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513096.html

미국이 ISD 패소 않는 까닭
[한겨레] 정은주 기자  등록 : 20120102 21:26 | 수정 : 20120102 22:56
   
미국 강한 입김에 중재인 휘둘려
ISD 판정 독립·중립성은 구호뿐

외교통상부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가 미국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위해서 필요한 제도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 외국 투자자가 미국 정부를 상대로 국제중재를 제기해 승소한 사례는 없다. 지금까지 15건 소송을 냈지만 미국 정부가 6건 승소했고 나머지는 계류 중이다. 특히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을 체결한 뒤 캐나다 투자자가 미국 정부에 잇따라 도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 정부가 패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데이비드 슈나이더먼 캐나다 토론토 로스쿨 교수는 “국제중재인들이 미국 정부가 지면 엄청난 논쟁이 불붙어 투자자-국가 소송제 자체가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보고 미국 정부에 책임을 묻는 결정을 내리길 꺼린다”고 설명했다. 일종의 ‘자기검열’이다.

게다가 미국 정부가 중재인에게 직접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캐나다 장의업체가 미국의 주법원 평결에 도전한 로언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국 법무부는 미국 관료 출신의 중재인을 찾아가 “미국 정부가 패소하면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압박했다. 당시 로언은 이러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되레 캐나다 외교관 출신의 중재인에 대해 미국 정부가 중립성 문제를 제기해 그를 교체하기까지 했다. 잰 폴슨 미국 마이애미 로스쿨 교수는 “미국 정부의 위선이 통탄스럽다”고 말했다.

결국 2003년 중재판정부는 내용적으로는 “(미국 법원의) 배심원 평결은 명백히 부당하고 국제관습법에 견줘 적합하다고 볼 수 없다”고 인정하면서도, “로언이 파산한 뒤 미국 회사로 재설립됐고 미국 내 사법적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며 절차적 문제를 들어 미국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슈나이더먼 교수는 “위기감을 느낀 중재인들이 전략적으로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태생적으로 중재인은 독립성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중재는 전통적으로 상업적 거래관계, 특히 계약관계를 다루는 사적분쟁의 해결 수단이기 때문에 중재판정부를 구성하는 중재인 3명은 법관과 같은 ‘공적 신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로 일하다가 그 기업이 당사자인 중재심판의 중재인으로 지명되기도 하고, 친한 법률가끼리 다국적 기업의 변호사와 중재인을 번갈아 지명해주기도 한다. 토머스 버겐설 국제사법재판소 재판관은 이를 “회전문 인사”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제도적으로 양쪽 당사자가 일방적으로 중재인을 1명씩 지명하기에 중립성을 지켜내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최근 국제중재 통계를 보면, 중재판정부가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으로 나뉠 때 소수의견을 내는 중재인의 95%가 패소한 당사자가 지명한 경우였다. 미국 정부 같은 영향력이 큰 당사자들에게 중재인이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당사자에 따라 중재판정이 달라지는 일도 발생한다. 199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인체에 유해하다며 자동차 연료첨가제(MTBE) 판매금지 조처를 취하자 캐나다의 메탄올 공급회사 메타넥스가 투자자-국가 소송을 제기하자 중재판정부는 정당한 공공정책이라 판정했다. 하지만 1997년 캐나다 정부가 파킨스병 등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휘발유 첨가제(MMT)의 수입을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했을 때 미국 업체인 에틸이 국제중재를 청구하자 캐나다 정부가 위기에 몰렸고 합의금 1300만달러를 지급하게 된다.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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