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yimworld.com/html/class/ancienthistory/baekje.htm
* "백제의 성립과 발전 - 노중국" 중 "
2.백제사의 여러 쟁점 - 4)중앙통치체제의 정비"를 가져왔습니다.

백제 중앙통치체제의 정비

          1. 백제사에 대한 이해  http://tadream.tistory.com/14408
          2. 백제사의 여러 쟁점

              1) 건국시기와 건국세력의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59
              2) 한성시기의 도성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60
              3) 정치세력의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361
              4) 중앙통치체제의 정비  http://tadream.tistory.com/14362
              5) 지방통치제도의 발전  http://tadream.tistory.com/14363
          3. 백제사 연구의 과제  http://tadream.tistory.com/14408 
   
삼국이 대치하고 있던 상황에서 중앙과 지방에 대한 통치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 하는 것은 바로 그 국가의 생존과 발전에 관한 문제였다. 따라서 중앙통치체제에 대한 문제는 백제사 연구의 중요한 쟁점아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중앙통치제도에 대해 살펴보면, 관직과 행정관서 등 관료체제의 정비는 함께 이루어진다.
 
그런데 백제의 통치제도에 대한 논의에서도 역시 『삼국사기』초기기록의 신빙성 문제가 대두된다. 고이왕대에 이루어진 관직의 정비와 공복제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부터 초점이 맞추어지기 때문이다. 3세기 중엽 고이왕대의 관제개혁은 백제 정치사에서 중요한 사건이었지만, 이를 바라보는 입장은 백제초기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파악하느냐에 따라 나뉘게 된다. 즉 이를 고이왕대의 사실로 인정하여 관제의 기본골격이 갖추어졌다고 파악하는가 하면 6좌평, 16관등제는 후대 사실의 부회로 파악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연구자는 고이왕대에 이루어진 관직의 정비와 공복제를 사비시대의 소급으로 이해하고 있다. 사비천도 후 백제는 왕권중심의 정치운영체제를 확립하여 웅진도읍기 이래의 신, 구세력들을 16관등체제하에 편제하였다고 보았다. 따라서 5좌평으로 대변되는 귀족들의 정치적 비중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그 대신 왕명을 봉행하는 22부가 정치운영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게 되었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위덕왕 즉위 후 귀족중심의 정치운영이 되었으며, 이러한 귀족중심체제는 처음에는 5좌평이 중심이 되었으나, 그 후 중국의 6典조직의 영향으로 6좌평으로 확대되었다고 보았다.
 
백제의 정치기구는 좌평제와 22부사제(部司制)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고 할 수 있다. 백제의 가장 중요한 정치기구이며 제도라 할 수 있는 좌평제의 성립시기에 대해서 각기 견해가 다르다. 좌평의 성립시기에 대해 3세기 중엽, 5세기 초, 7세기 초 등으로 달리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좌평제의 경우 6좌평을 사비시대의 실상으로 이해는 경향이 강하지만, 3좌평제와 5좌평제 및 6좌평제의 상호관계에 대해서는 논의가 다양하다.
 
이것은 대좌평의 존재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사비시대에 보이는 대좌평이 상좌평과 다른 것인지, 아니면 같은지도 문제다. 그리고 6좌평제와 대좌평의 상호관계나 그 당시 귀족회의의 실상에 대한 설명도 확연하지 않다. 상좌평이 국정을 총괄하여는 재상의 성격을 지닌것에 대해서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왕권을 뒷받침하는 관직인지, 귀족세력의 이익을 대변하는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합의되지 않았다.
 
좌평제가 관직중심의 정치기구라면, 22부사제는 행정관서의 성격이 강하다. 궁중사무와 일반서정의 분리, 군사, 재정, 행정업무의 분화, 장관의 3년 임기제 등은 관료제적 성격을 보여준다. 그러나 내관(內官)이 외관(外官)10부보다 많고, 북주의 6관제를 채용하였다는 점은 왕권강화의 측면을 말해준다.
 
6좌평과 22부사제의 관계에 대해서도 다양한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육전조직에 근거한 6좌평제는 6세기 이전에 성립되었다가 22부사제의 실시로 관직적 성격을 잃고 신분표시 기능만 지니게 되었다는 설, 6세기 전반에 좌평제라는 합의기구와 22부사제라는 행정기구가 양립하였다가 6세기 후반에 좌평이 22부사를 장악하였지만, 7세기 전반에 왕권강화로 6좌평제가 행정기구화하면서 국왕의 통제 아래 22부사를 관장 하였다는 설 등으로 나누어진다.
 
22부사제의 경우 사(司)는 격이 떨어지는 것으로서 부(部)의 통제를 받은 관청인지 아닌지 내관 전내부가 신라의 내성에 해당하는지 집사부에 해당되며 외관을 통제하였는지도 논의되고 있다. 또한 22부사의 책임자로 좌평이 임명되었는지 아니면 솔계(率係)관등에 속하는 사람이 임명되었는지에 따라 정치기구에 대한 이해는 사뭇 달라진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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