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기사 : KTX 종착역, 하필이면 내곡동 인근? - 시사인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12006
인천공항 이어 이번에는 KTX 민영화?
정부가 KTX 사업권을 민간 업체에 넘기는 방안을 추진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철도 공공성을 크게 훼손하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이를 총괄하는 인사가 인천공항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인물이어서 문제가 더 크다.
기사입력시간 [224호] 2012.01.02 09:25:51 천관율 기자 | yul@sisain.co.kr
공항 다음은 철도다. 기간산업 민영화를 적극 추진해온 이명박 정부의 마지막 민영화 대상으로 고속철도(KTX)가 떠오르고 있다.
정부는 2014년 완공되는 서울 수서-경기도 평택 구간 사업권을 민간 업체에 넘겨 KTX에 경쟁 체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신설되는 수서-평택 구간 사업권을 따낸 회사는, 평택 이후로는 기존 노선을 이용해 경부선·호남선 고속철도 사업을 할 수 있다. 즉, 민간 사업자가 KTX를 운영할 길이 열리게 된다. 국토해양부는 12월27일로 예정된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이 같은 내용을 보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6월28일 열린 수도권고속철도(수서-평택 구간) 기공식. ⓒ뉴시스
정부 논리의 핵심 골격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인 한국교통연구원(KOTI) 이재훈 박사가 올해 9월 내놓은 <철도운영 경쟁체제 도입의 기대효과>라는 발표문에 집약되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발이 떨어진 ‘민영화’라는 단어 대신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표현을 쓴 것이 눈에 띈다. 이 발표문에서 KOTI가 드는 여러 민영화 추진 근거 중에서도 핵심은 ‘운임 20% 감축’이다. 발표문은 서울-부산 구간 운임이 현재 5만1800원에서 4만1400원까지 내려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발표문은 또한 정부와 관련 산업의 이점도 나열했다. 정부는 선로 사용료 수입이 늘고 철도공사에 들어가는 지원 예산을 줄일 수 있다. 철도차량을 더 만들게 되고 관련 산업 일자리가 늘어난다. 산업 이름만 바꿔서 재활용해도 될 만한, 전형적인 민영화론이다.
사업성 좋은 KTX만 따로 떼서 민간에
민영화론의 최대 역설은,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개선하겠다는 논리로 무장한 민간 자본이 실제로는 공기업 사업 분야 중 가장 수익성이 높은 사업만 골라 노린다는 사실이다. 여전히 민영화 논란이 한창인 인천공항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론대로라면 민간 자본은 방만한 경영 때문에 저평가된 적자 공항을 싸게 사서 수익성을 올려야 하겠지만, 실제로는 높은 수익성을 자랑하는 인천공항 말고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철도 역시 마찬가지다. 철도사업법은 2004년부터 이미 철도공사 외의 민간 법인이 철도 운영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돈 안 되는’ 중·단거리 노선(새마을·무궁화 노선)이나 화물 노선에 참여하겠다는 민간 법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그러던 중 정부가 알짜 사업인 KTX 노선을 민간에 넘기겠다는 방안을 검토하면서, 비로소 경쟁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KTX 요금만 놓고 보면 인하할 여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수익성이 좋기 때문이다. 철도공사 자료를 봐도, KTX의 원가보상률(원가 대비 수익)은 106.7%다. 원가보다 수익이 높다. 여기에 KOTI의 민간 자본 사업성 분석 자료를 보면, 감가상각비를 제외하고 인건비·운영경비를 75%만 적용(민간 사업자의 운영 효율화 등을 고려해 나온 수치라고 밝혔다)하는 등 원가를 절감한 결과, 신규 사업자의 수익률은 현 운임을 받을 때 11.7%, 현 운임의 80%를 받을 때 8.8%로 예상된다는 결과를 냈다.
문제는 KTX가 철도공사 사업 중 사실상 유일하게 돈 되는 사업이라는 사실이다. 철도공사는 철도 공공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중·단거리 노선(새마을·무궁화 노선)과 화물 노선을 운행하는데, 일반철도의 원가보상률은 49.7%, 광역철도는 87.5%, 물류철도는 47.4%에 불과하다. ‘돈 먹는 하마’라 불릴 만하다.
즉, KTX에서 올린 수익으로 전체 철도의 공공성을 부족하나마 지탱하는 것이 현 철도사업의 구조다. KTX 수익률이 높게 책정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 ‘교차보조’ 때문이다. 그러니 KTX만 따로 떼놓고 보면 요금이 과다 책정된 사업처럼 보이는 착시가 일어난다. 더욱이 교차보조를 전제로 형성된 KTX의 사업성을, 교차보조 의무가 없는 민간 자본이 가져간다는 것은 특혜인 동시에 철도 공공성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중·단거리 노선이 더욱 축소되거나, 결국 세금을 투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귀결될 수 있다.
서울 수서역에 새로 들어서는 KTX 역사는 강남권 이용자들의 수요를 빨아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철도공사는 철도의 공공성을 고려해서 ‘돈 안 되는’ 역도 어느 정도 정차해야 하지만, 민간 기업은 그런 부담을 질 필요도 없다.
KTX 민영화 문제를 감시해온 경실련의 윤순철 기획실장은 민영화 반대 논리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교차보조를 전제로 운임이 책정된 KTX만 떼어 민간에 주는 것은 그 자체로 특혜다. 민간 자본의 위험 부담이 거의 없다. 둘째, 철도산업은 운영체계가 매우 복잡한데, 공사와 민간이 중복 운영하면 사고 위험이 증가한다. 셋째, 철도공사의 부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사라진다. 철도 공공성이 위협받고 혈세가 들어가게 된다.”
보고서를 낸 KOTI의 ‘전적’도 화려하다. KOTI는 1999년 인천공항철도 수요 예측 연구를 맡아, 개통 첫해 하루 평균 21만명으로 시작해 2021년에는 82만명이 이용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하지만 실제로 개통 후 2년간 하루 평균 이용자는 1만7000명 수준이었다. 더욱이 민간 투자자로 참여한 현대건설과 정부는 예측 수요를 밑돌 경우 손실분을 정부가 채워주는 MRG(최소 수입 보장) 협약까지 맺은 터였다.
2004년 3월30일 서울역에서 열린 경부고속철도 1단계 개통식에서 열차가 역사로 들어오고 있다. ⓒ청와대제공
KOTI의 수요 과다 예측은 고스란히 혈세 낭비로 돌아왔다. 공항철도 계약기간인 30년을 채울 경우 정부 추가 지출만 14조원이 발생하리라는 예측까지 나왔다. 결국 2009년 철도공사가 현대건설로부터 공항철도를 인수하는 ‘공영화’가 이뤄졌다. 현대건설은 개발이익과 운영손실 보전액을 고스란히 챙겼다.
KOTI는 2003년 부산-김해 경전철 수요 예측 연구에서, 개통 첫해 하루 평균 17만명, 2030년 32만명으로 수요를 전망했다. 실제로는 개통 첫 한 달 동안 하루 평균 3만명이 이용했다. 이 역시 MRG 협약사업이어서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 2009년 용인경전철 수요 예측 연구는 아예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고 관련 연구원이 출국금지를 당하기도 했다.
인천공항 민영화 사령탑, 철도정책 총괄
여러 우려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정부는 KTX 민영화를 밀어붙일 태세다. 국토해양부는 12월19일 철도정책을 총괄하는 철도정책관에 구본환씨를 임명했다. 구 정책관은 김대중 정부 말기 철도구조개혁단 팀장으로 철도 민영화를 밀어붙였던 ‘민영화 전도사’다. 전임 최정호 철도정책관은 민간 참여 신중파에 속했는데, 현재는 대기발령 상태다.
사흘 후인 12월22일에는 철도정책관의 직속 상관인 교통정책실장 인사가 났다. 신임 김한영 실장은 국토부에서 인천공항 민영화를 추진한 사령탑이었다. 정부가 KTX 민영화에 강한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토부에서 또 다른 ‘민영화 전도사’로 꼽히는 ㄱ씨도 철도 관련 부서 발령을 앞둔 것으로 알려져, 철도정책 라인이 강성 민영화론자 일색으로 물갈이될 전망이다.
이런 가운데 허준영 철도공사 사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12월22일 퇴임했다. 후임 사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인사 중에 김희국 국토부 2차관이 있다. 김 차관은 철도 관련 근무 경험이 풍부한 데다가, 국토부 4대강 살리기 기획단장과 추진본부장을 지낸 손꼽히는 ‘MB맨’이다. 철도공사 사장이 KTX 민영화를 주장하는 묘한 장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건강보험 반대론자인 김종대씨가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문제는 여론 동향이다. 정부가 집권 초기부터 야심차게 추진한 인천공항 민영화도 반대 여론이 높아지면서 답보 상태다. 하물며 지금은 레임덕이 시작된 임기 말이어서 여론이 우호적이지 않으면 시도조차 해보기 힘들다. ‘운임 20% 인하’를 가장 먼저 내세우고, ‘민영화’ 대신 ‘경쟁체제 도입’이라는 표현을 쓰는 등, 정부도 초기 여론전에 신경을 많이 쓰는 모습이다. 국토부 장관의 대통령 업무보고가 끝나면 요금 인하에 초점을 맞춘 기사도 쏟아질 전망이다. 민주당 김진애 의원은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할 정부가 앞장서서 민영화를 추진한다. 돈 되는 사업만 민간이 가져가고, 돈 안 되는 공공 서비스는 더욱 쪼그라들게 될 것이다. 인천공항 민영화와 판박이다. 이런 속 보이는 주장을 요금 인하로 포장한다고 해서 속아 넘어가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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