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081514001
[탈핵전쟁]문제는 에너지 민주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7.07.08 15:14:00
6월 29일 그린피스와 시민 599명으로 구성된 ‘560소송단’이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첫 재판이 열리는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그린피스 회원들과 시민들이 원전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원자력 마피아’의 파상 반격,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문재인 정부와 ‘원자력 마피아’의 힘겨루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이다. 지난 두 달, 새로 출범한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 납작 엎드려 있던 ‘원자력 마피아’가 들고 일어났다. 범위를 더 넓혀 ‘전력 마피아’라고 해도 좋다. ‘봉기’에 앞장선 것은 원자력 관련 대학교수들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기득권세력들이 원색적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국민들에겐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의 대상에 불과한 일일까.
7월 3일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가 열렸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과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이라는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다. 행사가 열린 제2소회의실은 토론회 시작 30분 전부터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날 토론회를 찾은 이들 중 수십여명은 자리가 없어 선 채로 구경해야 했다.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 의장을 맡고 있는 한덕수 전 총리가 개회사를 했다. 산업부 통상관료 출신인 한 의장은 참여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한·미 FTA 지원대책위원장을 거쳐 MB정권 시절에는 주미대사를 맡았다. 장병완 의원과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 그리고 산업부 2차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 기념촬영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세 줄로 나란히 선 ‘내빈’들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장병완 위원장님, 파이팅! 한 번 더 파이팅! 한국전력 파이팅!”
이날 토론회 자료집에는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토론회 사회자는 정치권 이외의 내빈들을 소개하면서 ‘150만 전기인들을 대표하여…’라는 표현을 썼다. 나열된 내빈의 목록은 이런 식이었다. 전기공사협회 회장, 전기산업진흥회 회장, 원전수출협회 회장, 전선공업협동조합 조합장, 전기신문사 사장….
국회에서 울려퍼진 ‘한전 파이팅!’
언론 보도를 보면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이 출범한 것은 지난해 10월 26일이다.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신생단체다.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에서 전형적인 시민단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시민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 이날 토론회가 끝나고 사회를 본 이 단체 관계자가 건넨 명함은 ‘대한전기협회’의 간부 명함이었다. 청중들도 대부분 전력 관련 회사에서 ‘공적인 업무’로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자료집에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날 주목을 받은 사람이 기조발제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이다. 자료집에서 그의 직책은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 수석부의장’이었다. 그는 7월 3일 당일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무위원인 산자·복지부 장관 중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사였다. 조환익 수석부의장이 발표할 예정이었던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의 미래’는 한전 부사장이 발표했다. 토론회가 진행되던 시간, 5시 엠바고로 산자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었다. 백운규 한양대 교수였다. 조환익 사장은 낙마했다.
<주간경향>을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기조에 맞지 않는 ‘친원전 인사’는 일찍부터 검토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친원전 인사가 조 사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했으면 조 사장이 발표해야 할 기조연설 프리젠테이션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핵기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날 토론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은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부터 나온다. “대통령께선 고리1호기 퇴역행사에서 1년 동안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짜는 데서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전면 재검토라는 말이 기존에 결론이 정해진 전면 재검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원전이 위험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국민 여론 때문에 탈원전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내놓고 있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상업원전이 가동된 지난 50년간 전 세계 580여기의 원전들이 운영된 누적 가동연수 1만7100여년 동안 현재까지 지진으로 원전 사상자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일본의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의 원전 안전에 대한 위험성 인식이 과장되어 있으며, 원전이 탈원전을 정당화할 만큼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전만큼 싼 전력원(源)이 없는데, 지금 탈원전으로 가게 되면 수요를 감당하려면 결국 LNG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전력요금 상승으로 이어지게 돼 국민들이나 산업용 전기를 쓰는 기업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원전 대신 LNG의 가격비용은 약 10조원 증가로 이어지는데, 수출이 보통 5%의 이윤을 낸다고 가정하면 약 200조원을 더 수출해야 해서 무역수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는 “요새 극단적 환경주의가 유행하는데 환경만이 전부가 아니며 국민 복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야말로 청정에너지이면서 동시에 저렴한 에너지로 보편적인 전력복지를 달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탈핵 주장’에 대한 반박논리를 집약한 의견이다. 정말 그럴까.
“지진으로 원전에서 사상자가 난 적이 없다”는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한 연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최근 ‘경주지진’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당면한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며 “특히 지진으로 인한 안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해온 나라로 평가받았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거론했다.
집요한 공격받는 문 대통령 탈핵 연설
문재인 정부의 이날 ‘기념사’에 대한 공격은 주 교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매체들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비판이 집중된 것은 이날 문 대통령이 언급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 숫자다.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는 수치의 근거는 일본 도쿄신문의 르포에서 거론된 것인데, 사고 후 총 9만9000여명의 객지생활자 중 건강이나 질병 악화로 사망한 숫자로 언급한 것을 피폭사망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매체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연설문을 스크리닝한 원전전문가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나 청와대 의사결정구조 내에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신고리5·6호기 공사의 일시중단과 공론화위원회 설치 역시 이들 비전문가인 탈핵시민운동가들의 ‘입김’이 작용해 성급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기념사는 연설비서관이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관련된 여러 보좌진의 검토와 윤독(소리내어 읽기) 과정을 거쳐 공동으로 완성한다. 6월 17일 문 대통령의 고리1호기 폐쇄 기념사는 연설비서관과 함께 사회수석실의 기후환경비서관, 경제수석실의 산업정책비서관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의사결정과정의 혼돈과 책임에서 빈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탈핵정책 추진 관련 업무총괄은 김수현 사회수석이 맡고 있는데, 공론화위원회는 다시 하승창 사회수석이 맡는 등 ‘수석 간 맡은 업무의 경계가 애매한 빈틈’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수매체 등에서는 피폭사망자가 1368명이라고 해석을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워딩을 보면 피폭사망자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침소봉대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논란에 대해 당일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후쿠시마 ‘관련’이라는 단어를 넣었어야 하는데 안 써서 오해가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신고리5·6호기 백지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올린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대로 실행하면 2016년 대비 발전비용이 11.6조원이 더 들어가며 전기요금이 20% 상승할 것.” 대통령 연설에 이어 보수·경제지들이 내놓은 문재인 정부 탈핵 추진 공격 제2파(波)다. 불쏘시개는 경제인문연구회 소속의 학술기관이지만 사실상 산자부 산하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연)이 제공했다. 에경연이 6월 20일 내놓은 ‘신정부 전원 구성안 영향분석’이라는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보도다. 매체들은 “정부 출연기관이 공약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놨다”는 맥락으로 보고서를 인용했다. 에경연이 발표했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내렸다가 다시 공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파문이 커졌다. 일부 수치가 틀렸다는 산자부의 지적에 따라 에경연이 스스로 내렸다가 다시 공개한 것으로 정리됐지만, “탈핵기조를 내세운 신정부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확산시켰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관계자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연구 내용 외의 의사소통 과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말을 아꼈다.
“정부 세금을 받아서 하는 출연기관으로 부적절한 것이 사실이다.” 양이원영 환경연합 에너지국 처장의 말이다. “결국 석탄과 원전을 옹호하기 위해 쓴 보고서인데 데이터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고, 시기도 맞춰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양이원영 처장의 주장이다. 환경연합 등은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7월 중순께 할 예정이다.
“발전비용이 21%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현재처럼 석탄이나 원자력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바뀌고 가스(LNG)와 똑같은 세금이 부과되면 비용계산이 달라진다. 미국의 경우, 석탄과 가스가 다 나오고 있지만 가스가 석탄보다 더 싸다. 석탄의 경우 배기가스 배출 오염기준이 강화돼 있어 그 기준을 지켜 발전을 운영하려면 석탄의 경제성이 떨어져 비쌀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국가가 커버해주니 벌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이성호 세종대 기후변화센터 연구위원의 말이다. 원전이나 석탄이 가스나 신재생보다 싸다는 것은 한국의 기형적인 지원제도가 만들어놓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 “게다가 신재생에너지, 태양광의 경우 지난해 1년 만에 생산비용이 30% 하락했다. 앞으로도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고리5·6호기가 준공되려면 5년은 걸린다. 아마 그때쯤 되면 태양광이 지금보다 훨씬 더 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풍력과 태양광의 생산비용이 제일 싸서 그렇게 가고 있는데, 과거만 보고 잘못된 경제성 평가에 기초해 내놓는 이런 엉터리 연구가 어디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더 안전한 대한민국’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논쟁 불쏘시개 제공한 ‘에경연 보고서’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생산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원료비는 0원에 수렴하는 한편, 태양광 패널 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의 책 <에너지혁명 2030>에서 “1970년 이래 2014년까지 원유가격이 35배 오른 반면, 태양광 패널 가격은 154분의 1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에 비해서는 약 1540배 원가를 개선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태양광 원가는 더 ‘드라마틱’하게 떨어진다. 2020년에는 원자력에 비해 6000배 이상 원가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의 박년배 박사는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저널들의 논문을 보면 태양광이 석탄보다 싸지게 되는 시점을 2020년대 중반으로 보는데 대부분의 전문가의 시각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 끌어올리려면 서울시 면적보다 더 넓은 면적을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 현재 기술수준이나 효율로만 보더라도 국토면적의 약 2에서 5~6%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의 건물이나 주차장, 휴경지만 활용해서 필요한 수급량의 상당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은 에너지의 경우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무슨 말일까. 독일에서 미디어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강 소장은 독일에 있을 당시부터 녹색당 참여연구 등을 통해 독일의 탈핵 이행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봐 왔다고 말했다. “독일 재생에너지 초기 단계에는 물론 우리나라처럼 사기꾼도 나왔다. 정부 기금만 체리피커처럼 빼먹는 장사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 관련 사회적 기업이 1000여개에 달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강 소장에 따르면 독일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재생에너지 생산기업이 아니라 ‘판매의 민주화’를 가져온 신재생에너지 제도 덕분이다. 전력 원천과 관련,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회적 기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다. “내가 쓰는 전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이념적 소비, 다시 말해 ‘나는 가난하게 살아도 에너지만큼은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하는 제도가 시행된 후 몇 년 뒤에는 그린피스와 같은 시민단체들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민단체들도 그 단체의 후원비를 단체가 판매하는 전기를 쓰는 것으로 받게 되니 후원하는 교수도 생기고, 사회적 힘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녹색당에서만 탈핵을 주장했지만, 기민당이나 다른 보수정당 내에서도 녹색 전환을 주장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친환경 전기를 판매하고 쓴다고 하지만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따로 친환경발전시설로부터 배선을 받는 것은 아니다. 즉 전기는 기존 배선을 통해 받아 쓰지만, 요금은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내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통신사 망을 빌려 쓰는 알뜰폰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강 소장은 덧붙였다. 강 소장에 따르면 독일의 경험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들은 전기 생산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로부터 전기를 구입하는 곳은 한전, 더 정확히 말해서 전력거래소다. 전기판매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에너지 민주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소위 ‘값싼 전기신화’로 국민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전력판매의 민주화를 제도로 보장하면, 기존의 원전/석탄 발전 위주의 ‘에너지 마피아’의 동맹은 의외로 쉽게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지금의 대립구도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양이원영 처장의 말이다. “독일이 탈핵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어떤 전기를 쓸지에 대한 권한을 일반시민에게 줬기 때문이다. 독일도 과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 권한을 정부가 행사했고, 소위 전문가들이 ‘에너지 독재’를 했었다.” 그는 더 근본적으로 이른바 ‘전문가라는 권위에 기댄 적폐’는 없는지 되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묻고 싶은 것은 정책결정가가 왜 전문가냐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자기가 정책결정을 하고 그 이익을 자기가 취한다는 것이다. 고리원전5·6호기 공사의 계속 여부에 대한 결정을 일반시민에게 돌린다고 하니, ‘의사 진료가 밉다고 환자 진료를 일반시민에게 맡긴다는 포퓰리즘적 정책결정’이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왜 의사인가. 원자력 관련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했는데, 원자력 공학자가 왜 전력수급을 이야기하나. 원자력 전문가이면 전기요금 전문가이고 에너지 수급 전문인가.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면 시민운동단체와 마찬가지로 제너럴리스트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가 자기 역할을 해왔으면 믿는 게 당연하지만 그동안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고 정책 결과와 이익에 맞춰 의도적으로 조작할 뿐 아니라 정책결정의 수혜자도 자신들이지 않았는가.”
독일의 사회적 기업이 제공하는 전력선택 옵션. 웹페이지에 접속해 자기가 거주하는 주소를 찍으면 전력공급을 받을 수 있는 회사들 리스트를 보여준다. 이 사이트에서는 각 회사별 전력 포트폴리오 정보를 제시하는데, 각각 신재생에너지가 몇 % 구성되어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 제공
문재인 정부, 전력 마피아에 포획될 것인가
7월 3일 문재인 정부가 내정한 백운규 산자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대선 당시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한 뒤, 다시 국정기획위 에너지팀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핵시민운동단체 진영 핵심 관계자는 “백 후보자는 재료공학과 출신으로 에너지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탈핵에 관한 입장은 확실히 모르겠다”며 “신정부 사람들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게 적립된 것은 아니며 탈원전·탈석탄 의지가 뚜렷한 것은 오히려 대통령 자신”이라고 말했다. 현 대통령은 ‘문재인 의원’ 시절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에너지 관련 토론회나 세미나에 꼭 직접 참석해 공부하는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집권여당 내에서는 여러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7월 5일, 국회 정론관.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 전임교수 417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심인물은 다시 주한규 교수다. 교수 일동은 성명에서 “값싼 전기를 통해 국민에게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는 경제학 이론이 있다. 스티글리츠가 규제기관이 거꾸로 규제대상에 포섭되는 현상을 이론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내려온 관료·전문가·전력 마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혔던 ‘협치’와 관련, 문재인 정부의 협치 대상은 정치권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대한민국이 어떤 성격의 에너지를 사용할까를 결정할 권한을 둘러싼 전쟁의 성패는 여기서 판가름난다. 촛불혁명을 가능케 했던 민주주의 원리가 관철될지, 아니면 일반 시민의 공포심에 기댄 포퓰리즘적 선동정치라는 비난이 통하게 될지의 싸움이다. 문제를 풀 핵심 키워드는 에너지 민주화다.
[탈핵전쟁]문제는 에너지 민주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입력 : 2017.07.08 15:14:00
6월 29일 그린피스와 시민 599명으로 구성된 ‘560소송단’이 제기한 신고리 5·6호기 건설허가 취소소송 첫 재판이 열리는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그린피스 회원들과 시민들이 원전 반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김창길 기자
‘원자력 마피아’의 파상 반격, 문재인 정부의 선택은
문재인 정부와 ‘원자력 마피아’의 힘겨루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이다. 지난 두 달, 새로 출범한 정부의 높은 지지율에 납작 엎드려 있던 ‘원자력 마피아’가 들고 일어났다. 범위를 더 넓혀 ‘전력 마피아’라고 해도 좋다. ‘봉기’에 앞장선 것은 원자력 관련 대학교수들이었다. 자유한국당 등 기득권세력들이 원색적인 지원사격에 나섰다. 충돌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국민들에겐 그저 강 건너 불구경의 대상에 불과한 일일까.
7월 3일 국회 의원회관. 토론회가 열렸다. 산업통상자원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과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이라는 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다. 행사가 열린 제2소회의실은 토론회 시작 30분 전부터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붐볐다. 이날 토론회를 찾은 이들 중 수십여명은 자리가 없어 선 채로 구경해야 했다.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 의장을 맡고 있는 한덕수 전 총리가 개회사를 했다. 산업부 통상관료 출신인 한 의장은 참여정부 시절 경제부총리를 역임했다. 한·미 FTA 지원대책위원장을 거쳐 MB정권 시절에는 주미대사를 맡았다. 장병완 의원과 국민의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김동철 의원, 그리고 산업부 2차관의 축사가 이어졌다. “이어 기념촬영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내빈 여러분, 앞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세 줄로 나란히 선 ‘내빈’들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다. “장병완 위원장님, 파이팅! 한 번 더 파이팅! 한국전력 파이팅!”
이날 토론회 자료집에는 한국전력이라는 공기업의 이름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토론회 사회자는 정치권 이외의 내빈들을 소개하면서 ‘150만 전기인들을 대표하여…’라는 표현을 썼다. 나열된 내빈의 목록은 이런 식이었다. 전기공사협회 회장, 전기산업진흥회 회장, 원전수출협회 회장, 전선공업협동조합 조합장, 전기신문사 사장….
국회에서 울려퍼진 ‘한전 파이팅!’
언론 보도를 보면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이 출범한 것은 지난해 10월 26일이다. 만든 지 얼마 안 되는 신생단체다. ‘~정책연합’이라는 이름에서 전형적인 시민단체라는 뉘앙스를 풍기지만 시민 개인이 가입할 수 있는 단체가 아니었다. 이날 토론회가 끝나고 사회를 본 이 단체 관계자가 건넨 명함은 ‘대한전기협회’의 간부 명함이었다. 청중들도 대부분 전력 관련 회사에서 ‘공적인 업무’로 참석한 사람들이었다.
자료집에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이날 주목을 받은 사람이 기조발제자로 참여할 예정이었다. 조환익 한전 사장이다. 자료집에서 그의 직책은 ‘지속가능전력정책연합 수석부의장’이었다. 그는 7월 3일 당일까지 발표되지 않았던 문재인 정부의 마지막 국무위원인 산자·복지부 장관 중 산업자원부 장관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던 인사였다. 조환익 수석부의장이 발표할 예정이었던 ‘4차 산업혁명과 에너지의 미래’는 한전 부사장이 발표했다. 토론회가 진행되던 시간, 5시 엠바고로 산자부 장관 후보자가 발표되었다. 백운규 한양대 교수였다. 조환익 사장은 낙마했다.
<주간경향>을 만난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의 기조에 맞지 않는 ‘친원전 인사’는 일찍부터 검토대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 친원전 인사가 조 사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이 관계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원래대로 했으면 조 사장이 발표해야 할 기조연설 프리젠테이션에서 문재인 정부의 탈핵기조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날 토론에서 주목할 만한 발언은 패널 토론자로 참석한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로부터 나온다. “대통령께선 고리1호기 퇴역행사에서 1년 동안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을 짜는 데서 원전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하셨다. 그런데 이 전면 재검토라는 말이 기존에 결론이 정해진 전면 재검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는 “원전이 위험하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 국민 여론 때문에 탈원전정책을 문재인 정부가 내놓고 있는데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며 “상업원전이 가동된 지난 50년간 전 세계 580여기의 원전들이 운영된 누적 가동연수 1만7100여년 동안 현재까지 지진으로 원전 사상자가 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무슨 이야기일까. 일본의 2011년 후쿠시마 사고는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 때문에 일어났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민의 원전 안전에 대한 위험성 인식이 과장되어 있으며, 원전이 탈원전을 정당화할 만큼 그렇게 위험한 것은 아니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원전만큼 싼 전력원(源)이 없는데, 지금 탈원전으로 가게 되면 수요를 감당하려면 결국 LNG의 비중이 높아질 수밖에 없으며, 그 비용은 고스란히 전력요금 상승으로 이어지게 돼 국민들이나 산업용 전기를 쓰는 기업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원전 대신 LNG의 가격비용은 약 10조원 증가로 이어지는데, 수출이 보통 5%의 이윤을 낸다고 가정하면 약 200조원을 더 수출해야 해서 무역수지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는 “요새 극단적 환경주의가 유행하는데 환경만이 전부가 아니며 국민 복지도 생각해야 한다”며 “이산화탄소나 미세먼지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이야말로 청정에너지이면서 동시에 저렴한 에너지로 보편적인 전력복지를 달성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탈핵 주장’에 대한 반박논리를 집약한 의견이다. 정말 그럴까.
“지진으로 원전에서 사상자가 난 적이 없다”는 주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한 연설을 염두에 둔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사에서 최근 ‘경주지진’을 거론하며 “대한민국은 더 이상 지진 안전지대가 아님을 인정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문 대통령은 “당면한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며 “특히 지진으로 인한 안전사고는 너무나 치명적”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지진에 가장 잘 대비해온 나라로 평가받았는데,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고 거론했다.
집요한 공격받는 문 대통령 탈핵 연설
문재인 정부의 이날 ‘기념사’에 대한 공격은 주 교수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보수매체들과 경제지를 중심으로 시비가 잇따르고 있다. 비판이 집중된 것은 이날 문 대통령이 언급한 후쿠시마 원전사고 피해자 숫자다. “2016년 3월 현재 총 1368명이 사망했다”는 수치의 근거는 일본 도쿄신문의 르포에서 거론된 것인데, 사고 후 총 9만9000여명의 객지생활자 중 건강이나 질병 악화로 사망한 숫자로 언급한 것을 피폭사망자로 둔갑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매체가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단지 숫자가 아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연설문을 스크리닝한 원전전문가가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나 청와대 의사결정구조 내에 없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라는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6월 27일 국무회의에서 통과된 신고리5·6호기 공사의 일시중단과 공론화위원회 설치 역시 이들 비전문가인 탈핵시민운동가들의 ‘입김’이 작용해 성급하게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대통령 기념사는 연설비서관이 작성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관련된 여러 보좌진의 검토와 윤독(소리내어 읽기) 과정을 거쳐 공동으로 완성한다. 6월 17일 문 대통령의 고리1호기 폐쇄 기념사는 연설비서관과 함께 사회수석실의 기후환경비서관, 경제수석실의 산업정책비서관이 공동으로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의사결정과정의 혼돈과 책임에서 빈 구멍’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탈핵정책 추진 관련 업무총괄은 김수현 사회수석이 맡고 있는데, 공론화위원회는 다시 하승창 사회수석이 맡는 등 ‘수석 간 맡은 업무의 경계가 애매한 빈틈’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이다.
보수매체 등에서는 피폭사망자가 1368명이라고 해석을 했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워딩을 보면 피폭사망자라는 명시적인 언급은 없다. ‘침소봉대한 것’이라는 비판이 가능하다. 논란에 대해 당일 청와대는 출입기자들에게 “후쿠시마 ‘관련’이라는 단어를 넣었어야 하는데 안 써서 오해가 벌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신고리5·6호기 백지화, 신규 석탄발전소 건설 중단, 재생에너지 전력생산비율을 2030년까지 20%로 올린다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대로 실행하면 2016년 대비 발전비용이 11.6조원이 더 들어가며 전기요금이 20% 상승할 것.” 대통령 연설에 이어 보수·경제지들이 내놓은 문재인 정부 탈핵 추진 공격 제2파(波)다. 불쏘시개는 경제인문연구회 소속의 학술기관이지만 사실상 산자부 산하기관인 에너지경제연구원(에경연)이 제공했다. 에경연이 6월 20일 내놓은 ‘신정부 전원 구성안 영향분석’이라는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나온 보도다. 매체들은 “정부 출연기관이 공약의 비현실성을 비판하는 보고서를 내놨다”는 맥락으로 보고서를 인용했다. 에경연이 발표했던 보고서를 홈페이지에서 내렸다가 다시 공개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파문이 커졌다. 일부 수치가 틀렸다는 산자부의 지적에 따라 에경연이 스스로 내렸다가 다시 공개한 것으로 정리됐지만, “탈핵기조를 내세운 신정부 눈치보기가 아니냐”는 의혹을 확산시켰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관계자는 <주간경향>과 통화에서 “연구 내용 외의 의사소통 과정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며 말을 아꼈다.
“정부 세금을 받아서 하는 출연기관으로 부적절한 것이 사실이다.” 양이원영 환경연합 에너지국 처장의 말이다. “결국 석탄과 원전을 옹호하기 위해 쓴 보고서인데 데이터도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고, 시기도 맞춰서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이 양이원영 처장의 주장이다. 환경연합 등은 에너지경제연구원 보고서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7월 중순께 할 예정이다.
“발전비용이 21% 더 늘어날 수도 있지만, 현재처럼 석탄이나 원자력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 것이 바뀌고 가스(LNG)와 똑같은 세금이 부과되면 비용계산이 달라진다. 미국의 경우, 석탄과 가스가 다 나오고 있지만 가스가 석탄보다 더 싸다. 석탄의 경우 배기가스 배출 오염기준이 강화돼 있어 그 기준을 지켜 발전을 운영하려면 석탄의 경제성이 떨어져 비쌀 수밖에 없는데, 그것을 국가가 커버해주니 벌어지는 문제가 아닌가.” 이성호 세종대 기후변화센터 연구위원의 말이다. 원전이나 석탄이 가스나 신재생보다 싸다는 것은 한국의 기형적인 지원제도가 만들어놓은 ‘착시현상’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계속되는 그의 말. “게다가 신재생에너지, 태양광의 경우 지난해 1년 만에 생산비용이 30% 하락했다. 앞으로도 계속 하락할 것이다. (그대로 진행된다 하더라도) 고리5·6호기가 준공되려면 5년은 걸린다. 아마 그때쯤 되면 태양광이 지금보다 훨씬 더 쌀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풍력과 태양광의 생산비용이 제일 싸서 그렇게 가고 있는데, 과거만 보고 잘못된 경제성 평가에 기초해 내놓는 이런 엉터리 연구가 어디 있나.”
문재인 대통령이 6월 19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자력본부에서 열린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더 안전한 대한민국’ 퍼포먼스를 진행한 뒤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논쟁 불쏘시개 제공한 ‘에경연 보고서’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 생산비용의 획기적인 절감은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한 바 있다. 원료비는 0원에 수렴하는 한편, 태양광 패널 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토니 세바 스탠퍼드대 교수는 그의 책 <에너지혁명 2030>에서 “1970년 이래 2014년까지 원유가격이 35배 오른 반면, 태양광 패널 가격은 154분의 1로 떨어졌다”고 지적했다. 원자력에 비해서는 약 1540배 원가를 개선했다. 그의 책에 따르면 태양광 원가는 더 ‘드라마틱’하게 떨어진다. 2020년에는 원자력에 비해 6000배 이상 원가가 개선된다는 것이다. 에너지기술연구원의 박년배 박사는 “최근 발표되고 있는 에너지 관련 저널들의 논문을 보면 태양광이 석탄보다 싸지게 되는 시점을 2020년대 중반으로 보는데 대부분의 전문가의 시각이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율을 20% 끌어올리려면 서울시 면적보다 더 넓은 면적을 태양광 패널로 덮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데, 실제 현재 기술수준이나 효율로만 보더라도 국토면적의 약 2에서 5~6%면 충분하다는 결론이 나온다. 국내의 건물이나 주차장, 휴경지만 활용해서 필요한 수급량의 상당 부분을 보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은 에너지의 경우도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무슨 말일까. 독일에서 미디어경영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돌아온 강 소장은 독일에 있을 당시부터 녹색당 참여연구 등을 통해 독일의 탈핵 이행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봐 왔다고 말했다. “독일 재생에너지 초기 단계에는 물론 우리나라처럼 사기꾼도 나왔다. 정부 기금만 체리피커처럼 빼먹는 장사꾼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전력 관련 사회적 기업이 1000여개에 달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 강 소장에 따르면 독일과 한국의 결정적인 차이는 재생에너지 생산기업이 아니라 ‘판매의 민주화’를 가져온 신재생에너지 제도 덕분이다. 전력 원천과 관련,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가진 사회적 기업을 쉽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은 1998년이었다. “내가 쓰는 전기를 선택할 수 있게 되자 이념적 소비, 다시 말해 ‘나는 가난하게 살아도 에너지만큼은 재생에너지를 쓰겠다’고 하는 제도가 시행된 후 몇 년 뒤에는 그린피스와 같은 시민단체들도 이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민단체들도 그 단체의 후원비를 단체가 판매하는 전기를 쓰는 것으로 받게 되니 후원하는 교수도 생기고, 사회적 힘이 생긴 것이다. 게다가 처음에는 녹색당에서만 탈핵을 주장했지만, 기민당이나 다른 보수정당 내에서도 녹색 전환을 주장하는 사람이 생기면서 사회적 분위기가 바뀌게 된 것이다.”
친환경 전기를 판매하고 쓴다고 하지만 전기를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따로 친환경발전시설로부터 배선을 받는 것은 아니다. 즉 전기는 기존 배선을 통해 받아 쓰지만, 요금은 신재생에너지 쪽으로 내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통신사 망을 빌려 쓰는 알뜰폰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고 강 소장은 덧붙였다. 강 소장에 따르면 독일의 경험은 한국의 에너지 전환에도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한국의 신재생에너지 관련 사업들은 전기 생산에 집중되어 있다. 이들로부터 전기를 구입하는 곳은 한전, 더 정확히 말해서 전력거래소다. 전기판매 독점을 해체하는 것이 ‘에너지 민주화’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소위 ‘값싼 전기신화’로 국민의 발목을 잡을 것이 아니라 전력판매의 민주화를 제도로 보장하면, 기존의 원전/석탄 발전 위주의 ‘에너지 마피아’의 동맹은 의외로 쉽게 붕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지금의 대립구도는 민주주의의 문제다.” 양이원영 처장의 말이다. “독일이 탈핵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어떤 전기를 쓸지에 대한 권한을 일반시민에게 줬기 때문이다. 독일도 과거에는 마찬가지였다. 그 권한을 정부가 행사했고, 소위 전문가들이 ‘에너지 독재’를 했었다.” 그는 더 근본적으로 이른바 ‘전문가라는 권위에 기댄 적폐’는 없는지 되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묻고 싶은 것은 정책결정가가 왜 전문가냐는 것이다. 한국의 여러 분야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는 자기가 정책결정을 하고 그 이익을 자기가 취한다는 것이다. 고리원전5·6호기 공사의 계속 여부에 대한 결정을 일반시민에게 돌린다고 하니, ‘의사 진료가 밉다고 환자 진료를 일반시민에게 맡긴다는 포퓰리즘적 정책결정’이라고 하는데 자신들이 왜 의사인가. 원자력 관련 교수들이 기자회견을 했는데, 원자력 공학자가 왜 전력수급을 이야기하나. 원자력 전문가이면 전기요금 전문가이고 에너지 수급 전문인가. 자신의 분야를 넘어서면 시민운동단체와 마찬가지로 제너럴리스트 아닌가. 한국 사회에서 전문가가 자기 역할을 해왔으면 믿는 게 당연하지만 그동안 정보를 공개하지도 않고 정책 결과와 이익에 맞춰 의도적으로 조작할 뿐 아니라 정책결정의 수혜자도 자신들이지 않았는가.”
독일의 사회적 기업이 제공하는 전력선택 옵션. 웹페이지에 접속해 자기가 거주하는 주소를 찍으면 전력공급을 받을 수 있는 회사들 리스트를 보여준다. 이 사이트에서는 각 회사별 전력 포트폴리오 정보를 제시하는데, 각각 신재생에너지가 몇 % 구성되어 있는지 가격은 어떻게 되는지 비교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 강정수 디지털사회연구소 소장 제공
문재인 정부, 전력 마피아에 포획될 것인가
7월 3일 문재인 정부가 내정한 백운규 산자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대선 당시 ‘새로운 대한민국위원회’에 소속돼 활동한 뒤, 다시 국정기획위 에너지팀에서 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탈핵시민운동단체 진영 핵심 관계자는 “백 후보자는 재료공학과 출신으로 에너지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탈핵에 관한 입장은 확실히 모르겠다”며 “신정부 사람들도 환경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인식이 뚜렷하게 적립된 것은 아니며 탈원전·탈석탄 의지가 뚜렷한 것은 오히려 대통령 자신”이라고 말했다. 현 대통령은 ‘문재인 의원’ 시절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에너지 관련 토론회나 세미나에 꼭 직접 참석해 공부하는 열의를 보였다. 하지만 정작 집권여당 내에서는 여러 입장이 혼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7월 5일, 국회 정론관. ‘책임성 있는 에너지 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교수 일동’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전국 전임교수 417명이 참여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서 중심인물은 다시 주한규 교수다. 교수 일동은 성명에서 “값싼 전기를 통해 국민에게 보편적 전력 복지를 제공해온 원자력산업을 말살시킬 탈원전 정책의 졸속 추진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선언 하나로 탈원전 계획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제왕적 조치”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규제포획(regulatory capture)이라는 경제학 이론이 있다. 스티글리츠가 규제기관이 거꾸로 규제대상에 포섭되는 현상을 이론화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내려온 관료·전문가·전력 마피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밝혔던 ‘협치’와 관련, 문재인 정부의 협치 대상은 정치권 야당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다. 앞으로 10년 20년 후 대한민국이 어떤 성격의 에너지를 사용할까를 결정할 권한을 둘러싼 전쟁의 성패는 여기서 판가름난다. 촛불혁명을 가능케 했던 민주주의 원리가 관철될지, 아니면 일반 시민의 공포심에 기댄 포퓰리즘적 선동정치라는 비난이 통하게 될지의 싸움이다. 문제를 풀 핵심 키워드는 에너지 민주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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