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2088.html

[한겨레 프리즘] 정봉주 수감은 불의다 / 김종철
대선에서 비슷한 행위를 했는데도 여당은 솜방망이, 야당은 감옥까지
[한겨레] 등록 : 20111227 19:15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선거를 흔히 ‘총 안 든 전쟁’이라고 한다. 정권의 향배를 놓고 다투는 대통령 선거는 그중에서도 가장 치열하다. 2007년 대선도 예외가 아니어서 싸우는 과정에 서로 고소·고발이 난무했다.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 속에 검찰이 대선과 관련해 기소한 정치인은 여야 각 2명씩이었다. 한나라당 쪽에서는 이명박 후보 선거대책위 대변인과 ‘공작정치분쇄 투쟁위원장’을 각각 맡았던 진수희, 박계동 당시 의원이었다. 청와대의 정치공작설을 주장한 대가였다. 대통합민주신당(민주통합당의 전신)에서는 정동영 후보의 선대위 대변인과 ‘이명박 주가조작사건 진상규명대책단장’을 각각 지냈던 김현미, 정봉주 당시 의원이었다. 도곡동 땅과 다스, 비비케이(BBK)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사법 심판의 결과는 천양지차였다. 진수희 의원 사건은 1심의 600만원 벌금형으로 종결됐으며, 박계동 의원 건은 아예 벌금 300만원으로 약식 기소됐다. 둘 다 형법상 명예훼손죄여서 선거 출마에 아무런 걸림돌도 없다. 게다가 그 후 진 의원은 보건복지부 장관을, 18대 총선 공천에 탈락한 박 전 의원은 국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정치적 보상이 두둑이 주어졌다.

반면에 김현미 전 의원은 1심과 2심 결과가 엎치락뒤치락한 끝에 대법원에서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형을 받았다. 정봉주 전 의원은 1심에서 3심까지 줄곧 징역 1년형을 받아 대선이 끝난 지 4년 만인 지난 26일 수감됐다. 김 전 의원은 그동안 사면복권돼 내년 총선에 출마할 수 있지만, 늑장 재판으로 사면 시기조차 놓친 정 전 의원은 출마길도 막혔다. 사실상 정치적 사형을 당한 셈이다.

검찰이나 법원 등 법 전문가들은 죄목이 다르기 때문에 이런 차이도 당연하다고 설명할 것이다. 한나라당 인사들의 죄명은 형법상의 명예훼손이고, 민주당 쪽 인사는 공직선거법상의 허위사실 유포죄여서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4명이 한 일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양쪽 다 자기 후보를 위해 상대 진영을 ‘말’로 공격한 정치 행위였다. 비슷한 행위를 했는데도 누구는 솜방망이 벌금형으로 끝나고 누구는 감옥까지 간다면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다고 얘기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발언의 신빙성이나 논리적 타당성 면에서 보면 정 전 의원이 진 의원보다 오히려 앞선다. 진 의원이 말한 ‘정치공작을 위한 청와대 바깥 사무실’의 존재는 사실무근으로 드러났지만, 정 전 의원이 말한 이명박 대통령의 비비케이와 다스 의혹 등은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이 대통령 본인도 비비케이가 자기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사법부가 검찰처럼 정치권력의 영향을 짙게 받거나 눈치를 본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법원이 사회 일반의 평균적인 판단이나 상식을 고려하지 않고, 전체적인 형평성도 외면한 채 자기 앞에 올라온 개별 사건에만 충실해서는 법의 목적인 정의 실현은커녕 사회적 불신만 키울 뿐이다. 검찰의 ‘보이지 않는 손’에 놀아나기 십상이다.

따지고 보면 법원은 정 전 의원의 경우 개별 사건에 충실하지도 않았다. 김현미 전 의원의 경우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의 명품시계 발언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됐지만, 비비케이나 다스 의혹 제기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동일한 사건이었던 만큼 최근 판례만 꼼꼼히 확인했더라도 1년 징역이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정 전 의원에 대한 실형은 민주주의에 재갈을 물리는 결과가 된다는 점이다. 말이 없이는 여론과 공론이 생길 수 없고, 결국 민주주의는 작동하기 어려워진다. 특히 공직자나 공직 후보자에 대한 합리적인 의혹 제기와 비판을 제약하고서는 민주정치를 구현해 갈 수 없다. 

김종철 정치부 선임기자 phill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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