 풍속에 따라 다스리는 정책을 채택하여 한족의 제도로 한족을 대했으며 중화의 문화를 대거 받아들인 동시에 고유한 요나라의 문화를 창조했다고 덧붙였다. 요나라 문화의 이질적인 요소를 독특한 것으로 설명하면서 한화과정을 거쳐 중화민족이 됐다는 뜻이다. 
 
5관은 만족굴기. 만주족의 흥기를 전시한다. 만주족, 청나라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포함하기 위한 의도다. 동북에서 일어난 여진의 후예 만주족. 청나라를 세워 중원을 차지한 마지막 왕조가 요하문명의 마지막 관을 차지했다.
   

▲ 요령성박물관의 고구려 소개 내용.
 
예정된 시간을 넘어 전시된 유물을 하나하나 살펴보았다. 동북공정 고구려에만 관심을 쏟았는데, 그게 아니다. 고구려에만 주시한다면 고구려뿐만 아니라 고조선부터 우리 민족과 역사가 죄다 중국 민족이 되고 중국역사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사로잡았다.  
 
우실하 교수의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를 꼼꼼히 읽어야겠다는 생각하며, 자료판매실에 들러 도록을 구입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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