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산성(39) - 고구려 황룡산성(黃龍山城)
2004/10/21 11:52
북한 국보유적 제37호
위치 : 평남 용강군 남포시 옥도리 소재(평양에서 서쪽으로 44km)
크기 : 오석산(566m)을 주봉우리로 8개의 봉우리와 능선을 연결한 것으로 산성의 주위는 6.6.km, 성벽의 높이는 대체로 4~5m로 산성내에는 무기와 식량고, 병영의 흔적도 남아있다.
삼국은 정복전을 확대해 가면서 중요 요충지에는 성을 쌓고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러한 성 들은 방어의 거점인 동시에 지방지배의 중심지 역할을 하였다. 당시 민은 이러한 성의 축조 와 군역의 징발에 대규모로 동원되었다. 황룡산성은 고구려의 포곡식 산성으로 수도 평양성 을 방어하는 기능을 갖고 있었다. 주변 8개의 능선을 돌려가며 쌓은 이 석벽은 수도인 평양성을 향해 서남쪽에서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내는 견고한 위성이었습니다. 특히 성문 주위를 동그랗게 둘러쌓은 옹성은 성문에 접근한 적을 오도가도 못 하게 만들었습니다. 세 면에서 공격과 방어를 가능하게 했던 치도 그 당시 축성기술이 얼마나 발달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황룡 산성의 군데군데에 세워진 성벽으로 공격해 오는 적을 위에서 迎擊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판석더미의 성벽에서 이 산성의 특색의 하나를 엿볼수 있다. 또한 산성에서는 4군데 성문 중남 문은 옹성 형식을 취하고 이중의 문루가 있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역사적 근거]
- 4세기 초 , 중엽에는 황해남도 신원군의 장수산성이 축조되었고, 점차 이 지역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광개토왕대에는 國南에 7城, 國東에 6城을 축성하였다. (《三國史記》권 18, 高句麗本紀 6, 광개토왕 3년 8월 , 18년 7월.)
그 후 장수왕대의 평양천도에 따라 수도를 방어하기 위해 남포의 동진성 , 황룡산성 , 청룡산성, 서흥의 대현산성, 평산의 태백산성, 봉산의 휴류산성 , 태봉산성 등 십수성이 축조되어 위성방어망을 구축하였다. 그리고 장수왕 , 문자왕대에 고구려의 남쪽 영역은 죽령 , 조령에서 남양만 일대에 이르렀는데, 그러한 영역 확장의 결과 충남과 충북 일대에는 고구려 산성의 특징을 보여주는 산성들이 분포하고 있다.
- 1675년 숙종은 국방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개성 북쪽의 대흥산성과 황룡산성을 다시 쌓았다.
옛 지도에 나타난 황룡산성. 평안남도 해안 방어의 거점이었다. 여기 나타난 시설과 건물은 매우 생략된 것이다.
자료:『해동지도』 「용강현」
『해동지도(海東地圖)』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군현별 전국지도이다. 18세기 중엽에 중앙정부에서 작성하였으며, 1995년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원색대로 영인 간행하였다.
출처 (모두 연결 안됨)
http://www.hallym.ac.kr/%7Echanga/tour/pytour/p3101.html
http://www.hallym.ac.kr/%7Echanga/tour/pytour/p3101.html
http://www.hallym.ac.kr/%7Echanga/tour/pytour/p3102.html
http://210.218.66.140/student/home2000/dream1/%B3%B2%C6%F7%BD%C3.htm
http://goguryeo.history.go.kr/sub1_11.htm
http://news.naver.com/news/read.php?mode=LSD&office_id=056&article_id=0000030749§ion_id=103&menu_id=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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