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672222&PAGE_CD=N0120
'동네 시위' '과식 농성'...FTA 반대 집회는 진화중
광화문도 좋지만, 내 삶의 문제인 만큼 생활 공간에서
11.12.18 12:33 ㅣ최종 업데이트 11.12.18 12:33 신한슬 (hs4hs)
▲ 한미 FTA 폐기를 위한 동천동 주민협의회와 주민들이 골목에서 FTA 반대 행진을 하고 있다. ⓒ 신한슬
"쫄면 안돼, 쫄면 안돼. 각하 할아버지는 쪼는 아이에게는 빅엿을 안겨주신대." "비준무효, 명박퇴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광화문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청계광장 영풍문고 앞에 500여 명이 모였던 지난 17일 오후 4시, 용인 수지구 동천동 농협 앞에도 50여 명의 주민들이 모였다. 집 앞 골목에 나온 동천동 주민들은 영하 10도의 날씨에 손을 비비며 '글로벌 스탠다드 NO! 우리 삶은 우리 기준으로' '불평등 조약 완전 무효!' 등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큰길을 따라 행진했다.
▲ 현수막을 들고 행진하는 주민들 ⓒ 신한슬
이날 집회는 '한미 FTA 폐기를위한 동천동 주민협의회'(이하 주민협의회)에서 추진한 제 2차 한미 FTA 반대 결의대회이다. 동천동에서는 이미 지난 주 10일에 약 150명(<한겨레> 추산)이 모여 1차결의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바 있다. 주민협의회는 집회 신고를 위해 만든 단체다.
"동네 주민들끼리 이 앞 골목에서 한미 FTA 반대 집회를 하면 어떨까?"라는 아이디어는 근처 대안학교 조기축구회인 '이우 FC'의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나왔다고 한다. FTA가 다름 아닌 우리 삶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일이기 때문에, 어디 멀리 떨어진 공간이 아닌 자신의 생활 공간에서 집회를 하자는 것
처음 '동네 집회'를 제안했던 사람들 중 하나인 윤덕호(이우 FC, 49)씨는 "광화문에서 전국 규모의 집회가 열리고 있는데 거기 힘을 보태야지 웬 골목 집회냐 의아해하시는 분이 계실테고, 수지서부경찰서도이 점에서 몹시 신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3.1운동 때도 일제가 더 두려워한 것은 탑골 시위보다 전국 방방곡곡의 장터시위였다" 라며 동네 시위의 중요성을 밝혔다.
주민협의회에는 지역의 인문학 공부 모임인 '문탁 네트워크', 대안학교 학부모 동아리, 수지구 요식업 연합회, 지역 교회인 목양교회 그리고 지역 시민단체인 용인환경정의 등 다양한 단체가 함께하고 있다.
용인환경정의에 참여한 이정현씨는 "아직 환경정의 운영위에서 주민협의회 참여가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한미FTA 반대에 뜻을 함께하기 때문에 참여하게 되었다. '용인 주민참여예산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는 다른 시민단체에도 동네 집회 참여 연락이 닿아 있다. 듣기로는 용인 기흥 쪽에서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머지않아 동네 사람들과 함께하는 마을 집회가 열릴 것 같다"고 전했다.
▲ 피켓을 들고 시위중인 주민들 ⓒ 신한슬
시위대는 차가 제법 많이 다니는 큰길을 지나 동천동 수진마을 아파트 단지 쪽으로 행진을 계속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한미 FTA 반대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 찻길쪽으로 피켓을 들고, 큰 소리로 "비준무효, 명박 퇴진"의 구호를 외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가카를 위한 캐롤' "쫄면 안돼"를 불렀다.
추위 때문인지 길가의 주민들이 많지는 않았으나, 일부 시민들은 가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흥미롭게 시위를 지켜보기도 하고, 자전거를타고 지나가던 초등학생이 핸드폰으로 시위대를 촬영해 가기도 했다. 시위에 참여한 동네 주민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웃과 인사를 나누며, "시위 현장에서 다 얼굴을 보네?"하고 즐거워하였다. "경찰은 빨리 물대포를 가져와라"라고 농담을 하는 등, 추위로 코와 뺨이 빨개진 와중에도 웃으며 시위를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오후 5시 6분, 동네 한바퀴를 돈 시위대가 2부 문화제를 위해 동천동 동문그린 5차 아파트와 6차 아파트 사이 널찍한 도로에 멈추었다. 시위대는 어느새 70명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주민협의회 회장이자 동천동 주민인 이세영 한신대 교수가 시위 종료를 선언했다.
"다음주 24일에는 3차 결의대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뉴스를 보니 날이 따스하다고 합니다. 동천동 주민 송년회를 겸해 시위 현장에서 만납시다."
▲ 문화제 공연 중인 수지 동천 노래동아리 '노래로 나누는 세상' ⓒ 신한슬
▲ 문화제에 참여한 주민들이 함께 '그날이 오면'을 부르고 있다. ⓒ 신한슬
이렇게 1부 주민 결의대회를 마무리하고, 이어진 순서는 길가의 작은 무대에서 열린 문화제였다. 수지 동천지역노래 동아리인 '노래로 나누는 세상'(이하 노나세)에서 공연을 준비했다.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그날이 오면", "그루터기", "임을 위한 행진곡"을 차례로 선보였다. 노래하는 얼굴마다 입김이 하얗게 흩어졌다.
5시 30분이 지나면서 주위가 어두워지자, 길가에 앉아 문화제를 지켜보던 시위대는 촛불을 하나 둘씩 켜기 시작했다. '노나세'에서는 관객과 함께 부르고자 준비했다며 "광야에서", "바위처럼", "아침이슬"을 차례로 불렀다. 특히 "바위처럼" 무대는 신나는 율동을 함께 준비하여 분위기를 살렸다. 이날 집회는 예정대로 6시에 마무리 되었다.
▲ 촛불문화제를 하고 있는 주민들 ⓒ 신한슬
집회 참여자 나선미(문탁 네트워크, 52)씨에게 소감을 물었다.
"일단 가까우니 참 좋다. 광화문에서 하는 FTA 반대 집회를 보면 가긴 가야 하는데… 하면서 막상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아 마음이 무거웠다. 많이 모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시위는 나중에 뉴스로 보고 말게 된다. 요즘은 뉴스에 잘 나오지도 않고. 저 멀리서 일어나는 정치적인 일이라는 느낌이다.
하지만 동네에서 하면, 이웃끼리 모일 수도 있고, 무관심했던 사람들도 한번 더 생각해보지 않을까? 가까운 곳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라 그냥 동네 사람들이고. 거기서(광화문에서) 하는 거랑은 다른 효과가 있지 않을까?"
▲ 동네 아줌마가 직접 쓴 피켓, '아줌마들의 힘으로 FTA 막아내자' ⓒ 신한슬
▲ 한미 FTA가 삶의 문제임을 강조하는 피켓 ⓒ 신한슬
주민협의회는 이러한 동네 집회가 전국의 골목 골목으로 퍼져나가기를 바란다. 물론광화문과 같은 상징적인 공공장소에서 전국적으로 결집하여 국민의 힘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미 FTA가 99%의 일상에 영향을 끼치는 문제인 만큼 우리 생활의 공간을 정치적인 목소리를 내는 공간으로 바꾸어내는 것도 유의미한 시도이기 때문이다.
▲ 직접 만든 피켓을 들고 있는 주민들 ⓒ 신한슬
지난 2일, 성북구 동소문동에서는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 사무실 앞에 동네 주민들이 팻말과 촛불을 들고 앉아 음식을 시켜먹으며 '과식 농성'을 벌였다. 이처럼 자신의 삶과 맞닿아 있는 공간에서 '진짜 서민의 분노'를 보여주는 창의적인 한미 FTA 반대 집회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미 FTA 날치기 통과, 답답하고 속상한데 생활에 치여 광화문 집회까지는발걸음을 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이웃들을 모아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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