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contents.nahf.or.kr/id/NAHF.iskc.d_0006

요하 중류 일대 고구려성

최진보산성(催陣堡山城)  
청룡산성(靑龍山城)  
서풍(西豊), 성자산성(城子山城)
개원(開原), 성자산성(城子山城)



요하 중류 일대 위치도


무순(撫順)의 북방, 즉 철령(鐵嶺)에서 개원(開原)·서풍(西豊)으로 이어지는 일대의 지역은 요하 중류(遼河 中流)에 해당한다. 대흑산맥(大黑山脈)과 길림 합달령산맥(哈達嶺山脈) 사이에 놓인 이 지역에는 산맥에서 흘러나온 산줄기가 그리 험준하지 않으며 두 산맥 사이에서 발원한 구하(寇河)·범하(汎河) 등의 지류와 그 연안의 충적평지들이 펼쳐져 있다. 이에 길림합달령산맥을 가로질러 송화강(松花江)으로 나아가거나, 혼하(渾河)를 거쳐 환인(桓仁)·집안(集安)으로 들어갈 수도 있는, 어느 쪽 방면으로도 출입이 가능한 전략적 요충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지역에서는 요하 하류의 요동평원을 거치지 않고서도 요하 상류나 요서지역으로 나아갈 수도 있었다.

요동을 두고 벌어진 대결에서 고구려가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은 4세기 전반의 일이었다. 그렇지만, 대전연전(對前燕戰)에서의 패배에서 드러나듯이 그때까지도 고구려의 요동 지배는 불완전한 것이었다. 반면 요하 중류 방면으로의 진출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고구려가 일찍이 부여(夫餘)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둔 뒤 부단히 그 영역을 잠식해나간 결과였다. 이 지역과 관련한 역사적 사실로는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 전하는 395년 광개토왕의 패려(稗麗) 정벌을 들 수 있겠다. 당시 광개토왕은 서요하 일대의 거란세력을 공략했는데, 왕도(王都)를 출발한 원정군이 패려의 본거지로 나아가기 위해 거친 지역이 바로 요하 중류지역이었다.

이 일대에서 알려진 고구려성으로는 10여 곳이 있다. 이 가운데 서풍(西豊) 성자산성(城子山城)과 철령 최진보산성(催陣堡山城)은 이 지역에 대한 진출의 초기단계에 축조된 것으로 이해되고 있으며, 요하 지류 연안의 길목에 자리잡은 청룡산성(靑龍山城)·개원(開原) 성자산성(城子山城) 등은 고구려의 지배권이 다져진 뒤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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